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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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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1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00쪽 | 230g | 128*188*12mm
ISBN13 9791160405859

카드 뉴스로 보는 책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꽤 오랫동안 삶이 잘 풀리지 않았다. 딱히 어느 하나를 문제 삼을 수는 없었고, 오히려 삶이 전반적으로 그녀에게 불만을 품고 있는 듯했다. 많은 것들이 자꾸 회색으로 변해갔다. 처음에는 학자적인 은둔 생활과 일을 통해 세상의 저속한 것에서 벗어날 수 있어 짜릿함마저 느꼈지만, 5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바로 그 삶 때문에 시간에 비례하지 않게 빨리 나이 들었으며, 매일 펼치는 누런 종이들처럼 자신이 케케묵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가끔 그녀가 과거에서 눈을 들어 올려 현재를 바라볼 때, 그것은 결코 잡을 수 없는 신기루처럼 눈앞에서 천천히 희미해져갔다. 협회장에게 고민을 이야기해보기도 했지만, 그는 그저 그녀의 마음 상태를 직업병으로 일축했고, 그녀는 여전히 자신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삶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불만족스러웠다.
--- p.22~23

그러니까 여기가 내가 지낼 왕국이란 말이지. 팔각형 집, 방을 가득 채운 책들, 그리고 곰 한 마리. 그녀는 그 사실을 체감할 수 없었다. 꼼짝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웠다. 이처럼 엄청나게 행복한 발견을 뜻하는 단어가 있어야 마땅했다. 기쁨, 행운, 뭐든 간에 우연히 찾아온―아 그래, 천운. 일을 포기하지 않고도(그녀는 자신의 일을 사랑했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 멋진 휴양지에, 그것도 주에서 손꼽히게 훌륭한 집 중 하나에 살게 되었다. 조금 외딴 곳이기는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외로움을 사랑해왔다. 게다가 곰의 존재는 마치 엘리자베스 시대에 온 것 같은 이국적인 기쁨을 주었다.
--- p.36~37

그녀는 무방비 상태로 잠깐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 그때 왜인지는 몰라도 갑자기 마음이 조금 놓였다. 다가오는 둔중한 발소리와 함께 긁는 소리 같은 것이 났다. 분명 발톱이 부엌의 리놀륨 바닥에 따각따각 부딪치는 소리였다.
--- p.74

한때 절망적인 외로움에 사무쳐 길에서 남자를 데리고 집으로 온 때가 떠올라 가까스로 아슬아슬하게 위험을 벗어난 감각이 가라앉지 않았다. 사실은 별로 좋은 사람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던 그 남자에 대한 기억을 그녀는 여전히 회피했다. 곰도 역시 마찬가지로…… 아니야, 이건 공포심 때문이다. 공포심이 두 사건을 엮은 거야, 공포심과 공포심으로부터의 도피가.
--- p.86

이곳에서 그녀는 제 존재를 정당화할 수가 없었다. 이 모든 카드와 세세한 정보와 분류가 다 무슨 소용인가? 저마다의 질서로 기록되고 분류되어 결국에는 그녀로 하여금 체계를 찾고 비밀을 파헤칠 수 있도록 해주는 그것들이 처음에는 아름다웠으나 지금에 와서는 죄책감을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호머의 이야기만큼 살아 있으며 숨겨진 것을 밝혀낼 수 있는 유의미한 일은 결코 절대로 없을 것이었다. 그것들은 진실에 대한 이단일 뿐이었다.
--- p.113

현실적인 아내는 요크에 남겨두고, 꿈을 좇아 그가 여기로 왔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는 모험을 좋아하고 혈기 왕성하고 낭만적이었다. 그의 자리는 야생에 있었다.
--- p.126

아, 그녀는 외로웠다. 위로받을 수 없을 만큼 외로웠다. 사람과 접촉한 지 수년은 되었다. 그녀는 늘 사람과의 접촉을 발견하는 일에 서툴렀다. 마치 남자들이 썩어 문드러져가는 그녀의 영혼을 알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 p.126

혀는 근육질이었지만 마치 장어처럼 늘어나기도 하면서 비밀스러운 곳들을 모두 찾아냈고, 그동안 만난 어떤 인간과도 달리 그는 그녀의 쾌락을 위해 인내했다. 그녀가 절정에 다다르며 훌쩍였고 곰이 눈물을 핥아 갔다.
--- p.128

