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사회보험의 한계는 2020년 코로나19 당시 불완전한 고용보험의 실상으로 집중적으로 드러났다. 코로나19로 사업장 문이 닫히고 해고가 급증하자 정규직은 휴업수당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지만, 방과 후 교사, 대리운전기사, 문화센터 강사, 스포츠 강사, 보험 설계사, 관광가이드 등 특수고용직·프리랜서는 휴업수당은 물론 고용보험 가입대상도 아니어서 실업급여도 받을 수 없었다. 결국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이들에게 특별지원금을 지급하는 등 조치를 취해야 했다. 고용보험 재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2020년 총선에 즈음하여 ‘전국민 고용보험’으로 모아졌다. 그 결과 방과 후 교사, 대리운전기사, 관광가이드 등 일부 직종이 ‘노무제공자’ 명칭으로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되었다. 예술인도 고용보험 피보험자격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제외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그대로 둔 채 ‘전국민 고용보험’을 말할 수 없다. 사용자의 실질적인 지휘·감독을 받아 일하지만 형식상 고용계약이 아니라는 이유로 고용보험 적용 대상이 되지 못한 ‘노무제공자’들 가운데 일부 직종만을 특정해 고용보험 가입 대상으로 한 결과, 문화센터 강사·스포츠 트레이너 등 노무제공자는 여전히 배제되어 있다. 데이터라벨러 등 새로 생기는 직종이 제외된 것은 물론이다. 예술인도 고용보험 적용 대상이 되었지만, ‘프리랜서’라는 외양 때문에 배제된 이들이 있다. 번역가·웹 디자이너·유튜브 편집자 등이다.
명실상부한 전국민 고용보험이 실현되려면 ‘고용계약 외 다른 형식의 계약으로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하여 자신이 직접 노무를 제공하고 그 대가를 지급받는 사람’인 노무제공자, ‘일정한 기업이나 조직에 소속되지 않은 자로서 사용자에게 인적 용역을 제공하고 대가를 지급받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한 사람’인 프리랜서를 고용보험 적용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사회보험의 미래 - “그 회사 4대 보험은 돼?” 더 이상 묻지 않도록」중에서
사회보험 개혁에서 가장 시급한 일은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이다. 사회보험 사각지대는 노동시장 격차와 사회경제적 차별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고액 자산을 보유하거나 사적 보험을 충분히 갖춘 사람이 아니라면, 사각지대는 곧 빈곤으로 이어진다. 사각지대를 없애는 일은 전국민 사회보험을 선언한 20여 년 전에 완료되었어야 했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은 전 국민을 포괄하고, 노령과 질병으로 인한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은 일하는 모든 사람을 포괄하고, 누구든 일하면서 건강을 해치지 않고 일과 가정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국민연금 사각지대의 핵심은, 가입 요건 제한과 같은 제도적 사각지대 뿐만 아니라 가입하고서도 노령연금수령에 필요한 최소가입기간을 채우지 못하는 실질적 사각지대도 크다는 데 있다. 미래의 국민연금은 실질적으로 모든 국민을 포괄해야 한다. 미래의 국민연금은 누구나 빠짐없이 65세가 넘었을 때 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모든 국민에게 최소가입기간 10년을 보장한다. 18세부터 60세까지 모든 국민을 당연가입으로 전환한다. 당연가입으로 자격요건을 부여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노동시장 진입기인 18~23세 모든 국민에게, 은퇴를 준비하는 60~65세 사이로 소득이 없는 국민 모두에게 국가가 보험료를 납입한다. 고용 형태와 소득 유무를 묻지 않고 보편적으로 노령연금 수급기간을 채우도록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다. 이로써 국민연금 사각지대는 원천적으로 해소된다.
국가가 보장하는 기본가입기간 시기에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면 그만큼은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추가된다. 양육과 돌봄에 대한 크레딧, 군 복무, 재난 구호 등의 자원봉사 크레딧도 그만큼 가산된다. 이를 감안하면 상당수의 국민은 경제활동과 별도로 10년이 넘는 국민연금 가입 이력을 쌓을 수 있게 된다. 여기에 자신의 경제활동에 따른 가입 이력이 더해진다면, 국민연금 실제 가입기간은 현행보다 크게 늘어나 더 많은 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다.
