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우리 앞에는 진공이라는 매우 독특한 물리 시스템이 펼쳐져 있습니다. 사실 이 시스템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이름과는 달리, 텅 비어 있지 않습니다. 물리법칙에 따라 엄청난 속도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가상 입자로 채워져 있으며, 0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변동하는 에너지 장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진공이라는 이 거대한 은행에서는 누구나 에너지를 빌릴 수 있으며, 빚이 많을수록 더 짧은 삶을 살게 됩니다. 물질적 우주는 이러한 시스템, 이러한 극심한 변동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상은 여전히 진공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놀라운 변모를 겪은 우주 말입니다.
--- 「태초에 진공이 있었다」 중에서
별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명료한 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윽고 가장 강력한 광학 망원경에, 가장 깊은 우주를 향한 거대한 접시가, 즉 미지의 별이나 먼 은하에서 방출되는 전파 신호를 듣기 위한 거대한 귀가 더해졌습니다. 전파 천문학이 탄생한 것이죠. 이로써 우리는 특징적인 전파 신호를 내보내는 신비로운 천체들을 발견할 수 있었고 이에 펄서나 퀘이사와 같은 이국적인 이름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일부 현상의 배후에는 물질의 새로운 응집 상태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려면 수십 년의 연구가 필요할 것입니다. 가령 거대한 천체의 중심부에서 포효하는 중력의 힘 때문에 물질이 극도로 미세한 성분으로 부서져 엄청난 밀도의 중성자별이나 블랙홀이 만들어지는 것과 같은 일 말입니다.
--- 「태초에 진공이 있었다」 중에서
주체할 수 없는 숨결의 개입으로 그 거품은 과도하게 커집니다. 불확정성 원리의 엄격한 의식에 따라 차분하게 질서 있게 요동치던 극미한 물체가, 갑자기 발작적으로 부풀어 오르기 시작합니다. 그 압도적인 광란은 주변의 진공을 집어삼켜 동일한 메커니즘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모든 것이 너무도 빨라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보려면 초고속 카메라가 필요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어떤 장비도 그러한 급속한 변화의 세부를 포착할 정도로 빠르게 촬영할 수 없습니다. 그런 다음 갑자기 모든 것이 진정되고, 이제 자신의 고유한 생명을 가진 듯이 보이는 이상한 것이, 비록 엄청나게 줄어든 속도이지만, 계속 확장됩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우리의 우주가 탄생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첫째 날이 끝났고, 다음 138억 년 동안 진화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이미 갖춘 우주가 탄생했습니다.
--- 「첫째 날 터져 나오는 숨결이 첫 번째 경이로움을 낳다」 중에서
우리는 빅뱅이 일어난 지 1,000억 분의 1초 후에 이르렀고, 이 순간부터 모든 것이 훨씬 더 명확해집니다. 힉스 보손을 발견하고 그 질량을 측정한 이후로, 이 이야기에 이제 비밀이 거의 없습니다. 갓 태어난 우주는 이미 거대합니다. 10억km라는 상당한 크기에 도달했습니다. 온도가 특정 임계값 이하로 떨어지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힉스 입자가 갑자기 응결되어 결정화됩니다. 응결 온도가 되자 힉스 입자는 살아남지 못하고 진공이라는 편안한 무덤 속으로 숨어버립니다. 그들을 다시 볼 수 있기까지는 많은 인내가 필요할 것입니다. 지구에 있는 누군가가 고에너지 충돌을 일으켜 그들을 단 1초도 안 되는 순간 동안만이라도 다시 살려낼 때까지 138억 년을 기다려야 할 테니까요. p.118 둘째 날 섬세한 손길이 모든 것을 변화시키다
우주의 모든 원시핵이 형성되는 데는 3분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3분이 지나면 온도와 밀도가 더 이상 핵반응을 유지할 만큼 높지 않게 됩니다. 이는 좋은 일이 될 것입니다. 이 과정이 너무 오래 지속되었다면 우주는 더 무거운 핵을 만들기 위해 많은 양의 자유양성자를 소비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0분만 지속되었더라도 거의 모든 수소가 사라졌을 것입니다. 우주에 헬륨이 풍부하다는 것은 빅뱅 이론의 또 다른 확증이 됩니다. 이 원소는 별의 중심부에서도 생성되지만 원시 헬륨이 없다면 합계가 맞지 않을 것입니다. 우주의 모든 별이 140억 년 동안 수소를 태우더라도 측정된 양만큼 풍부하게 헬륨을 생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때 생성된 핵은 수십억 년 동안 변하지 않았고 오늘날에도 우주에 존재하는 핵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훨씬 뒤에 가장 무거운 별의 거대한 핵 용광로에서 탄생할 주기율표의 무거운 원소들의 핵이 여기에 더해질 것입니다.
--- 「셋째 날 불멸자들의 탄생」 중에서
여섯째 날이 시작되었습니다. 우주는 이제 무수히 많은 거대한 별들로 빛나고 있습니다. 별들은 우주적 규모로 보면 매우 빠른 주기로 세대를 거듭하며 증식합니다. 별들 중 하나가 죽을 때마다, 별을 둘러싸고 있는 이온화된 수소와 헬륨의 거대한 구름은 점점 무거운 원소로 풍부해져, 가스와 먼지의 커다란 성운이 사방에 퍼지고, 그 성운은 다시 더 작고 수명이 긴 새로운 세대의 별을 낳습니다. 중력은 거대한 암흑 물질 주위에 형성된 이러한 물질 덩어리에 천천히 작용합니다. 질량 면에서 훨씬 압도적인 덩어리들은 진정한 퍼텐셜 우물을 생성하여 별과 가스, 먼지가 그 속으로 빨려들어갑니다. 모든 것이 그 속으로 곤두박질치는 이 무無는 모든 것을 가차 없이 끌어당기는 보이지 않는 어둠의 심장입니다.
--- 「여섯째 날 혼돈이 질서로 위장하다」 중에서
구름이 뜨겁고 계속 팽창하는 한, 이 거대한 구름을 응집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점차 냉각되고 속도가 감소함에 따라, 중력이 팽창력을 압도하고 물질 덩어리 주위에 더 크고 무거운 응집 중심을 형성합니다. 이제 가스와 먼지로 이루어진 커다란 원반이 형성되어 중심 주위를 돌고, 중심에서 질량의 대부분이, 특히수소가 밀집됩니다. 은하 내부에는 은하의 미니어처가 형성됩니다. 큰 구름의 일부가 자체 중력의 힘으로 붕괴되어 중심에서 별이 탄생하는 태양 성운이 형성되고, 그 주변에는 일종의 강착 원반이 형성되는데, 다양한 고리에 분포된 다른 더 작은 응집 중심들이 구분될 수 있는 형태로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른바 원시행성계 원반이죠. 갑자기 태양이 빛나기 시작하고 거대한 가스 행성들이 형성될 것입니다. 그런 다음 더 천천히 그리고 더 거친 경로를 따라 가장 안쪽 궤도의 암석 행성들이 모일 것입니다.
--- 「일곱째 날 복잡한 형태의 무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