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세영의 《조선어사전》이 발간된 1938년으로부터 86년이 지난 2024년, 지식공작소에서 이 책을 영인본으로 복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전에 문세영과 그의 《조선어사전》을 다각도로 연구해 온 역사학자로서 필자는 이 소식에 감개무량했다. 《조선어사전》은 반드시 복간해야 할 우리말 사전이라고 단언한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도 우리말 사전은 펴내지 못했다.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조선어학자인 문세영은 1938년 최초로 제대로 된 우리말 사전을 편찬했다.
문세영[文世榮, 1895∼1952, 호는 청람(靑嵐)]은 1917년 동양대학에 입학한 이후 유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에게 우리말 사전이 없다는 현실을 타개하고 일본인이 만든 일본어 대역체의 《조선어사전》(1920)만 있는 상황을 타파하고자, 우리말 어휘를 수집해 카드에 기입하기 시작했다.
1929년부터 카드를 뜻풀이하면서 본격적인 사전 편찬에 돌입한 문세영은 10년간의 원고 정리와 교정 작업을 마무리해 44세가 된 1938년 7월에 10만 어휘에 달하는 《조선어사전》을 발행한다. 《조선어사전》은 박문서관 발행으로 국판 1,696쪽에 달했으며, 4단 내리짜기로 쓰인 중사전 규모였다. 조선말 사전이 없는 것을 방관하거나 비판만 난무하던 현실에서 1917년에서 1938년까지 묵묵히 22년간 어휘를 수집·주해·교정한 결과다.
《조선어사전》의 국어사전사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은 일제 시기 조선총독부가 만든 58,639어의 《조선어사전》을 능가한 10만 어휘의 우리말 사전이다. 우리 민족의 손으로 제대로 만든 조선어사전이 없다는 부끄러움을 해소한 것이다. 그의 사전은 우리 민족이 문화 민족임을 자부하게 했다.
둘째,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은 민족어 규범에 의거하여 최초로 편찬한 우리말 사전이다. 이 사전은 조선어학회가 발표한 〈한글맞춤법 통일안〉(1933)과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1936)을 토대로 편찬했다.
셋째, 조선어사전사(朝鮮語辭典史)에서 ‘한글전용’을 실천했다. 일제시기 일한혼용체의 일어 문장과 국한문혼용체의 조선어 문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언어 현실에서 이 사전이 국문전용을 실천했다는 데서 그 선구성을 확인할 수 있다.
넷째, 문세영의 단독 저술이다. 이 점에서 집단적 성과물인 여타 사전들과 차별화된다. 사전을 단독으로 저술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문세영은 그 일을 해냈다.
다섯째, 해방 후 조선어학회(한글학회의 전신)가 편찬하고 있던 《조선말 큰사전》에 영향을 미쳤다.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은 1938년 7월 10일 초판 1,000부를 발행했다. 초판은 수일 만에 매진되었고, 1938년 12월 15일 다시 재판 2,000부를 찍었다. 당시 베스트셀러였다. 이 사전은 조국을 일제 침략자의 손아귀에서 해방하기 위해 중국 관내의 조선의용군에서 활약하던 독립군의 사기를 높이는 역할을 했다. 1941년 조선의용군에서 활동한 김학철(1916~2001)은 《격정시대》에서 “문세영 사전이 우리의 사기를 활화산같이 북돋워 주웠다”고 기술했다.
해방 후 문세영은 우리글을 빛낸 3대 저술가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조선어학회는 1946년 7월 8일 우리글을 빛낸 3대 저술가로 《조선문자급어학사》의 저자 김윤경, 《우리말본》의 저자 최현배, 그리고 《조선어사전》의 저자 문세영을 뽑았다. 또 1949년 10월 25일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은 국어학 4대 저서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었다. 이와 같이 문세영과 그의 《조선어사전》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전언에 의하면 문세영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북한 정권이 행한 유명인사 모시기 작전의 대상이 되어 납북되었고, 1952년 별세했다고 한다. 필자는 그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상을 하나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했다. 2012년 7월 4일 문화체육관광부에 한글발전유공자 포상 후보자로 문세영을 추천했고, 관련 서류와 증빙 자료를 상세히 첨부했다.
그런데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문세영의 납북을 입증하는 서류를 제출하라는 말을 들었다. 필자는 “문세영 사망에 대한 의견서”만을 제출할 수 있었는데, 불행히도 인터넷상 “한국전쟁납북사건자료원” 납북자 명단에 문세영에 대한 기록이 없었기 때문이다.
담당 공무원 역시 문세영 선생이 최고의 훈장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했지만, 그의 납북을 입증할 방도가 없어 포상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분단의 비극이다. 그러나 문세영이 국보급 인물인 것은 틀림없다. 이제라도 대한민국이 특별조치를 단행해서라도 그에게 포상하기를 바란다.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은 조선말글 말살 정책에 광분한 일제 말기에 민족어의 말살을 막고 민족어를 보전·유지하는 역할을 해냈다. 그의 우리말 사전 편찬은 문화투쟁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그의 《조선어사전》은 해방 후 1950년대 말 다른 사전들이 나오기 전까지 거의 유일한 국어사전 역할을 했다.
