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하자면, 내가 여기서 시도한 것은 전반적으로 비교적이고, 광범위하며, 불연속적인 조직보다 더 지속적이고, 학생들에게 상당히 집중하며, 큰 의료센터만큼 주변부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의학교육에 관한 연구다. 이는 정치적, 경제적 요인뿐만 아니라 과학적 요인도 고려한다. 이는 변화를 이해하는 데, 그리고 의대생을 가르치는 접근법의 현재 차이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다. 나는 의학교육에서 해묵은 해석 문제에 대한 해답이 부분적일 수 있고 이전 연구에 상당 부분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이 책에서 새로운 것은 의학교육을 더 큰 전체로 보고 토론에 새로운 정보를 주입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다.
--- 「서문」 중에서


대서양 양편의 세계에 널리, 그러나 불균등하게 퍼졌던 계몽주의 정신은 낡은 구조에 대한 의문,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이성의 능력에 대한 주장 그리고 사회 조직의 오랜 문제에 대한 공리주의적 해답을 찾는 데 교육적, 정치적 사상뿐만 아니라 의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내과 의사와 외과 의사들은 동포의 상태를 연구하고, 붐비는 병원에서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광인을 방치하는 것에 증가하는 의문을 품고, 전쟁 사상자를 돌보는 등 전례 없는 방식으로 관여하게 되었다. 교육을 받은 관심 있는 시민들은 가난과 무지와 함께 질병을 치료하고 예방할 수 있는 보편적인 조치를 받을 수 있다면 삶이 더 희망적이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확신했다. 결과적으로 의사의 역할은 대학교육을 받은 동료의 역할보다 더 중요하게 보였다. 구약학자 요한 미카엘리스는 1776년 괴팅겐에서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법학박사는 그리 나쁘지 않다. 그것은 대중을 거의 해치지 않는다. 신학박사는 해가 덜하다. (……) 그러나 의학박사는 직접적으로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룬다.”
--- 「제1장」 중에서

팡 드 시클(fin de siecle, 세기말)에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의학 학습에 관한 모든 중요한 질문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학생은 실제로 어떻게 훌륭한 의료인이 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까? 내과 지식과 외과 기술을 모든 개업의에게 일상으로 가르쳐야 하는가? 치유의 직업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필수적이거나 바람직한 과학 과목은 무엇인가? 다수의 잠재적 학생을 배제하지 않는 의학 학습 기간은 얼마인가? 의사 지망생이 의학을 배우기 위해서는 어떤 종류의 사전 의학교육이 적절한가? 고전 문헌과 언어는 얼마나 중요한가? 의학교육은 병원, 진료소, 도제 또는 대학에서 핵심적이어야 하는가? 모든 개업의들은 실질적인 경험을 쌓아야만 하는가? 국가는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가, 아니면 의사의 수련은 경쟁력 있는 사업체에 맡기는 것이 가장 좋은가?
--- 「제2장」 중에서

혁명 이전 스트라스부르에서 전형적인 학생은 매일 아침 6시부터 밤 7시까지 9개의 개별 강의를 들어야 했다. 윌리엄 세이브리는 이렇게 회상했다. “런던에 있는 동안 나는 결코 한가하지 않았다.” 리차드 브라이트의 아버지는 그의 아들이 “강의를 들으러 달려가고, 오후에는 해부실로 달려간다. (……) 저녁에 그는 식사를 하러 달려가 종종 혼자 고기를 썰고 맥주를 마시면서 책을 읽는다”라고 들었다. 1805년 다니엘 드레이크는 필라델피아에서 부모님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그렇게 비싼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을 생각하니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24시간 동안 6시간만 잡니다.” 많은 이들이 매일 해뜨기 전에 일어나서 밤까지 공부했다. 일기에 따르면 스위스인 엘리아스 하프터(Elias Haffter)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첫 강의에 출석하기 전 종종 몇 시간 동안 책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그 후 첫 식사를 했다. 특히 대륙의 의학교에서는 매우 이른 시간에 강의가 시작되었다. 예를 들어, 본 의대에서 의사학 강의는 오전 6시에 시작했다.
--- 「제3장」 중에서

취임 초기부터 쇤라인은 학생들에게 다양한 질병의 증상을 습득시키고 환자의 병상 옆에서 소그룹으로 가르치는 데에 병원을 사용하였다. 환자의 병상 근처에 서서 그는 한 무리의 학생들을 이끌고 환자 질병의 독특한 특징에 관해 토론했다. 학생들은 쇤라인이 있는 곳에서 환자를 검사하고 치료 계획을 제안해야 했다. 이어진 며칠 동안 그들은 환자의 상태 변화를 함께 검토했다. 쇤라인은 교육 클리닉이 “시연이 있는 강의 형식이 아니라 …… 학습하는 의사의 실무 가이드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비록 프랑스보다 훨씬 뒤떨어졌지만 독일에서는 학생들에게 타진과 청진을 가르치고 현미경을 사용하는 분야에서 개척자였다. 그는 교탁 앞에서 대변, 소변 및 가래를 화학적으로 검사하고 현미경으로 관찰했다. 쇤라인은 비록 교과서나 다른 주목할 만한 업적을 출판하지 못했지만, 교사로서 우뚝 솟은 그의 명성은 학생들이 이러한 종류의 격식을 따지지 않는 실질적인 교육에 높은 가치를 부여했다는 증거다.
--- 「제4장」 중에서

