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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랑찰랑 비밀 하나 + 사랑 하나 2권 세트

찰랑찰랑 비밀 하나 + 사랑 하나 2권 세트

[ 전2권 ] 파란 이야기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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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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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4년 0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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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랑찰랑 비밀 하나』

바람이 삼촌의 머리카락을 마구 흩트리고 지나갔어. 백수들은머리카락도 저렇게 길러야 하나 봐. 회사에 안 다니고 돈도 못 벌고 집에만 있는 사람이 백수야. 이건 할머니가 혀를 차면서 했던말이지.
나도 이 삼촌 별로야. 날 보기만 하면 괜히 어쩔 줄 모르고 덤벙대거든. 꼭 얼간이처럼. 그래도 올 때마다 뭘 사다 주기는 해. 그게죄다 인형 놀이 세트나 온통 분홍색 물건들이라 좀 그렇지만. 그런건 꼬맹이 때나 좋아하는 거라고.
--- p. 7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어.
할머니 말대로 삼촌이 백수가 맞나 봐.
비록 할머니랑 살았지만 난 동네에서 가장 큰 집의 아이야. 떨어져 살지만 엄마 아빠는 둘 다 의사란 말이야. 난 교감 선생님이었던 할머니의 하나뿐인 손녀라고. 다 떠나 버렸지만 적어도 나는 내가 가난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 그런데 별안간 불쌍한 가난뱅이 애가 된 기분인걸.
--- p. 24

나는 입도 뻥끗 안 했어. 턱만 쳐들고 도도하게 걸었지. 내가 여기서 저런 사람이랑 새 학교에 가야 하는 건 악몽이야. 악몽보다더 끔찍해.
이게 다 어른들 때문이야. 엄마 아빠부터 할머니까지. 우리 집어른들은 도무지 책임감이 없어.
두고 봐. 언젠가는 다 갚아 줄 테니까. 난 아주아주 멋지게 자라서 짠 나타날 거야. 그때는 붙잡아도 소용없어. 이렇게 딱 말해 줄거야.
'난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에요. 어차피 날 버리셨잖아요.'
더 멋진 말이 떠오르면 그걸 써먹어야지.
--- pp. 32~33

삼촌이 방에서 자고 있는 거야. 도대체 언제 들어왔을까. 나 모르게 저녁에 들어왔다가 한밤중에 또 나갔다가 새벽에 들어온 거잖아.
수상해. 보통 사람은 밤중에 돌아다니지 않아. 혹시 삼촌이 나쁜 짓 하는 사람이면 어떡하지? 도둑이나 강도처럼.
삼촌 앞으로 온 편지 이름도 좀 수상했어. 삼촌 이름은 김경제야. 그런데 편지 봉투에 '블랙 K'라고 적혀 있더라고. 딱 봐도 보통이름이 아니잖아. 뭘 숨기는 사람들이 그런 걸 쓰지.
혹시 할머니는 다 알고 있었나? 그래서 삼촌만 보면 뭐라고 했을까? 삼촌한테 막 잔소리하는 사람은 또 있어. 엄마. 그럼 엄마도삼촌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거네. 그게 뭐든 좋은 건 아냐. 그랬으면 사이도 좋았을 테니까.
도둑. 강도. 블랙 K.
--- p. 48

아줌마가 손거울로 내 뒷머리를 비춰 주었어. 그게 큰 거울에 되비쳐서 목덜미 쪽 엉킨 머리카락이 다 보였는데, 아주 덩어리져 있더라고. 그래서 손가락으로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던 거야. 그럴 수밖에. 여기 와서는 머리를 감은 적도, 빗질한 적도 없으니까.
'여기에 껌인지 젤리인지 끈적한 게 딱 달라붙어 있잖아. 이게아니라도 좀 잘라야 해. 혼자서도 잘 만질 수 있게.'
순간 가슴이 뜨끔했어. 숨겼던 걸 들킨 기분이야. 나한테는 이제머리 빗겨 줄 사람이 없다는 걸 알고 말하는 것 같잖아.
'그니까, 자르시게요?'
내가 울상이 되자 아줌마가 가위처럼 싹둑 말했어.
'떡진 머리 뭐에다 쓰게?'
나는 입술을 쭉 내밀었어. 어른이라 대들 수 없지만 이건 옳지않아. 나도 내 머리가 엉망인 건 알지만 내 머리라고.
--- p. 69