2024년 새롭게 복간되는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을 통해, 그의 우리말과 한글 사랑에 대한 끈질긴 투지와 진면목을 확인하기를 바란다.
- 박용규 (前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
우리는 고유한 말과 글자를 지녔으면서도 1910년대까지 우리말 사전을 가지지 못하였다. 결심과 집념의 개척자가 있어야 했다. 누구나 결심을 하나 집념으로 성취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말 사전 편찬의 개척에도 그러했다. 1910년대에 주시경 선생과 그 제자들이 시작한 《말모이》 편찬이 첫 시도였는데 완성을 보지 못하였고, 이후 뜻있는 이들의 노력이 이어졌으나 중도에 그치고 말았다. 그 성취의 보람을 거둔 이는 단연, 청람 문세영 선생이었다.
선생은 1916년에 일본 동경으로 가, 1917년 동양대학 윤리교육과에 유학하면서 아직 우리말 사전이 없는 민족임을 수치스럽게 여겨 사전을 편찬할 결심을 하였다. 20대에 결심하여 20여 년 만에 이뤄낸 결실이 8~9만 어휘의 《조선어사전》이었다. 현대 언어사전의 면모를 갖춘 우리말 뜻풀이사전의 우뚝한 첫 봉우리였다.
이제는 우리말 사전의 고전으로 희귀본(稀貴本)이 되어 구해 보기 어렵게 되었다. 큰 도서관이나 박물관에 가도 혹 소장본으로 깊숙이 보관되어 열람하기 어렵다고 한다. 보물은 실물로 보거나 만져 볼 때 그 가치가 빛난다.
기록의 보물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기록물은 책이다. 책 가운데도 ‘사전(사서)’이 아닐까 싶다. 사전이야말로 인류가 지은 책 가운데 가장 잘 지은 지식의 문헌이다. 귀한 책은 유리 상자 속의 전시물로나 소장본으로 수장고에 간직만 해야 할까? 책도 얼굴과 향기가 있는 생물로 비유할 수 있다. 손으로 책장을 넘기면서 활자로 박힌 말의 행렬을 읽어 나갈 때 책의 생명을 느낄 수 있다.
읽고 쓰기의 수단이 컴퓨터인 디지털 시대를 맞았다. 사전도 종이책 사전이 물러나고 전자사전이 실세가 되었다. 그런 즈음에 우리말 사전 편찬의 첫 성취물인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을 복간한 지식공작소가 있어 반갑다. 고전의 가치와 보존을 생각한 특별한 출판이 아닐 수 없다.
수천 년 책의 역사에서 종이를 이용한 필사본과 인쇄본이 나오게 되면서 인류의 지식은 축적되고 확장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디지털 시대라 해도 우리 눈에 익숙한 책은 활자본이고 종이책이었다. 종이책의 품위와 가치를 아래 두 분의 글로 되새겨 보기 바란다.
책만은 ‘책’보다 ‘冊’으로 쓰고 싶다. ‘책’보다 ‘冊’이 더 아름답고 더 책답다. 책은 읽는 것인가? 보는 것인가? 어루만지는 것인가? 하면 다 되는 것이 책이다. 책은 읽기만 하는 것이라면 그건 책에게 너무 가혹하고 원시적인 평가다.
의복이나 주택은 보온만을 위한 세기(世紀)는 벌써 아니다. 육체를 위해서도 이미 그렇거든 하물며 감정의, 정신의, 사상의 의복이요 주택인 책에 있어서랴!
책은 한껏 아름다워라. 그대는 인공으로 된 모든 문화물 가운데 꽃이요 천사요 또한 제왕이기 때문이다.
이태준(1904~?). 《尙虛 文學讀本》. 白楊堂. 1946.
책은 읽고 싶은 독서욕과 함께 갖고 싶은 욕망을 부르는 물성을 갖추어야 한다. 왜 옛 사람들이 책의 장정에 노력을 기울였겠는가. ‘디지털 시대’의 전자책이 대세라고 해도 종이책이 갖는 품격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생각이다. 서점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디자인과 편집이 뛰어난 책이다. 좋은 내용과 반영구의 지질이라면 그 책은 소장본이 된다.
김미옥. “책의 운명”, 《중앙일보》. 2024. 1. 16.
이태준 님이 예찬(禮讚)한 “책”은 종이책이었다. 책에 대한 예찬으로 이보다 더 훌륭한 표현이 있을까 싶다. 오늘날의 전자책을 보았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김미옥 작가의 “책의 운명”은 전자책에서 느낄 수 없는 ‘종이책이 지닌 물성’과 디지털 시대에 전자책이 뛰어넘지 못할 ‘종이책의 품격’을 짚어주었다.
고전은 생각과 지식의 기록 유산이다. 앞으로도 우리 언어문화의 고전을 가까이할 수 있는 고전의 복간을 기대하면서 이만 마무리 짓고자 한다.
- 조재수 (前 한글학회 수석편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