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라는 이름을 가진 사상가가 실제로 존재했는지, 그가 『노자』를 실제로 저술했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그의 존재에 대해서 우리가 정확히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노자가 유가를 비롯한 당시 주류 학파의 관점을 매우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노자』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제1장은 당시 세상을 지배하던 주류 사상에 대한 도전장으로 읽을 수 있다. “당신들이 말하는 도와 진리, 그것은 진짜 진리나 도가 아니다!”
--- p.25~26
노자는 인간 사회를 지배하는 기존의 질서 자체가 근거 없는 편견에 불과하며, 그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언제든 교체 가능한 인위적 질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노자』를 읽는 작업은 우리의 인식에 채워진 족쇄를 걷어내고, 존재의 자연본성(본질)에 뿌리내린 진정한 가치를 찾아나가는 여정에 참여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제1장과 제2장은 앞으로 노자가 펼치게 될 무위의 정치론 및 무위의 수행론으로 나아가는 『노자』 전체의 ‘서론’이라고 볼 수 있다.
--- p.37
『노자』에는 ‘천지도’를 설명하는 구절이 세 번 나온다. 제72장의 ‘천지도天之道, 부쟁이선승不爭而善勝’, 제77장의 ‘천지도天之道, 손유여이보부족損有餘而補不足’, 제81장의 ‘천지도天之道,이이불해利而不害’다. 이런 구절을 종합할 때, 우리는 ‘천지도’가 지나친 것을 덜어내고 부족한 것을 북돋는 ‘균형의 원리’이며, 경쟁하지 않고 스스로 움직이는 ‘자율의 원리’이며, 세상에 손해를 끼치지 않는 ‘이익의 원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균형, 자율, 이익의 원리인 ‘천지도’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무한한 운동성을 가진다.
--- p.88
노자가 우리에게 권유하는 바람직한 삶의 태도는 어느 선에서 ‘멈추는’ 것이다. 과도함을 알고 멈추는 것이 노자가 가르치는 지혜[明]의 핵심이다. 스스로 과도함을 알고 멈출 줄 알면 위험하지 않다. 적절한 선을 넘어 마구 달려가면 위태롭다[殆].
--- p.288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많은 지식, 많은 경험이 아니라 메타인지능력이다. 그것이 노자가 말하는 명明, 즉 통찰력이다. 통찰력을 가진 지도자는 모든 것을 알지 못해도 인간으로서의 공통감각과 암묵적 지식을 근거로 지도자로서 책임을 지는 결정을 할 수 있다. 무식해야 잘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지나친 지식이 오히려 행동, 판단, 결정의 장애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많은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식의 근거를 이해하는 통찰력과 결단력, 그리고 그 결정에 대해 책임지는 용기다.
--- p.403
‘신비로운 일치’의 정치가 실현되면 이런 당연한 일이 당연하게 실천으로 옮겨진다. 노자의 이런 사상은 사실은 특별히 이상주의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적어도 현대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상식으로, 우리 헌법 안에서도 천명되어 있기 때문이다. 군주, 지도자, 성인이 공평무사함을 실천할 수 있을 때 천하는 그를, 즉 그 지도자를 귀하게 여길 것이다. 그런 지도자는 제29장, 제48장에 나온 것처럼 ‘취천하取天下’ 할 수 있다. 즉 천하를 얻을 수 있다.
--- p.480
제68장은 대단히 수준 높은 전쟁 철학이다. 노자의 전체적 입장은 분명히 반전反戰이지만, 그렇다고 그를 부전론자不戰論者라고 말할 수는 없다. 노자는 제30장과 제31장 등에서 전쟁을 부정하고 비판하는 입장을 드러낸다. 그러나 동시에 부득이한 방어전을 부정하지 않는다. 한편 노자는 제57장과 제68장 등에서 전쟁에서 모략의 사용을 용인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노자』에서 병법 및 전쟁에 대한 논의는 노자 전체의 약 5%에 불과하다. 따라서 『노자』와 동시대에 출현한 것으로 추정되는 『손자병법』과 같은 차원에서 노자를 논할 수는 없다. 하지만 노자의 전쟁론은 원리론 측면에서는 손자에 못지않게 깊은 사유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병법 및 전쟁에 대한 그의 사유는 현실적인 깊이를 가지고 있다. 노자를 병법서라고 단순화하는 것은 곤란하지만, 그의 병법 사상의 심오함을 부정할 수는 없다.
--- p.572~573
성인이 자기의 이익을 포기하고 세상 사람들을 위해 나누어준다고 해서 자신의 이익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것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갖지 않으려 하고 쌓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오히려 세상의 모든 것은 그의 소유물이고 그의 영역 안에 머물러 있게 된다. 그런 역설을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비움을 통한 얻음’이라는 노자의 원리는 인류 정신사의 핵심 주제라고 말할 수 있다.
--- p.6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