“전철에서 내려 초록색 3번 버스를 타고 나서야 나는 안심했어.내가 아는 동네가 나타나기 시작한 거야.“너, 우니?”분홍 리본이 나를 힐끔 보더니 말했어. 나는 눈물을 재빨리 훔치고 시치미를 뗐어. 하지만 할머니랑 다니던 시장이랑 불가마 목욕탕, 곰보네 빵집 같은 게 보이니까 그냥 눈물이 나오지 뭐야. 할머니, 나 집에 왔어……..
--- p. 104

『찰랑찰랑 사랑 하나』

나는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꿀꺽꿀꺽 마셨어. 너무 차가우니까 가슴이 뻐근하게 아파. 이게 다 할머니 때문이야. 왜 나를 여기서 이렇게 살게 했느냐고. 할머니도 어쩔 수 없었다는 거 알아. 하지만 생일날 혼자, 선물도 못 받고, 축하도 못 받는 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
--- p.6

할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되레 아프지 뭐야. 할머니는 어쩔 수 없어. 치매에 걸리고 싶어서 걸린 거 아니잖아. 치매는 가장 슬픈 병이랬는데. 사랑하는 사람까지 다 잊어버리니까. 할머니는 오늘이 무슨 날인지 기억이나 할까. 아, 이렇게 금방 마음 약해지면 안 되는데.
--- p.25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내내 영모 생각이 났어. 꽃다발을 안고 나타난 꼴은 생각만 해도 화가 치밀어. 내 생일에 어떻게 재원이한테 꽃다발을 줄 수가 있느냐고. 설마, 오늘이 무슨 날인지 까먹은 거야? 나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는 애가?
“으으…….”
나를 껴안은 것도 소름 끼쳐. 도대체 그게 뭐냐고. 애들이 다 보고 있는데 창피하게. 내가 뭐, 이름도 말하기 싫은 걔를 진짜로 때리기라도 할까 봐?
--- p.28

도둑이 케이크를 한입에 쑤셔 넣었어. 그리고 딸기우유까지 열더라고. 크림이 잔뜩 묻은 얼굴로 나를 빤히 보면서.
“야아! 그거 내놔!”
나는 딸기우유를 빼앗으려고 했어. 너무 지저분한 애라 꺼림칙했지만 내 딸기우유까지 먹는 꼴을 어떻게 보느냐고. 그런데 걔가 냉큼 피하는 거야. 그 바람에 딸기우유가 튀었어. 내 원피스랑 걔 얼굴에.
--- p.44

나는 나를 구할 거야. 할머니가 그랬어. 나쁜 생각은 행운을 갉아먹는다고. 궁지에 몰려도 최선을 생각하라고. 궁지가 뭐냐고? 글쎄. 아마도 나쁜 일 중에 최악이 아닐까. 아무튼, 애들이 내 얘기를 하지 않는 건 내가 궁지에 몰리지 않았다는 거야. 그러니 윤봄인답게 당당해도 돼. 혹시라도 누가 그 얘기 꺼내면 “그게 뭐?” 해야지.
--- p.50

영모한테 이런 말 듣는 거 별로야. 거북해.
나도 신데렐라의 왕자는 동화 속에나 있다고 생각해. 사랑하면 진짜로 심장이 뛰는지, 운명 어쩌고 하는 것도 나는 잘 몰라. 하지만 이건 아니지. 나한테 처음으로 이런 말 하는 애가 공부도 못하고, 잘 울고, 이빨도 잘 안 닦는 애인 건 너무하잖아.
한숨이 포옥 나왔어.
“후유! 다행이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잖아.”
--- p.57

