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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소문 속에 살았다

: 여든 살 반전의 사상가가 회고하는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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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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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4년 03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120*200*30mm
ISBN13 9791169092142
ISBN10 116909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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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전쟁에서 일본이 미국에 질 것을 알고 있었다. 일본이 정당하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질 때는 지는 쪽에 서야 할 것 같았다. 만약 이기는 쪽에 남아 수용소에서 먹을 것 걱정 없이 지내다가 미일전쟁의 끝을 맞이하게 된다면 그 이후로 내가 살아가야 할 길이 보이지 않을 듯했다. 그건 그냥 흐릿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육십이 년이 지난 지금 돌아봐도 후회하지 않는다. 희미하지만 그 자체로 흔들림 없는 사상이라는 것도 존재한다고 나는 믿는다.
---「사신과의 경주」중에서

나는 눈을 뜰 때 여러 층의 의식이 기억에 남아 있는 사이에 그 흔적을 글로 옮긴다. 무의미할 때도 많지만 가끔 괜찮은 생각과 만나기도 한다. 인간은 있어도 되지만 없어도 된다는 감촉도 그중 하나다. 거기서 한 단계 더 깨어나면서 인간은 있어도 되지만 만약 있다면 이유를 달아 서로 죽이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진입한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에드거 앨런 포의 되감기」중에서

팔십 대에 접어든 후로는 세상을 뜬 사람과 살아 있는 사람 사이의 구별이 옅어졌다. 칠팔십 년을 만난 사람은 그 자체로 매우 강한 존재감을 가지고 내 안에 살아 있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육십 년도 더 이전인 전쟁 중에 논문을 통해 알게 되어 실제로 육십이 년을 만난 사람이다. 그의 죽음은 만남의 끝이 아니다.
---「잡담의 역할」중에서

이치노미야 사부로는 전쟁에서 죽었다. 나가이 미치오도 죽었다. 그때 이치노미야 집에는 왜 그렇게 자주 놀러 갔더라? 두 살 많은 누나가 예뻤잖아. 내가 대답하자 나가이가 맞장구를 쳤다. 나도 그랬어. 죽기 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지만 두 사람이 육십 년 동안이나 같은 마음을 숨기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다.
---「중도하차」중에서

내 기억에서 사람들의 이름이 사라져간다. 지명은 훨씬 더 빠르다. ‘있을’ 뿐인 망망대해를 향해 나아가는 기분이다. ‘있다’의 저편에 ‘없다’가 있을 것이라는 이 상상력도 곧 사라지고 나면 나는 ‘그저 있을 뿐인 상태’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그때까지 내 기억 속 색인을 계속 편집해나가려고 한다.
---「기억의 재편집」중에서

‘망각록’이란 걸 쓰기 시작했다. 인용도 없이 내가 썼든 남이 썼든 상관 않고 우선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적어둔다. 건망증을 자각하게 된 후부터 시작한 일인데 벌써 열두 해가 지났다. 그렇게 적어놓고 나중에 다시 읽으면서 직접 각주를 단다.
---「망각록」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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