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은 어려운 형편 때문에 병원 진료는 물론, 약조차 제대로 처방받지 못하고 있었다. 관절이나 척추가 아파도 겨우 할 수 있는 처방은 파스를 붙이거나 뜨거운 물로 찜질하는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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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요지 강남에 정형외과 병원을 개업하고 난 뒤 명의라는 입소문이 많이 난 덕분인지 경상도, 전라도, 제주도 등 국내는 물론, 러시아, 카자흐스탄, 미국에서도 환자들이 많이 몰려왔다. 그렇다고 진료 보는 일을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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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의사의 길은 아픈 곳만을 치료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마음까지도 치료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료봉사를 통해 알았다. 그러고 보니 그 옛날 어르신들이 바로 나의 스승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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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태석 신부님처럼 그렇게 의술을 펼치고 싶었다. 이것이 프로젝트에서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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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케이크를 자르시는 어머님의 손이 붉고 검은 것은 다 세월 탓이리라. 그러나 지나간 세월은 꼭 잃어버린 시간만은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그럴수록 잃어버린 그 청춘들을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내게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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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수술받고 난 뒤 얼마나 기쁜지 몰라. 우리 의사 아들 아니었으면, 방구석에 그대로 누워 산송장처럼 지냈을 것이 뻔했지, 그런데 수술받고 난 뒤 양로원에도 가고 농사도 짓고 말벗도 생기고 하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 정말 다시 태어난 기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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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그냥 사는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남은 인생을 좀 더 의미 있는 곳으로 돌리고 싶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 프로젝트가 운명처럼 나에게 다가왔던 것이다.
--- p.82
그저 나의 작은 재능이 우리 어머님들에게 희망과 용기가 될 수 있다면 힘닿는 때까지 나눔을 실천할 생각이다. 이것이 바로 의사의 길이 아니겠는가.
--- p.86
“잘생긴 이 젊은 남자는 누구신가.”,“우리 아들이야 참 잘 생겼지.”시장통에서 웃음꽃이 만발했다. 말동무가 되는 것만큼 어르신들에게 위안이 되는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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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꽃보다 더 어여쁜 나이에 시집와서 그녀는 본인의 이름을 깊은 바다에 묻고 살았습니다. 꿈 많고 열정적이었던 나의 이름 서미 이젠 찾고 싶습니다. 건강하고 당당하고 아름답게 다시 살고 싶습니다. 응원과 사랑을 보태고 싶어요. 사랑합니다. 마냥 이쁜 딸 성연 드림.
--- p.113
내가 의사가 아니었다면, 우리 어머님들께 건강한 무릎과 다리를 선물해 드릴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우리 어머님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힘찬 발걸음을 내디디시는 것을 결코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가 의술을 펼칠 수 있는 의사가 된 사실에 대해.
--- p.153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다. 환자는 의사를 믿고 따른다. 더구나 정형외과 의사는 환자의 뼈와 관절을 다루기에 방심은 금물이어서 항상 긴장감이 따른다.
--- p.190
외로움은 참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나는 치료도 중요하지만, 먼저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드리고 싶었다.
--- p.200
연골이 닳은 무릎과 힘줄이 끊어진 어깨, 시큰거리는 손목은 물론, 고단한 세월 속에서 잃어버린 청춘을 되찾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 p.212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기쁜 것은 우리 어머님들이 절망적인 현실에서 희망을 되찾았다는 것이다. 사람이 앉고 서기 힘들고, 걷지 못하는 것만큼 불행한 삶은 없다.
--- p.229
세상 모두가 내 마음을 몰라주더라도 나는 괜찮다. 설령, 그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 해도 내 생각에는 한치의 변함도 없다. 그저 우리 어머님들이 아픔을 딛고 항상 웃으시면서 행복하게 사시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 p.231
“아프다.”, “병원에 데려가 다오.” 그 한마디면 되는데……. 자식들에게 도움이 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해가 되고 싶지는 않다며 어떻게든 참아내는, 홀로 감내하는 우리네 어머님들을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눈물부터 앞섭니다.
--- p.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