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붙어 먹고사는 인간은 벌렁거리는 가슴을 달래며 덤불 뒤에 숨어 사태를 주시한다. 검치호랑이 몇 마리가 들소 한 마리를 잡아먹더니 뒤이어 하이에나 떼가 달려들어 남은 살을 뜯어 먹는다. 드디어 차례가 되었다. 살이 다 뜯겨나간 뼈다귀를 향해 인간이 달려간다. 주먹도끼로 뼈다귀를 내리쳐 속에 든 골수를 조금도 남김없이 후루룩 빨아먹는다. 대단찮아 보이는 저 피조물은 이렇게 음식을 섭취하여 마침내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에 올라간다.
---「1. 매머드 스테이크」중에서
이 최후의 만찬에 오른 음식 그릇 속에 정확히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성서에 나와 있지 않다. 어쩌면 깍지 있는 콩, 예컨대 렌틸콩 같은 것을 양파에 올리브유 그리고 약간의 석류즙을 함께 넣고 끓인 간단한 채식일 수도 있다. 게다가 그날을 경축하는 양고기구이가 틀림없이 식탁에 오를 것이다. 유월절의 양은 먼저 털가죽을 벗겨낸 다음 흙으로 만든 화덕의 이글거리는 불에 완전히 태워버린다. 이어서 기다란 막대에 양을 꽂아 뜨거운 구덩이 속에 집어넣고 흙으로 덮어 푹 익힌다. 복음서 저자가 직접 이 음식을 언급하지 않은 데에는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날 저녁상에 오르는 가장 간단한 두 음식, 즉 빵과 포도주가 결국 중요하기 때문이다.
---「7. 빵과 포도주」중에서
소스를 정확히 규정하기는 쉽지 않지만, 음식의 한 요소로서 곧장 맛의 중심으로 흐르는 액체라 할 수 있다. 다른 모든 요소를 감싸고 도는 버터가 들어간 유동액이다. 음식의 표면에 끼얹으면 뜨거운 상태로 반짝이며, 음식 사이사이 빈 공간으로 스며들고, 고기구이 윗면을 덮어주며, 채소를 푹 적셔준다. 아이들이 음식 접시에서 맨 먼저 숟가락으로 떠먹는 것이며, 맨 마지막에 빵으로 싹 닦아 먹는 것이다. “저 정도면 풍덩 빠져도 되겠네”라는 표현은 머리 처박고 먹을 수 있는 부드럽고 따끈한 소스가 가득 담긴 움푹한 접시를 생각나게 한다. 소스는 음식 중에서 가장 불필요하면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원하는 구성성분이다.
---「19. 소스」중에서
특히 미식의 측면에서 볼 때 에도 시대(1603~1868)는 오늘날까지도 일본 문화의 개화기로 통한다. 같은 시기의 중유럽 농민은 아직도 그 지긋지긋한 멀건 곡물죽을 먹었지만, 벼농사를 짓던 에도의 농부는 보드라운 장국에 메밀국수를 적셔 먹었고, 장어구이에 달콤한 ‘가바야키 소스’를 발라 먹었으며, 고소한 향을 풍기는 덴푸라, 즉 생선튀김이랑 채소튀김을 즐겼다. 육고기를 먹는 것은 불교 국가인 일본에서는 금지되어 있었다. 그 밖에도 외세의 영향이 없었던 이 완전한 독자적 통치 시기에 생겨난 음식이 또 하나 있었으니, 당시 세상 그 어디서도 볼 수 없고 먹을 수 없었을 독특한 음식, 바로 ‘스시’였다.
---「24. 수제초밥」중에서
“점점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를 외치며 인간은 자신을 몰아붙인다. 패스트푸드도 그렇게 떠들어댄다. 게다가 효율적 식사라는 것은 전후 시대가 낳은 산물이기도 하다. 그때는 힘들게 노동하면 곧 남들에게 인정받는 시대였다. 뭐든 쌓아 올리고 돌파해야 했다. 후닥닥 먹어 치운다는 것은 개인 혹은 그 개인의 욕구를 억누른다는 뜻이다. 일하는 짐승을 그저 황급히 먹인다는 의미도 있었다. 그러니 수십 년도 지나지 않아 개성과 신중함이라는 말에 온 관심이 집중하자 식사는 다시 느려지면서 ‘슬로푸드(slow food)’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39. 햄버거」중에서
사람들의 익숙한 기대와 오래된 인식 패턴이 세련된 놀잇감이 된 것이다. 달콤하리라 여긴 것에서 쌉쌀한 맛이 나고, 단단해야 하는 것이 입에서 살살 녹고, 모락모락 김이 나는데 놀라울 정도로 차갑게 얼어붙어 있다. 분자요리(分子料理)의 핵심인 거품(espuma), 구(spharen. 액체가 든 공 모양 음식) 그리고 질감을 말하는 것이다. 인공 안개가 마치 연극 무대에서처럼 번지는 가운데 접시가 밑으로 쑥 가라앉는다. 아무 것도 모른 채 보통의 완두콩 수프인 줄 알고 접시에 든 것을 숟가락으로 떠먹는다. 그런데 먹어보니 이 음식은 정교한 해체의 산물이다. 완두 한 알은 거품으로 분해되고 다른 한 알은 얼음으로 제 모습을 드러내며, 그다음 한 알은 이빨 사이에서 터진다. 분자요리의 경험이다.
---「46. 액체 올리브」중에서
건초 한 단이 수수한 접시에 아주 가지런히 놓여 있다. 작은 주전자에서는 흑갈색의 맑은 국물이 몽글몽글 수증기를 내뿜는다. 그걸 건초 위에 붓는다. 표면이 기름기로 반들반들해진다. 건초는 국물을 한껏 빨아들인다. 몇 초 동안이다. 그러고 나면 건초 다발은 마치 대걸레가 폭발하기라도 한 듯 걷잡을 수 없이 강력하게 풀어져서 접시 전체를 가득 채우는데, 봉오리 벌어지는 꽃처럼 탱글탱글하다. 접시를 입술에 갖다 대고 건초 사이에 스민 국물을 후루룩 들이켠다. 여름철의 따뜻한 풀밭 향내가 난다. 국물은 흙 맛이 나고 짭짤하며, 숲과 바다의 맛도 난다. 건초가 탁 풀어 헤쳐지며 연출해내는 자그마한 장관은 마술 같은 분자요리 기법이 아니라, 순전히 자연이 만들어내는 효과다
---「47. 건초 향 입힌 버섯조개탕」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