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는 낡은 문명을 철저히 파괴하는 것이 군중의 가장 명백한 임무였다. 이러한 임무는 사실 오늘날에만 수행된 건 아니었다. 문명이 기대는 도덕적 힘이 약해지는 순간, 그 문명은 야만인이라는 타당한 이름이 붙은 무의식적이고 잔인한 군중들에 의해 최종적으로 해체된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 준다.
--- p.17~18
세상의 지배자들, 모든 종교 또는 제국의 창시자들, 모든 신념의 사도들, 저명한 정치가들, 그리고 더 작게 보자면 소집단의 우두머리들은 모두 항상 군중의 특성에 대해 본능적이고 때로는 확실한 지식을 가진 무의식적 심리학자들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쉽게 군중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군중의 특성에 대해 정확히 안 덕분이었다.
--- p.19
어떤 생각과 감정들은 군중 속 개인의 경우에만 일어나고 행동으로 이뤄진다. 심리적 군중은 이질적인 요소로 구성된 잠정적 존재이다. 생명체를 구성하는 세포들이 모여 각각 단독으로 가지고 있던 성질과는 매우 다른 성질을 보이듯, 이 이질적 요소들은 잠시 결합해 군중을 형성한다.
--- p.28~29
군중은 살인과 방화 및 모든 종류의 범죄에 대해 유죄를 선고받을 수 있지만, 또한 헌신과 희생, 청렴 등 홀로 있는 개인이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고귀한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영광, 명예, 애국심의 정서에 호소하는 것은 특히나 군중의 일부를 구성하는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며, 종종 그의 목숨을 희생하는 것마저도 가능하게 한다. 십자군이나 프랑스혁명의 의용군들처럼 역사에는 이와 유사한 사례가 많다.
--- p.58
군중의 상상력을 연구할 때 우리는 특히 군중이 이미지가 만들어 내는 인상에 쉽게 영향받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러한 이미지는 항상 준비된 것은 아니지만, 말과 공식을 교묘하게 이용하면 쉽게 불러일으킬 수 있다. 기술을 사용하면 말과 공식은 실제로 신비한 힘을 갖게 된다. 과거에 마술사들이 하던 것과 똑같다. 말과 공식은 군중들의 마음속에 가장 무서운 폭풍우를 일으킬 수도 있고, 또 그 폭풍우를 가라앉힐 수도 있다. 말과 공식의 힘에 희생된 사람들의 뼈만 단순히 쌓아 올려도 고대 이집트 쿠푸왕의 피라미드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 p.107
단기간에 사람들을 선동하여 어떤 위험한 행위를 하도록 유도하려면, 예를 들어 궁전을 약탈하거나 요새나 바리케이드 방어를 위해 죽음까지도 불사하게끔 만들려면 사람들에게 가장 빠른 암시를 통해 영향을 주어야 한다. 이런 암시를 위해서는 예시를 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러나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특정한 상황에 부닥쳤을 때 암시에 영향을 받을 수 있도록 미리 준비되어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이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사람은 ‘명망’이라는 특성이 있어야 한다.
--- p.128
프랑스에서 1790년부터 1820년까지의 30년이라는 짧지만, 한 세대에 해당하는 시기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 시기에 군중은, 처음에는 군주제를 옹호했다가 혁명에 극렬히 찬성하며 제국주의를 신봉했다. 하지만 나중에 그들은 다시 군주제를 옹호했다. 종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시간 동안 군중은 가톨릭에서 무신론으로, 그다음에는 이신론으로, 그리고 다시 가장 친숙한 형태의 가톨릭으로 돌아갔다.
--- p.152
프랑스 정부는 여러 시기에, 특히 1848년 이전에는 교수, 공무원, 문인 등 계몽된 계층 중에서 배심원을 신중하게 뽑았다. 그러나 현재 배심원은 대부분 소상인, 소자본을 가진 자, 고용인 등으로 구성된다. 놀랍게도 배심원단의 구성이 어떠했든 배심원단의 결정은 같았다. 배심원 제도에 적대적이었던 판사들조차도 배심원단 판결의 정확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p.173
유권자는 특히 자신의 탐욕과 허영심을 채워 주는 후보자의 아첨에 집착한다. 유권자들은 가장 사치스러운 아첨에 압도되길 원하므로 후보자는 그들에게 가장 환상적인 약속을 하는 데 주저해서는 안 된다. 만약 유권자가 노동자라면 고용주를 너무 모욕하고 낙인찍어서도 안 된다. 경쟁 후보에 관해서는, 확언, 반복 및 전염을 통해 그가 순 악당이며, 범죄자라는 사실을 유권자에게 납득시키고 자신의 입지를 확립함으로써, 경쟁 후보의 기회를 파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물론 타당한 증거 같은 것은 소용없다.
--- p.182~183
프랑스혁명의 역사는 의회가 어느 정도까지 자의식을 잃고 그들의 이익에 가장 반하는 암시에 복종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귀족들이 특권을 포기하는 데에는 엄청난 희생이 필요했음에도 귀족들은 제헌의회가 열리던 그 유명한 밤에 아무 주저 없이 특권을 포기할 수 있었다. 국민공회 의원들은 자신들의 불가침성을 포기함으로써 영원한 죽음의 위협 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들은 오늘 동료를 보내는 단두대가 내일 자신의 운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완벽히 알고 있었음에도 이 단계를 밟았고, 서로를 죽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 p.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