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1월 24일, 카사블랑카에서 열린 미국 대통령과 영국 총리의 회담 마지막 날에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쟁을 끝내는 조건을 내놓았다. “우리는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이 무조건적으로 항복할 때까지 싸워야 합니다.” 그의 의지는 바위처럼 단단해 보였다. 절대로 물러섬 없는 이 단호한 발언―‘무조건 항복’―과 함께 나치 최고사령부의 환상은 모래밭에 처박히고 말았다. --- p.27
윈스턴 처칠이 퀘벡 회담의 마지막에 한 라디오 연설문이 셸렌베르크의 책상을 거쳐 갔다. 그는 별다른 생각 없이 읽기 시작했다. 연합국의 승리를 예측하는 낙관주의를 목이 터지라 외치는 장광설이었는데, 그 역시 그 필연성에 대한 확신이 점점 커지는 상태라서 고통스러웠다. 그러다 연설문 페이지 중간쯤에서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저와 루스벨트 대통령은 스탈린 원수와의 3자 회담을 강력히 바라고 있습니다.”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 p.72
이곳은 ‘쿠엔츠호수’, 공식적으로는 아프베어의 ‘특수 과제를 위한 특별 훈련 코스’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좀 더 쉬운 말로 하자면, 공작원과 암살자들을 양성하는 아프베어의 엘리트 특공대 학교였다. 이곳 훈련생들은 독일군의 선두에 서서 벨기에, 네덜란드, 발칸반도의 적진으로 들어가 대담한 임무를 차례차례 수행한 브란덴부르크 사단의 강인한 자원자들 가운데서 특별히 선발되었다. 한마디로 그들은 나치의 슈퍼맨이었다. --- p.114
스코르체니는 발뒤꿈치를 딱 붙이고 차렷 자세를 취했다. 히틀러가 오른팔을 곧게 뻗어서 그 유명한 나치식 경례를 했다. 그는 암회색 군복을 입었고 목 부분을 채우지 않아서 흰색 셔츠와 검은 넥타이가 드러났다. 가슴에는 1급 철십자 훈장을 꽂았다. 히틀러가 마침내 입을 열자 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네에게 맡길 중대한 임무가 있네. 내 친구이자 우리의 충성스러운 전우인 무솔리니가 어제 왕에게 배신당하고 체포됐네.” --- p.145
프란츠 마이어는 낮과 밤의 대부분을 테헤란의 여러 카페를 드나들면서 보냈다. 그는 남들 앞에서 대화하는 어조로 말하는 비밀이 제일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웠다. 위대한 게임을 오랫동안 해온 스파이에게는 그의 시그니처로 자리 잡는 고유한 방식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가 으레 일을 처리하는 스타일 말이다. 암호명 막스 요원의 시그니처는 관심 있으면 누구라도 다 볼 수 있는 이렇게 북적거리는 카페의 테이블에서 그의 비밀 정보원과 만나는 것이었다. --- p.175
현재 그는 3자 회담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없었으므로, 민첩한 실용성을 발휘해 그가 아는 것으로 생각을 돌렸다. 합리적으로 예상할 때, 세 연합국 지도자들이 만났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암살을 계획하는 사람답게 논리적으로 가장 먼저 보안에 대해 생각했다. 3명의 우두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군대가 모일 것이다. 전시 체제로 완전무장한 군대. 그 불길한 이미지가 머릿속에 자리 잡자마자 그는 생각을 정확하게 바로잡았다. 하나의 군대가 아니고 3개의 군대가 존재하겠지. 그 사실은 그를 생각에 잠기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