“남재민. 오늘 촬영이 있구나.”
그래서 굳이 오늘로 정했나 봐.
“아, 왜 이래…….”
갑자기 가슴이 막 두근거려. 설마 남재민 때문에 설레는 거야?
그럴 리가.
나는 남재민을 잘 몰라. 본 적은 있지만 그때는 도둑인 줄 알았단 말이야. 난 연예인을 좋아해 본 적도 없어. 할머니랑 살 때는 어렸고, 이제는 집에 텔레비전이 없어서 아는 배우도 없는걸. 그런데 왜 이렇게 두근거릴까.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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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미 작가의 동화 속 어린이를 만나면 언제나 탄성이 나온다. 많은 이들이 어린이답다고 여기는 평면적인 캐릭터에서 언제나 한 발 나아간다. 그래서 생생하다. 작가의 아이들은 허투루 울지 않는다. 어려울수록 마음을 다잡고 만만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쓴다. 만만하게 보이면 지는 거니까. 『찰랑찰랑 비밀 하나』에 등장한 열한 살 소녀 ‘찰랑이’ 역시 똑 그렇다. 어른들이 누구인가. 당최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아프리카로 의료 봉사를 떠난 부모도, 갑자기 요양원으로 가 버린 할머니도, 느닷없이 함께 살게 된 백수 삼촌도 찰랑이에게는 난데없다. 앞뒤 사정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어른은 아무도 없다. 이 지점에서 찰랑이와 집주인 할아버지는 통하는 점이 있다. 둘 다 미리 말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화가 나 있다. 어린이는 이 상황에서 두 손 놓고 가만히 있지 않는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고, 울음을 꾹 삼키고 멋진 어른이 되어 복수하겠다고 다짐도 한다. 가만 떠올려 보면 어른이 된 우리 역시 이런 시절이 있지 않았나. 비밀이 생기기 시작한 찰랑이, 자기 세계를 만들기 시작한 찰랑이를 응원한다!
- 한미화 (어린이책평론가)
어린이가 마음속에 비밀을 간직할 수 있다는 건 아직 자랄 공간이 충분히 남아 있다는 이야기다. 비밀은 중력처럼 우리를 이 세상에 단단히 붙잡아 두면서 한 사람이 어른이 되고 큰 나무로 자랄 때까지 보이지 않는 존재의 중심을 묵묵히 지탱하기도 한다. 작은 비밀은 실수처럼 들키는 일이 흔하고 들킨 뒤에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잘 살아가지만 큰 비밀일수록 보이지 않는 곳에 깊이 묻어두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비밀 없이 이 하늘 아래 서 있을 수 없고 자랄 수 없다.
이 동화는 말 못 할 커다란 비밀을 가슴 속에 품고 있지만 찰랑찰랑 봄바람처럼 건강하게 자라나는 봄인이와 그 친구들의 얘기다. 뿌리가 단단한 성장 서사다. 봄인이의 목소리는 세상에 아무 비밀도 없는 아이처럼 밝고 명랑하다. 투덜거림조차 햇빛 아래 내놓은 것처럼 환하다. 찰랑거림 뒤에 감춰진 봄인이의 묵직한 고민을 이해하게 된 순간 우리는 봄인이와 진짜 친구가 된다. 떠나온 자신의 집을 향해서 봄인이와 친구들이 모험을 떠나는 장면은 이 작품의 숨은 의미를 보여 준다. 비밀을 감당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자기 자신을 향해 갈 수 있다. 성장이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이라면 봄인이와 친구들은 그 여행의 성공적인 종착점에 다다른 셈이다. 각자 커다란 비밀을 그 여행의 경비로 지불했다는 것은 물론 비밀이다.
- 김지은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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