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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가게 글월

편지 가게 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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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5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394쪽 | 346g | 115*190*27mm
ISBN13 9791193190043
ISBN10 119319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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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영은 주택가를 천천히 걸으며 하늘의 색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지금처럼 노을이 지고 슬슬 배가 고파지는 시간을 효민 언니는 ‘놀이터에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라고 불렀다. 어릴 적 저녁 먹기 전까지 놀이터 미끄럼틀이나 정글짐에 모여 있던 애들이, 하나둘씩 엄마가 부른다며 집으로 흩어지는 시간이 딱 이맘때였다.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라는 걸, 언니도 아는지 모르는지.

손님이 배낭에서 비닐봉지를 하나 꺼내 효영에게 건넸다. 먹기 좋게 자른 오이가 든 봉지였는데, 아이스팩을 함께 넣어두어서 시원했다.
“산에서 먹으려고 싸둔 건데, 등산객들 나눠주려고 많이 챙겼어요. 이건 손도 안 댄 거라…….”
뭐라도 주고 싶다는 손님의 마음이 눈에 선해 거절할 수가 없었다. 손님이 글월을 떠나자, 효영은 봉지에서 오이를 하나 꺼내 아삭! 씹었다. 입안 가득, 싱싱한 여름이 부서졌다.

무슨 바람인지 효영은 다른 사람들의 글자도 구경했다. 서로 다른 글자체는 물론, 자기를 표현하는 표식도 전부 개성이 넘쳤다. 목록을 보고 있자니 세상에 이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말’을 지니고 산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대학에 입학하고 한창 시나리오를 작업하는 일에 재미를 느끼던 시절, 학교로 가는 만원 지하철에서 문득 사람들의 머리를 바라본 적이 있었다. 저 수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어떤 기억이, 어떤 취향이, 어떤 아픔이 남았을지를 떠올리면 자기가 쓴 시나리오가 도대체 몇 사람에게 울림을 줄 수 있을는지……. 그 막막함에 겁이 나기도 했다.

영은이 손바닥으로 편지지 위를 쓸었다. 글월의 작은 테이블에 앉아 예쁜 글자를 하나씩 정성 들여 적는 누군가의 손을 떠올렸다. 반려동물에게 많은 것들을 묻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어 미안하고 먹먹하다는 부분이 특히나 공감이 갔다. 라임이가 아팠을 때도 그 조그마한 발을 조물조물하며 어디가 아픈지 제발 말해달라고 한숨을 쉬던 날이 있었다.
‘나도 그래요. 전에 만났을 리가 없는데, 우리 되게 친구 같네요.’

“우리 아버지가, 먼 산은 너무 오래 바라보는 거 아니랬어요.”
“왜요?”
“답이 없는 생각만 하게 된다고요.”
효영이 알아듣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또래지만 영광에게는 확실히 어른스러운 면이 있었다. 영광을 글월에서 처음 만나던 날, 그를 실없는 참견쟁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그때를 떠올리면 웃음이 났다. 확실히 선호의 말대로 인간관계는 정물과도 같았다. 이렇게 다른 장소에서 다른 각도로 영광을 바라보니, 그의 새로운 면이 드러나는 걸 보면.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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