19세기 중반에 모든 국가에서 학생들의 삶은 놀랄 만큼 유사하였다. 이제 강의는 종종 토요일을 포함하여 매일 4시간에서 6시간 정도였고, 클리닉과 해부는 학교와 국가에 따라 2시간에서 4시간 정도였으며, 학생들은 각자의 방에서 나머지 시간을 공부하며 보냈다. 독일 대학에서는 학생이 하루에 6시간에서 8시간 정도 강의실이나 클리닉에 앉아 있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으며, 과정 중의 일부는 반복해서 듣는 것이었다. 프랑스의 학생은 일상적인 강의, 클리닉, 다양한 기간의 병원 방문을 포함하여 매 학기 최소한 4개의 과목을 수강해야 했다. 런던 병원 수업은 아침 9시부터 밤 8시까지 일정이 잡혀 있었지만, 장기 결석이 만연하였고 출석은 저조하였다. 1863년에 미시간 대학의 한 전형적인 학생은 해가 뜰 때 일어나서 8시까지 공부하고, 3시간 동안 해부하고, 4시간 동안 강의를 듣고, 집에 와서 다시 공부하였다. 이처럼 시간에 대한 학생의 강한 압박감에 젊음, 사회적 고립, 진료를 시작하는 것의 불안이 더해져서 여가에 일부 학생들의 일탈 행동을 자초했다고 볼 수도 있다.
--- 「제8장」 중에서

20세기 실험실 혁명의 최종적인 성공과 의학에서 대학교육의 승리를 설명하는 것의 대부분은 1890년 이후의 발전이다. 미생물학이라는 새로운 실험실 과학이 질병을 진단하고 조절하는 데 이룩한 세기말의 대단한 성취가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이제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의학이 수십 가지의 오래된 고통의 근원을 높은 수준의 정확도로 판별할 수 있었고, 그들 중 많은 것들을 궁극적으로 정복할 것이라는 약속을 할 수 있었다. 의사들은 질병 치료에 있어서 비정규 의료인과 동등한 조건으로 경쟁하지 않았으며, 무균 처치의 외과적인 성공은 모든 사람이 보기에도 명백하였다. 동시에 과학적 의학의 약속과 유용성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높아지면서 정부, 대학 지도자, 기부자들이 의학 공부를 지원하고 규제하는 데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도록 촉진하였다. 생활수준의 향상, 새로운 사회복지 프로그램, 높은 수준의 교육 그리고 중요한 시점에서 개인의 우연한 역할이 의학교육의 이후 방향을 좌우하였다. 20세기 초반까지 주요 교육적 질문은 더 이상 의학 훈련에서 과학이나 실험실의 위상이 아니었으며, ‘어떻게 클리닉을 더 과학적으로 만들고 수련 중인 학생들에게 더 접근이 용이하도록 할 것인가’였다.
--- 「제10장」 중에서

영국과 미국에서 남녀가 같은 학교에서 의학교육을 받도록 하는 방식에 대한 논쟁은 특히 치열했다. 1894년이 되어서야 마침내 미국 의학교에서 분리주의(separatism)를 능가하여 남녀공학이 우세해졌으나, 1910년까지 여성 의사의 5분의 1이 여전히 여자 의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점차적으로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여자 의학교가 문을 닫았지만, 영국에서는 옛 영국 대학교와 런던 의과대학이 여전히 남녀공학을 금지하고 있어서 여자 의학교는 1920년대까지 여성을 위한 의학교육의 주요 수단으로 남아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의외로 여성의 의학교육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의학교에 다니는 남성의 수가 감소함에 따라 의사에 대한 보편적인 필요성은 여성이 의학교에 진학하도록 장려하는 것을 자극했다. 영국, 독일, 러시아에서는 전쟁의 끔찍한 참화 속에서도 여성들이 의학 분야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마르부르크 대학교에서 독일 여성의 비율은 1917년까지 모든 의학생의 30%를 차지했다. 영국 맨체스터에 있는 의학교는 1914년에서 1918년 사이에 여학생 수가 400%나 급증했다. 그리고 혁명기 러시아에서는 이전에 엄격하게 통제되었던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 의학 과정이 1918년에 대부분이 여성인 1,426명의 신입생에게 홍수처럼 개방되었다.

