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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時와 시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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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1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160쪽 | 226g | 125*200*20mm
ISBN13 9788956656984
ISBN10 8956656983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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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속에 타자가 웃고 있다
나인 것처럼 웃으나 실은 허상의 그림자다
나는 웃지만 속으로 울고 있다
가면의 세계가
위악을 증폭시키는지도 모른다
범벅이 된 사실과 진실을 칼로 자르듯
논픽션과 픽션을 가리는 일이 가능할까
마음을 모르는 거울이 표정만 반사할 뿐
매일 아침 오늘은 신나는 일이 있을 것처럼
거울 앞에서 얼굴을 매만지는 것이다
언젠가 깨질 거울과 나의 안팎을 감싸고
해명에 대부분의 시간을 바친다
말과 표정, 마음이 따로 가는 생이
가식과 페르소나를 남발하면서 울고 웃는다
달빛을 반사하는 둥근 허구 같은 추석이다
너에게 웃으면 웃어지듯
오는 것 반갑고 가는 것 반가운
가면 서운하고 오래 머물면 버겁다는
나는 부서지지만
세상 거울은 깨지지 않는다.
---「거울의 페르소나」중에서

강 가 불타 불티 올라
구상도의 계단 가장 낮은 곳에 발목을 담그고
뼈의 구릉 하구를 이룬다
불꽃 디아도 릭샤에 부딪힐까
십사억 인도의 신비
물비늘 그늘에 날아드는 흰 재
그 사이로 흰옷은 어른거려
강물에 목욕하는 사람
정좌하고 명상하는 사람
미처 다 태우지 못한 주검을
강에 흘려보내는 사람
힘겹게 몸을 트는 수천키로 강줄기는
원소로 환원하는 피안의 세계로 흐른다
물질의 잠에서 깨지 않음으로
비로소 아침을 맞이할
물화 된 사과가 하트 모양으로 축조된다
피안과 차안의 경계를 따지지 않는 그들
삶 속에 죽음이 있고 죽음 안에 삶이 있는
사라의 탯줄 속에 무슨 꿈이 서릴까
강의 길이만큼이나
따가운 불티만큼이나
몸에서 불로 물에서 흙으로 다시 태어나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될 옷 벗은 영혼
저리 니르바나로 가는 여정일까
---「갠지스 강의 구상도」중에서

봉안당 숲 안개 속
불살 타고 붙는 연기
봉두 풀어 헤치고 불티 산에 오른다
타악 탁 고승 한 분이 맨발로 걸어 가신다
세사의 거친 길 타는 심지 속에
면벽 허공에 청수로 걸러내다
몇 번이나 넘어졌을 두 발이 거마 위에 단정하다
토막 친 나무 탑 지평으로 낮아지고
도요 가마 연꽃 무늬 하얀 소반에
뜨겁게 살았던 사리 몇 알 남기셨을까
해탈교 건너는 침울한 목탁 소리
뒤따르는 불두화 연꽃의 그림자가
합장한 손끝에서 파르르 떨린다
두 평 저자 흰 벽에 살거리가 눈 뜨고
하루치 노을 나무 끝에 졸리듯 걸려있다
태워질 것 버려질 것을 안고 사는 우리
닳으면 신발도 도반 한다고 말할까
소지가 타면 저 너머 도리상 만나질런지
덤 없다 덧없다 죽음은 미완의 묵화 같다
점묘법으로 그린 초상화 앞세우고
주머니 없이 사뤄 인적 드문 산골을 지나
새 한 마리 서천 가는 뒷모습
내게 사리 없고 공 없음을
돌아보지 못할 것 같다.
---「다비」중에서

잘 지내지 못해요
산국 수국의 하늘 빛을 미신처럼 혐오한다는군요
푸른 핏줄로 감싼 어머니의 자궁을 생각해 봐요
오랫동안 기다림과 우묵한 시달림으로
당신을 내 준 아침이 터져 흐르지 않나요
부딪힌 이마가 뾰족하고
찢긴 입술 피멍으로 들어서면
놀라서 다독이던 누가 있었나요
산성도나 타인의 심상을 탓하지 않아요
편견과 갈증으로 타던 장미의 여름이 지나면
끝없이 물결치는 푸른 바다로 갈 거예요
물든 날을 즐길 거에요
어머니와 나 하늘과 바다가 서로 부둥켜안고
붉게 젖는 저녁의 감정을 울먹일까요
젖어 붉는 저녁을 물어 볼 거예요
지어 부신 꽃말로 때리지 마세요
자궁 안팎은 한 색으로 되어 있지 않더군요
푸른색은 안 되나요
꽃은 꼭 다른 색이어야 하나요
흔들리며 한 철 비에 젖는 화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즐거운 비명이죠
산방 꽃 차례로 석태 낀 눈이 환해졌다면
불안한 오늘과 내일 그리고 모레의 머리에
멋진 핀을 꽂아 드리겠어요
어차피 당신과 나는 사랑으로 피고 연습도 없는
슬픔으로 져야 하니까요
당신의 내일이 그리운 어제를 삼키고
흩어지는 말들이 미완성되는 오늘
이유가 있건 없건 한번의 삶
장렬히라고 말하고 싶어요.
---「블루 블루」중에서

구겨지기도 했을 이 없는 해오라기
걷게 되면서 날지 못한 새 비 맞고 섰다
처진 죽지에 굽어진 등마루
퇴화된 깃털이 빗물을 말리는지 터는지
골판지 같은 몸에 주름이 자글거린다
끌던 폐지 키트를 잠시 멈추고
허리를 뒤로 재껴 보지만
강대나무 꺾이는 소리에 놀란 관절
바닥을 원 없이 안아 볼 것처럼
지면으로 허리 목은 휘어지고
민들레 꽃씨처럼 무게의 반란이 희미한 길을 낸다
목관 치수에 몸피를 맞추나
능소화 담벼락에 닳고 허물어지는데
한세상 견디다가 하늘 새로 돌아간다면
수리의 몸에 들어가 완판될 것 같은 티벳 벼랑 새의 후손
메마른 입술은 무어라 말을 하지만
들리지 않는 당부
이 세상 최후의 말
섬몽을 묻지 않기로 했다.
---「시조새 - 始祖」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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