그녀는 남자들의 에로티시즘이 아니라 그들이 여자에게는 에로티시즘이 하나도 없을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것이 싫었다. 그로 인해 여자들은 하녀밖에 될 수 없었다.
--- p.154

이제 그녀는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순수한 정열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다. 언젠가 잠깐 우아하고 매력적인 남자를 애인으로 둔 적이 있었지만, 그가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불편했고 그 말이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뜻한다고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나중에서야 알게 된 바 그 말은 곧, 양말이 잘 개져 있고 그가 원하는 때 그가 원하는 것을 하는 한, 음식은 완벽하고 생리는 하지 않는 한, 와인을 마셔도 혀가 풀리지 않고 올리브 오일을 먹어도 배에 주름 하나 가지 않는 한 그녀를 사랑한다는 뜻이었다.
--- p.163

“곰, 나는 인간 여자에 불과해. 네 따각거리는 발톱으로 나의 얇은 피부를 찢어줘. 나는 연약해. 네게는 간단한 일이야. 그루터기 아래의 벌레에게 하듯 내 심장을 파내줘. 내 머리를 찢어 떼어내, 나의 곰.” 그녀는 그를 유혹하며 말하곤 했다.
--- p.166

그녀는 연인과 가까이 있고 싶었고 그에게 양 가슴과 자궁을바치고 싶었고 종족을 구할 쌍둥이 영웅을 임신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까지 생각하며 벌거벗고 누워서 헐떡였다. 그러나 안전하게 그를 보려면 밤이 내릴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 p.168

짐승의 냄새를 풍기는 여자, 공허하고 화가 났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어떤 쓸모도 기능도 없는 여자.
--- p.170

그가 전해준 것이 무엇인지 그녀는 몰랐다. 영웅의 씨나 마법이나 놀랄 만한 미덕은 확실히 아니었다. 그녀는 여전히 자기 자신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하고도 날카로운 짧은 순간 동안 모공 하나하나로, 혀뿌리부터 혀끝까지로, 세상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이해했다. 비로소 인간이 되었다는 느낌이 아니라 마침내 순수해졌다는 감각이었다. 순수하고, 단순하고, 당당해졌다는 감각.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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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나. “다시 태어나는 것 같은 공간”에서 루는 금기와 억압을 넘어서는 사랑에 빠진다. 이 뜻밖의 사랑은 그녀에게 강하고 순수해진 기분을 느끼게 하고, 결국 자기 자신은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 맞서게 한다. 욕망을 직시하고 존재를 탐색함으로써 삶을 회복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 편혜영 (소설가)
루가 곰에게 느끼는 성적 욕망, 대담한 행위, 사랑에 대한 갈구, 믿음, 머리를 뜯어내달라고 외치는 자기 파괴적인 충동. 원초적이고 신화적인 관계가 선사하는 놀라움. 놀라운 삽화들이 끌어내는 카타르시스. 그 충격의 중심에는 엥겔의 정확한 문장이 있다. 작가는 묻는다.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단 말인가. 엥겔의 모든 문장을 신뢰한다. 계속 읽고 싶다. 읽을 것이다.
- 강화길 (소설가)
루는 역사의 파편들을 파헤치고 해독하는 일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욕망과 발버둥을 목격하고 거기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며 환멸과 애착을 동시에 경험한다. 내면적이든 사회적이든 (과연 둘이 구분이 가능한 것이라면) 자신의 자리에 대한 의문, 존재의 의미를 찾고 부여하고 연결하는 일에 좌절과 무력함을 느껴보지 않은 자 그 어디 있는가. 『나의 곰』에서 보여지는 루가 삶을 회복하는 과정은 우화도 몽환도, 마술이나 낭만도 아니다. 무표정의 유머로 이루어진 루의 집요한 성찰을 따라가면 절로 알게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들은 기록되지 않는다는 것을. 가치는 이유가 아니라 존재라는 것을. 이유 불문하고 가차 없이 매 순간 존재하는 데 있다는 것을.
- 최재원 (시인)
기묘하고도 놀라운 책. 충격적인 울림이 있다.
- 마거릿 애트우드 (소설가)
『나의 곰』은 신비롭고 놀라운 역작이다.
- [뉴욕 타임스]
금지된 것,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 생각하기 어려운 것에 대한 놀랍도록 생생한 이야기.
- [워싱턴 포스트]
고요하게 관능적이면서도 페미니즘적인 이야기다.
- [뉴요커]
흥미진진한 이야기. 훌륭하고 감동적이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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