<b>중증질환을 앓고 있는 한국 의료, <br/>그에 대한 처방의 시작은 ‘의학교육’ 혹은 ‘의료제도’에 대한 병력 청취다!<br/></b><br/>오늘날 한국 의료가 중증질환을 앓고 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이른바 필수의료의 붕괴, 의료전달체계의 왜곡, 의료에 대한 불신 심화 등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증상에 대한 처방은 대개 단편적이고 말초적이며, 공교롭게도 상당 부분이 의학교육을 향한다. 즉, 많은 이들이 의대 정원을 늘리고 지방에 의과대학을 지으면 우리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현대 의학과 의학교육이 어떤 경로를 통해 발전해왔으며, 이와 같은 현실에서 단지 의대생의 숫자만 늘리는 것이 어떤 후과를 초래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문제의 해결이 그리 쉽다면 왜 우리가 알고 있는 선진국들은 그런 쉬운 처방을 채택하지 않는 것일까? 의사의 대도시 편중과 지역사회의 의사 부족, 지역 의료의 질 저하 등은 단지 우리만 안고 있는 문제가 아닌데도 말이다.<br/><br/>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해결책으로 의대 정원의 확충이나 의대 설립, 의대 6년제 전환, 의사과학자 제도의 도입 등 수많은 제안이 우리에게 제시되고 있다. 일부는 그것이 당장 시급한 문제의 해결책으로 보이기 때문에 일부는 어떤 선진국이 그러한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고 해서 무슨 만병통치약이나 되는 듯 주장하고 있지만, 현명한 의사라면 그러한 만병통치약은 존재하지 않으며, 좋은 약도 환자의 상태에 따라서는 독이 될 수도 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환자에 대한 정확한 병력(medical history)인데, 왜 이를 잘 아는 의사들이 ‘의학교육’ 혹은 ‘의료제도’에 대한 병력 청취 없이 어떤 만능 처방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일까. 그러한 측면에서 이 책은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근대 서양의학교육의 훌륭한 병력을 제공한다. 그에 대한 지식과 통찰이 없다면 어떤 처방이든 백약이 무효임은 불문가지일 것이다.<br/><br/><b>근대 의학교육의 탄생,<br/>역사를 통해 배우는 의학교육의 방향성<br/></b><br/>이 책은 18세기부터 20세기 초반에 이르는 서양, 즉 유럽과 북미의 의학교육 역사를 다루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근대 서양의학은 근대의 산물이며 그 이전에는 서양의학이라 한들 우리 전통의학과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근대 과학의 발전과 산업화,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의 변화와 전통적인 공동체의 와해, 신분질서의 철폐와 교육받은 중산층의 등장 등이 이 시기의 특징이고 이는 고스란히 근대 의학의 성격에 반영된다. 근대 의학이 태어났기 때문에 이를 가르치는 일, 즉 근대 의학교육 역시 새롭게 태어날 수밖에 없었으며 그 과정에서 이는 온갖 진통을 수반하기 마련이었다. 저자는 수많은 선행 연구들을 바탕으로 하여 이러한 근대 의학과 근대 의학교육의 탄생의 모습을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을 배경으로 하여 추적해 들어간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로부터 어떠한 의학교육도 당대의 사회와 문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깨닫는다. 의학교육에 무슨 절대적인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고, 시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도전에 가장 잘 반응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한 통찰이 더욱 중요함을 풍부한 증거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br/><br/>의학교육은 여러 전문직 중에서도 유독 장기간에 걸쳐 이론 교육과 환자를 관찰, 관리, 치료하는 고도의 실무 경험을 결합하게 되었다. 학문적 교육과 임상교육, 이론과 실제, 기예로서의 의학과 과학으로서의 의학 사이의 긴장과 변화하는 균형은 계몽주의 이후 의학교육의 변하지 않는 상태였다. 각기 다른 사회적, 정치적 환경으로 인해 국가마다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균형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이 책의 기본 주제다. 금세기 전반에는 과학에 대한 무한한 믿음과 의학의 궁극적인 합리성이 거의 모든 곳에서 지배적이었다면, 우리 시대에는 인류의 진보와 과학의 설명력에 대한 포스트 모던적 의심이 이러한 믿음을 압도하고 있다. 그러나 추는 의심할 여지없이 다시 흔들릴 것이다. 어쨌든 대부분의 교육자와 학생들에게 이 책에서 다루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근본적인 질병 과정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보유하고, 배운 것을 실제 상황에 적용하는 데 능숙한 의사를 양성하기 위한 체계적인 학문적 교육과 특히 과학에서의 실습 경험을 통합하는 것이 이상으로 남아 있다. <br/><br/>점점 더 기술화되는 시대에 의사들에게 ‘인간성’을 부여해야 할 필요성, 학생들이 외래 환경에서 일반 환자를 다루는 경험이 부족한 것, 병원과 의과대학의 괴리, 의학교육이 지나치게 전문화되었다는 우려, 학생들이 의과학보다 기술적인 측면을 너무 적게 배운다는 불만 등 의학교육의 방향에 대한 우리 시대의 고민은 이 책에서 다룬 역사적 긴장을 되풀이하는 것일 뿐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의학교육은 변화하는 사회환경에 불가피하게 내제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고민에 대한 최종적인 해답은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앞으로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배우는지는 국가마다, 시대마다 달라지는 특정한 역사적 환경과 문화적 환경에 뿌리를 두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이 한국 사회의 의학교육에 관한 담론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고, 궁극적으로는 한국 의료 발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