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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4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441g | 145*225*20mm
ISBN13 9788960905733
ISBN10 8960905739

중고도서 소개

사용 흔적 약간 있으나, 대체적으로 손상 없는 상품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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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에게 기획서를 보여줬더니 “이건 노스탤지어 말고 뭐가 있나”라는 말을 들었다. “만드는 사람이 처음부터 결론을 알고 있는 다큐멘터리는 재미없어”라고. …… ‘처음부터 결론을 아는 작품을 만드는 건 재미없다’는 진리를 깨우친 것은 비교적 최근 들어서다. --- p.34~35

정말로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놀랄 만큼 사고가 유연해서, 자신의 영역과 동떨어져 보이는 유파나 새로운 대상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으로 호기심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경쟁심이자 도전 정신이다. 무언가 하나라도 건질 수 있는 요소, 훔칠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다, 내가 반드시 손에 넣겠다는 탐욕스러움이다. 그런 어린애 같은 경쟁심을 내버리는 순간부터 인간의 화석화는 확실히 시작된다. 과거의 유산을 고집하는 것은 가장 손쉬운 일이다. --- p.39

소녀에게는 연기 경험도 기술도 전혀 없었지만 나는 십수 년의 인생 속에서 기른 그 소녀 나름의 인간에 대한 통찰력을 느꼈다. 어쩌면 아직 본인조차 그것을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한 번은 어디 깊숙한 곳까지 잠수해 들어갔으리라고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가혹한 경험의 산물인 것일까. 무엇이 행복한 인생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것을 무엇이든 탐욕스럽게 비료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이 우리 세계의 특징이다. --- p.44

영화는 언어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산문보다 행간에서 다양하게 상상력을 발휘하는 시나 하이쿠와 닮았다. 영화를 즐기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시력이나 청력이라기보다 오히려 예민한 주의력과 풍부한 상상력이다. --- p.52

크게 믿은 뒤에는 크게 의심하고 싶다. 의심하고 덤벼드는 태도야말로 숭상해온 대상을 대하는 가장 진지한 자세라고 생각하니까. --- p.59

‘어차피 영화야’라고 절실히 생각한다. 영화는 위기를 구하지 못한다. 생활을 다시 일으킬 힘도 없다. 하지만 모든 곤란이 없어지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분명히 사람들의 마음에는 ‘현실’이라는 거대한 이야기와는 또 다른 세계를 받아들일 빈틈이 다시 생겨나 시시한 연애나 칼싸움, 요괴들 이야기에 조마조마, 울렁울렁, 쓸모없는 가슴 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또 어둡고 뒤틀린 지독한 이야기와 고독을 공유하고 싶다고 생각할 날도.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날을 맞이할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러므로 그때가 오면 언제든 훌쩍 찾아올 수 있게 등불을 곁에 둘 수 있도록, 이 세상 한구석에서 우리는 준비해두려 한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현실과 싸우는 사람들이 잠시나마 자신의 생활로부터 거리를 두고 숨을 돌릴 어둠을 마련해두기 위해. --- pp.67~68

나 같은 기량의 사람에게 영화 촬영은 골치 아픈 일의 연속이어서, 그중 즐거웠던 추억을 내 안에서 곱씹지 않으면 앞으로 계속해나갈 희망을 잃어버린다. --- p.78쪽

다른 사람인 척하지 못하는 그 서투름, 애처로울 정도의 대체 불가능함이야말로 내가 그 역할에 바라는 인물상 자체였다. ‘세간의 평가가 어떻든 나는 나로서밖에 살아갈 수 없다’라는 강인함과 비애는 감동을 준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동시에 그녀들을 ‘역도 선수’라는 비슷하지만 다른 설정에 끼워 넣으려 하는 데 대한 저항감도 내 안에서 생겨났다. 그녀들에게 본인과는 다른, 내가 만들어낸 ‘캐릭터’를 연기시키는 데 대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편함. 덧붙이자면 이것은 결코 프로 배우에게는 품지 않는 감정이다. 나는 ‘무언가인 척’을 시킨다는 죄책감을 끝내 견딜 수 있을까. --- p.95쪽

