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거짓말을 하거나 당황하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순진한 사람이었다. 어느 부모든 자신의 가난을 아이는 느끼지 않게 하려 애쓰지만, 가난의 냄새는 생선 비린내와도 같아서 옷을 갈아입는다고 해서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가난은 머릿결 한 올 한 올에 스며든 비린내와 같았다. 가난은 상한 생선의 탁한 눈빛처럼 어디에서나 늘 수연을 바라보고 있었고, 다가오는 사람을 피하게 만드는 짠내를 품고 있었다.
--- p.58
모범생으로 자란 아이들은 의대 진학이나 의사가 되는 것을 꿈이라 얘기한다. 하지만 그것은 꿈이 아니다. 그것은 꿈이 아니라 갖고 싶은 직업일 뿐이다. 직업은 꿈이 될 수 없다. 부자가 되는 게 꿈이라는 사람들 또한 다를 게 없다. 의사가 꿈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부자가 꿈이고, 백억 원을 갖는 게 꿈이라 얘기한다. 알다시피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고 원하는 직업을 얻는다고 인생이 술술 풀리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인생은 그때부터 시작일 뿐이다. 부자가 되어 얼마를 손에 쥐었다고 해도 결국 또 다른 시작일 뿐, 종착지가 될 수는 없다. 의사가 되어서 어떤 삶을 살겠다, 부자가 되면 이것만큼은 꼭 이루고 싶다, 백억을 손에 쥐었을 때 진짜 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식으로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지 못하는 사람은 목표만 있고 꿈이 없는 사람이다. 지하철 환승역이 어디인지는 아는데 종착역이 어딘지는 모르는 것과 똑같다. 종착역이 어딘지를 모른다면 갈아타는 것 또한 의미가 없고, 환승역에 갈 이유가 없다는 걸 알지 못하는 이들이 오로지 환승역인 ‘부자’, ‘몇십억 부자’라는 목표만 세우고 눈을 가린 채 달려간다.
--- p.63~64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사람을 낚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물고기를 잡아다 주는 게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준다고 열심히 홍보하면 됐다. 본인은 충분히 벌어서 이미 백억 부자가 되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살살 녹아 없어질 현금만 믿고 있는 흙수저 서민을 위해 부자가 되는 길을 알려주는 선한 영향력을 펼치는 선한 부자가 되고 싶다고 떠들어대면 사람들은 알아서 몰려들었다. 대표는 물고기가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팔았다. 그 방법으로 물고기를 실제로 잡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아무 상관없었다. 방법을 팔아서 돈이 되면 그뿐이었다. 상승장이니 아무거나 말해도 어차피 다 오르는 시절이었다.
--- p.78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승리를 이끄는 수는 지루한 정수다. 정수는 늘 따분해 보이니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없다. 빨리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은 묘수처럼 사람을 혹하게 만든다. 하지만 빨리 부자가 되는 법을 알려주겠다는 말은 빨리 가난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줄기차게 이겨야만 우승하는 게 바둑이고, 줄기차게 이기려면 괴롭더라도 정수가 최선이라는 말은 투자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바둑은 묘수로 이기는 게 아니라 꾸준히 정수를 쌓아나갈 때 상대의 실수로 이기는 것이다. 수에 욕심이 깃들면 결국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묘수도 결국 성벽처럼 단단히 쌓인 정수 가운데 빛을 발한다.
--- p.89
불과 십여 년 전에 수십 억, 백 억 부자라던 이들 중 투자 시장에 남아 있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유명인의 성공담은 각색되고 미화되어 평범한 사람의 인생을 망친다. 사람은 듣고 싶은 대로 듣고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며, 추억은 덧칠되어 아름다운 역사로 각색된다. 스스로 부자라 말하는 이들은 실제가 아닌 덧칠된 경우가 많다.
--- p.94
왜 돈 좀 벌었다는 사람들이 신화처럼 꾸며낸 삶에 눈이 흐려지는 거야? 나는 당신더러 황새가 되라고 말한 적 없어. 당신은 성실하고 꾸준한 뱁새였기 때문에 내가 사랑한 거였어. 황새였기 때문에, 부자였기 때문에 사랑한 게 아니라, 성실한 걸음을 매일매일 반복하는 꾸준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내 인생을 건 거였어. 그래서 후회 없어. 아마 우리 아들도, 우리 하준이도 그렇게 생각할 거야. 하준이는 부자 아빠가 필요한 게 아니야. 자신을 사랑하고 믿어주며 언제든 곁에 있어 주는 아빠가 필요한 거야. 단번에 부자가 되고 팔자를 고치는 아빠가 아니라, 넘어졌을 때 손을 내밀어 주고 일으켜 주는 아빠가 필요한 거라고.”
--- p.214
나이가 들고 가진 게 많아지면, 또는 지켜야 할 게 많아지면 함부로 무언가를 걸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이건 약해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강해지는 것이다. 잃을 게 없는 이들이 ‘까짓거 죽으면 그만이지!’라 말한다면, 무언가를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이들은 ‘죽어도 죽을 수 없다!’라 말하며 끝까지 살아남는다. 그렇다. 살아남아야 한다. 특히 투자의 세계에서는 성공의 크기가 아니라 끝까지 성공을 유지하며 행복한 투자자로 늙어가는 것이 축복이다. 행복한 투자자로 늙는 것, 그것은 겁이 많아야 가능한 일이다. 투자로 더 먹을 수 있음에도 다음에 올 사람을 위해 손을 거두고 조금 이르게 매도하고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다.
--- p.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