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궁극적으로 지난 20여 년간 다양한 스케일의 여러 가지 건물들이 지어졌으며, 각기 어느 정도 다른 형태와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땅과 그 주변에 대한 고려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건축물의 구조, 재료, 마감재 등도 땅과 주변에 대한 고려와 생각으로부터 만들어진 경우를 많이
발견하게 될 것이다.
--- p.12, 「땅과의 대화」중에서
〈EARTH〉
그곳에 오래 있어 왔던 지형과 식생을 존중하고 그들의 의지에 관계없이 그간 변형된 부분은 가능한 한 치유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렇게 치유 복원된 지형을 틀로 하여 틈새를 만들었다. 그 틈새는 그곳에 살고 방문하여 묵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저 지나가는 이웃들에게도 평온함과 안식을 주고 그 자연의 지평과
주변이 돋보이도록 해주는 건축적 제안이다.
--- p.23, 「지평집」중에서
설계는 땅의 흐름읽기에서 시작되었다. 산자락 끝 나지막한 언덕배기에 건물을 앉히자니 주변 지형을 많이 손상하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원래 지형의 흐름을 그대로 흐르게 두면서 그 언덕 속으로 필요한 건물을 집어넣고 지붕에 구멍을 뚫어 환기, 채광을 확보하는 안을 구상하게 되었다. 두 번째 방문했을 때 언덕에서서 바라보니 계곡 건너 맞은편 산의 소나무에 서리가 내려 회녹색 빛깔을 띠고 있었다. 초겨울의 스산함이 내려앉아 희끗희끗 청초한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 p.65, 「이외수 갤러리」중에서
〈PLATFORM〉
대지는 남쪽으로 도산공원에 맞닿아 있고 나머지 세 면은 산만한 강남의 뒷골목과 건물들을 대하는 장소에 위치하고 있다. 건축적 제안은 이러한 산만한 주변에 대응하는 간단명료한 콘크리트 덩어리와 그 위에 사뿐히 앉은 목재 박공지붕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재단한 콘크리트 벽돌을 입힌 박스는 땅에서 띄워 채광과 환기, 그리고 주변의 외부 공간과 녹색들이 스며들고 숨쉴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 p.83, 「퀸마마 마켓」중에서
푹 꺼진 대지 위로 들어올려진 콘크리트 슬래브는 도로 레벨과 이어지며 자연스러운 진입을 유도한다. 콘크리트 슬래브 아래, 즉 도로 레벨 아래로 존재하는 공간은 경사지 땅에 대응할 수 있도록 철근콘크리트 조를 선택하여 안정적인 형태를 취했고, 콘크리트 슬래브 위로 얹혀지는 볼륨은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는 경량목구조를 택했다.
--- p.104, 「세 박공집」중에서
〈SCREEN〉
서울 서촌 골목에 자리 잡은 어느 노모의 공간이었던 이곳은 100여 년 전 일본인이 지은 작은 적산가옥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전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시작된 것이었다. 100여 년의 삶이 이어지는 동안 지속적으로 덧붙이고 채워지기만 했던 이 공간은 과거와 현재가 불분명하고 복잡하게 혼재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 흔적들을 떼어내 과거를 명확하게 드러내야 했다.
--- p.169, 「온그라운드 갤러리/카페‘ 중에서
평지에 위치한 NHN 유치원은 5세 이하의 280명 정도의 어린이들이 자연 친화적인 환경에서 안정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편안한 집을 상상하며 만들어진 건축물은 어린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중정으로 공간이 열려 있고, 중정 공간에 구성된 그물망이나 매트가 깔린 바닥과 같은 유연한 소재들은 아이들이 자유로운 환경에서 보다 자연스러운 공간을 느끼고, 탐구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 p.197, 「NHN 유치원」중에서
〈MASS〉
대지를 둘러싼 바다의 수평선 또한 주된 요소이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가장 단순한 선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변화가 많은 선이기에 날씨의 변화, 빛의 각도, 계절에 맞추어 수많은 풍경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장소 위에 놓여질 건축 또한 그러해야 했다. 있는 듯 없는 듯, 은근하게 감춰져 도드라져 보임 없이, 주변의 콘텍스트에 대응하고 변화하며 풍경의 일부가 되어야 했다.
--- p.215, 「남해 사우스케이프 호텔」중에서
건물의 주요 입면인 남향의 파사드는, 건물의 바깥으로 높이와 너비가 다른 여섯 개의 사각형을 잘라낸 콘크리트 벽이 덧씌워진 형태로 건물에 캐릭터를 부여한다. 실내 공간의 바깥으로 건물의 구조체이자 입면으로 사용되는 하나의 콘크리트 레이어를 둠으로써 남향의 직사광선을 받아들이는 면의 깊이를 더해 오피스 공간에 들어오는 빛을 조절했다.
--- p.271, 「한남동 오피스/카페」중에서
〈CRITIQUE〉
역사가와 비평가는 건축 드로잉이나 모형이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에서 생성된 것인지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 만든 것인지 묻곤 한다. 대개는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의미에 대한 질문이다. 조병수에게는 무의미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조병수의 사물들은 의도만도 아니며 표상만도 아니다. 그것은 우선 쓸모가 있는 오브제들이다. 그리고 사회와 연결된 감각과 지식이며, 순간과 사물이다. 이런 과정이 조병수의 일관성을 만드는 것이다.
--- p.289, 「조병수와 기물의 건축」중에서
오브제, 사물, 사람은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가? 이것은 추상적인 질문이 아니다. 경제, 사회, 환경의 위기에 처한 이 시대의 가장 현실적인 질문이다. 조병수의 작업은 현시대에 정물의 역할이 여전히 있느냐고 묻는다.
--- p.297, 「조병수와 기물의 건축」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