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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시간과 비례하지 않는다 (큰글자도서)

사랑은 시간과 비례하지 않는다 (큰글자도서)

: 니큐 의사 스텔라가 기록한 아기를 가슴에 묻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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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3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198*291*20mm
ISBN13 9791192410289
ISBN10 1192410289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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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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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힘들 때 나를 도와준 사람은 잊히지 않는다.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면서 모든 부모는 아기의 출생, 성장, 미래를 준비한다. 어느 누구도 갓난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죽음 앞에 바로 놓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는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부모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나라도 이 상황이 닥치면 이성적 판단과 정상적인 인지 활동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 불가능의 대화를 나는 매일같이 하고 있다. 만난 적도 이길 수도 없는 ‘죽음’이라는 적이 자기 아기를 덮치는 상황, 그 상황을 전달해주는 일, 그게 바로 내 업무다. 깜깜한 동굴에서 그들을 꺼내 옳은 선택을 하도록 길잡이가 되는 것은 나의 책임이자 신생아중환자실 의사의 의무이다.
--- p.20

종종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환자를 당면한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심폐소생술을 지시한다. 여러 가지 시술도 담담한 표정으로 거침없이 해낸다. 가느다랗지만 긴 봉을 휘두르는 지휘자처럼 연주자를 이끌어 살아 있는 생명이라는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의사도 사람이다. 가끔은 시술 전에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이 떨린다. 자주하는 시술이 아니면 두 손이 떨릴 때도 있다. 이를 아무도 눈치채지 않길 바라는 못난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 p.41

이타심을 가장한 이기심의 말이 나오려다 들썩이는 엄마의 어깨 속도만큼 빠르게 들어갔다. 새뮤얼은 계속 경직되는 다리와 움찔대는 팔을 휘저으며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싸우는 듯했다. 엄마는 그 고독한 싸움을 옆에서 지키며 새뮤얼을 가만히 안아주고 있었다. 황제펭귄이 몇 달을 쉬지 않고 알을 품는 것처럼. 부화 성공률도 일 년 생존율도 낮지만, 혹독한 남극 기온과 매서운 눈보라를 함께 견디듯이. 아름다운 엄마의 뒷모습에 무력함이 더해져 아픔만 선명하게 떠올랐다. 누구도 보지 않으면 좋았을, 어떤 엄마도 겪지 않으면 좋았을 뒷모습이었다.
--- p.89

1993년 프랑스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파리 시내에서 태어난 다운증후군 아기 28퍼센트가 버림받았다고 한다. 한때 건강한 여자아이로 가득 찼던 어느 나라의 고아원은 이제는 장애를 가진 아이들로만 채워지고 있다. ‘완벽한 아이’를 바라는 부모의 심리를 분석한 전문가들은 이를 타인지향적 완벽주의라 부른다. 완벽주의자 부모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 비해 자식의 완벽성에 집착한다고 한다. 자식의 완벽 정도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척도가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 p.122

누군가가 내 입안으로 얼음같이 찬 금속 기구를 넣고 계속 튜브로 쑤셔댄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쫙 끼쳤다. 내 입안에서 나온 핏물로 그 쓴 피맛을 느끼며 삼키고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소스라치게 놀라 주저앉을 뻔했다. 아직 통증을 느끼는 살아 있는 생명체라 고마워야 할지 아니면 차라리 죽어 이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의료인지, 의술을 가장한 고문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에이든이 고통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 p.147

올리비아는 이 세상에 없다. 그런데도 생일 파티는 매년 열린다. 햄버거집에서 파티를 열고, 그날 하루 나오는 수익을 모두 기부한다. 올리비아의 가족을 통해 배움을 얻은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비록 차가운 몸으로 니큐를 떠나 앞으로의 삶이 허락되지 않더라도, 다른 형태의 삶이 존재할 수 있음을 깨쳤다. 그 삶이 누군가에겐 위로와 교훈을 주고 또 현실적인 기부가 될 수 있음을 알았다. 그 유산이 이어져 앞으로 있을 수많은 올리비아를 살리고 있다. 그렇게 올리비아는 계속 이 세상에 살아 있다.
--- p.185