무능한 나 자신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나는 나름대로 해답을 가지고 있다. --- p.107

이제까지 살아오며 가장 ‘여행’ 같았던 시간은 언제였던가 생각해보면, 집과 학원 자습실을 오가는 생활을 반복했던 재수생 시절이었던 것 같다. 탁하게 고인 듯한 강가를 따라 자전거로 달리면서, 어떤 사람도 되지 못한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불안이 가슴 한복판으로 스며드는 것을 떨쳐버리듯 힘껏 페달을 밟았다. 왜 그 나날을 여행이라고 생각했는가. 역시 내가 어떤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이리라. 여행이란 그런 기분을 뜻하는 것 아닐지. --- p.152

나와 각본은 철저하게 싸워왔다.
결별의 때가 찾아왔다.
카메라가 돌 때 그 앞에 있는 것은 내가 각본을 쓸 때 상상했던 디테일과 아무리 가까워도 같지 않다. 영화가 태어날 때 각본은 죽는다. 내 안에서만 살아 있던 풍경과 인물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나는 새로운 동료와 영화를 만든다. --- p.170

창작자는 낭만을 꿈꾸는 법이다. 역할을 제안한 배우가, 내가 그린 인물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해주지 않을까 하는 낭만. --- p.171

나는 원래 용모 단정한 남자에 대한 시기와 의심이 강해서, 그 됨됨이를 알기 전부터 ‘교만’ ‘나르시시즘’ ‘경조부박’ 등의 부정적인 키워드를 떠올리며 경계하는 커다란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오다기리 씨는 핸섬하기는 하나 어두운 면 역시 십자가처럼 짊어진 채, 인간의 생 자체의 아름다움도 서서히 체현해나가는 저력을 지닌 귀중한 배우라고 생각한다. --- p.186\

사람과의 관계 속에는 대체로 못다 한 일이 있고, 또 그것이 관계의 미래를 잇는다. 하지만 그 사람을 느닷없이 잃으면 그 ‘못다 한 일’이 가슴을 쿡쿡 아프게 찌른다. 그 일을 만회할 기회도 동시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 p.196

영화란 이다지도 알기 힘든 것일까. 그러나 이제 알았다, 라고 생각한 순간 열기가 식는 것이 인간의 슬픈 본성이다. 내게는 언제까지고 알 수 없는 연인이 있어서 행복하다. 사랑은 아직 당분간 지속되리라.
--- p.232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이 책은 제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그 친구는 저와 비슷한 점이 무척 많습니다. 깜짝 놀랄 만큼 많습니다. 우선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같은 별자리, 게자리입니다. 우리는 똑같이 어려서 만성 축농증을 앓았고, 의사 선생님의 씩씩하다는 칭찬에 절대 울지 않았으며, 조금 더 커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설렜고 다자이 오사무에 겁먹었죠. 그러다 차이밍량에 위로받고 케이트 윈즐릿의 육체에 감탄하며, 늘 침대 옆에 책을 무덤처럼 쌓아두고 있습니다. 우리가 비슷한 점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그녀가 신타니 미도리 선수에 열광하는 이유는 제가 장미란 선수를 좋아하는 이유와 같고, 그녀가 쓰나미 이후 시달린 사명감과 강박관념은 제가 세월호 참사 이후 느낀 것과 너무나도 닮았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닮은 점은 영화에 대한 마음입니다. 드니로 어프로치를 동경하고, 필름을 그리워하고, 언제까지고 알 수 없는 영화, 알기 힘든 영화, 그래서 영화를 사랑하고, 그렇게 사랑하는 영화를 하며 만난 여러 사람에 대한 마음까지 우리는 참으로 닮았습니다. 그녀의 책을 읽고 나니 얼른 전화해서 밤새 맥주나 마시자고 빨리 나오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멀리 있지만, 다른 언어를 쓰지만, 니시카와 미와는 제 친구입니다.
- 문소리 (배우,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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