많은 국민연금 개혁안들이 흔히 공적연금과 퇴직연금 등을 포함한 ‘다층체계’를 만들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우선 국민연금의 가입기간을 충분히 확보해 수급액을 늘릴 필요가 있다. 충분한 가입기간을 확보하기 위해 세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첫째는 보편적으로 보장되는 10년 가입기간(평균소득월액 기준), 둘째는 단시간 저소득 근로까지 포함한 모든 경제활동에 따른 가입이력, 셋째는 돌봄·육아·군 복무 등으로 인한 추가 크레딧이다. 이렇게 해서 공적연금의 사각지대는 원천적으로 해소된다. 여기에 다양한 크레딧까지 더해지면 연금 수급액의 가장 큰 변수인 가입기간이 늘어나게 돼, 국민연금의 노후소득보장기능이 한층 더 활성화될 수 있다.
건강보험은 가입대상으로는 전 국민을 포괄하고 있으나 보장성이 여전히 60%대 수준이다. 상병수당이 들어있지 않아 질병으로 인한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한다. 고용보험 사각지대는 노무제공자 중 일부 직종을 제외한 부분, 프리랜서, 무급가족종사자, 자영업자, 가사노동자 등 취업자의 53%에 이를 만큼 넓다.
산재보험은 농림어업의 개인 사업장 5인 미만 고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 사각지대가 있다. 노무제공자 중 일부 직종은 여전히 산재 보험료의 절반을 당사자가 부담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용자의 배치전환의무도 명시되어 있지 않고, 산재보험법상 관련 지원도 들어있지 않아 산재 이후 고용안정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사회보험에 따라 사각지대의 유형은 다소 차이가 있다.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은 가입 자격 제한과 같은 제도적 사각지대가 여전히 크다. 여기에 비해 국민연금은 제도적 사각지대는 상대적으로 어느 정도 해소됐지만 실질적인 사각지대가 크다는 문제가 있다. 건강보험은 낮은 보장성이나 상병수당 부재,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 문제 등이 있다.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각각의 사회보험 모두 사각지대 해소는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사회보험의 미래 - 누구나 국민연금 기본가입기간 10년 보장, 사각지대 원천적 해소」중에서
국가가 역할을 해야 한다. 1:1의 보험료 분담 구조에, 새로운 주체인 국가가 더해져야 한다. 가입자와 사용자에 이어 국가가 나서 1:1:1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국가는 단순한 보험의 운영자가 아니다. 헌법 제34조 제2항이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고 강조하듯,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지닌 사회보험제도 형성과 운영의 핵심 주체다. 제도 운영뿐 아니라 제도가 당초 취지대로 운영될 수 있는 수준의 충분한 재원 확보도 사회보험의 또 다른 주체인 국가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임이다.
국민연금이 처한 난제도 국가가 한 주체로서 책임을 다하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건강보험에서 이미 예상 보험료 수입의 20%를 국고에서 지원하는 것처럼, 국민연금에서도 국고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2030년까지 국민연금 보험료 예상수입액의 50%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렇게 확보된 재원은 크레딧 지원, 저소득층 보험료 지원, 업무상 재해 휴직자 기여금 지원, 영세사업자 부담금 지원, 기본가입기간 지원, 장애연금 및 유족연금 지원, 노령연금 지급에 순차로 사용한다. 국고지원액이 우선적으로 국민 각자의 가입기간 확보와 보험료 납입 지원에 사용되면, 가입자들은 자신의 가입이력이 쌓이고 연금수급예상액이 늘어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가 헌법에 따라 적극적 노력을 기울이면 노후소득 보장과 소득재분배, 재정적 지속가능성 모두를 잡을 수 있다.
국가의 책임은 재원 확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보험 제도의 운영과 관련한 다양한 현안에 대한 해법 모색도 국가의 중요한 역할이다. 건강보험은 보장성 확보를 위한 재원조달 뿐 아니라 의료전달체계를 합리적으로 개편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가입자와 공급자는 물론 각각의 주체 안에서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갈등적 사안이다. 국가는 단순한 중재자가 아니라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적극적으로 방안을 만들고 실현해 나가야 한다. 역대 정부는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해 왔다. 국민연금에 대해서는 더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기금의 재정안정성 문제를 과도할 정도로 상정하면서도 정작 구체적인 대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국가는 사회보험이 직면한 갈등적 현안에 대해 적극적 대안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해 나가야 할 의무가 있다. 미래의 사회보험에서 국가는 단순한 사회보험 운영자가 아니다.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떼어두고는 사회보험의 미래를 그릴 수 없다.
---「사회보험의 미래 - 국가도 사회보험의 책임있는 주체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