앨리스를 통해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매일 마주치는 삶과 죽음, 탄생과 입원,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맞이하는 퇴원. 이 모든 것에 조금씩 익숙해졌나 보다. 아니면 가르침이 주어진 대로, 우리 병원 문화에 배어 다른 선택지는 아예 들여다보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며 대부분의 부모는 억만금을 주고서라도 다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고 말한다. 그 소중한 시간을 지켜줄 수도 있었다. 병원에서의 짧은 시간이 아닌, 엘리엇처럼 몇 달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우리가 앗았던 건 아닐까. 학문적 무지, 무심한 비인식, 좁은 식견으로 가족과 아기를 이어주는 다리를 우리가 무너뜨린 건 아닐까.
--- pp.196-197

나는 자주 물었다. 울부짖는 부모들에게, 수없이 많은 부모들에게 삶과 죽음의 질문을 던졌다. 그들 중 몇몇은 나를 원망하는 눈빛을 보냈다. 어떤 부모는 자신을 구원해달라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어느 누구도 그런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오직 건강한 아기의 탄생만을 준비한 부모다. 병원에 있는 아픈 아기를 바라보기조차 쉽지 않다. 누가 자신의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울지도 않고 축 처져 있으리라고 생각할까. 새파란 새싹을 기대했는데, 나온 아기는 시든 배춧잎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죽음과 연관 짓는 연령대는 대부분 노년층이다. 아기는 생명과 탄생을 의미한다. 부모에게 아기의 죽음은 상상을 넘어 비현실로 다가온다.
--- pp.266-267

환자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어느 정도의 치료와 검사는 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이는 가족에게도 위로가 될 수 있고, 후회가 남지 않을 수 있게 돕는다. 그 완벽한 적정선을 지키는 것이, 그 과정을 도와주는 것이 의료진의 일이다. 의사마다 다르지만 개인적으로 부모의 결정을 존중하는 편이다. 통증이 없다는 전제하에, 지연시킬 수 있는 죽음이라면 더욱 그렇다. 부모가 아기와 추억을 쌓고 마음을 추스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는다. 후에 부모가 아기와의 추억을 꺼내 보며 이를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으로 삼을 수도 있다. 또 어떤 의미에서는 부모에게 더 나은 삶을 만들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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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피지도 못하고 스러진 꽃, 빛을 보지도 못하고 이름도 불리지 못한 채 힘없이 죽어간 아기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지고 슬프다. 처음부터 끝까지 차마 눈물 없인 읽을 수 없었다. 아기를 잃는 부모들의 아픔, 최선을 다해 살리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괴로운 의료진의 고뇌가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문득, 죄 없는 아기들이 죄 많은 우리를 위해 대신 희생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경건히 두 손을 모으게 된다. 어딘가에 있을 생사가 불확실한 아기를 위해 사랑의 기도를 바친다. 절체절명의 시간을 보내는 부모와 의사들도 함께 기억하면서!
- 이해인 (시인, 수녀)
새로운 생이 많은 이들의 축복을 받으며 이 땅에 내려오지만 막 숨쉬기 시작한 가냘픈 생명은 모두 안전하게 착륙할 수 없다. 어떤 아기는 필연적으로 미약하게 태어나고 아직 의학은 그것을 완벽히 막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훅 불면 꺼질 것 같은 1kg 미만의 생을 안착시키기 위해 니큐의 의료진은 한 방울 수액까지 계산하며 버틴다. 때로는 패배가 이미 결정된 사투, 탄생과 축복의 이야기는 자꾸 죽음과 울음의 이야기가 된다. 슬픔이 쏟아지는 대목이 너무 많아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참아내야 했다. 생의 최일선에서 분투하며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시선으로 길어낸 기록이 여기 있다.
- 남궁인 (응급의학과 의사, 《만약은 없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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