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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장래 희망은 아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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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5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16쪽 | 125*190*13mm
ISBN13 9791198240354
ISBN10 119824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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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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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검사 결과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정상 범위의 기준치를 아슬아슬하게 넘는 게 두어 개 있었고, 나머지는 기준 이하였다. 결과를 들었을 때는 사실 특별한 소감이 없었다. 오히려 나는 의사에게 정관수술을 미리 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고, 의사는 아직 아이도 없으니 그럴 필요는 없다며 나를 말렸다. 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데 차분했던 마음에 파도가 생겨 잠잠해지지 않았다. 정신을 잠시 놓은 사이에 생긴 파도는 어느새 나를 집어삼켰다. 그랬다. 나는 사실 아직도 아빠가 되고 싶었다. 아빠가 되고 아이를 키우며 내가 모르는 나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아이가 커가는 걸 지켜보며 아이와 아내의 삶이 조금씩 풍요롭게 되기를 바랐다. 아내의 마음, 나의 마음, 아이의 마음이 각기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생각하고 아껴주며 세상을 살아가는 당위를 찾아 삶을 보내보고 싶었다. 나는 아빠가 되고 싶었다.
--- p.19

아기집을 실제로 보고 나니 마음이 놓이면서 울컥했다. 무작정 아빠가 되고 싶었던 철없던 시간을 지나 두 번의 암 투병을 겪으며 나 스스로 운이 없는 사람이라 확신했다. 나에게 있을 일은 다 있을 만한 일이고, 운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는 것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채 찾아오는 고통에서 나를 방어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다. 불안증과 공황이 나를 지배하면서 내 인생이 잘 풀리지 않는 게 당연하다는 확신을 아내의 자궁에 있는 아기가 지워버렸다. 이 아이는 오로지 엄마와 아빠를 찾아 우리에게로 왔다. 비록 작은 세포에 지나지 않지만 이 아이는 분명한 생명체로서 자라고 있었다.
--- p.33

우리 엄마에게도 손주의 탄생은 당연히 기쁜 일이다. 하지만 열 달 동안 품어가며 낳은 ‘나의 아이’에 대한 염려를 더 많이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엄마라는 존재다. 내가 아팠을 때 자녀를 키운 엄마들이 나에게 했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엄마가 너무 힘들어하셨겠다.”라는 말. 나의 투병은 나에게는 이미 끝났고 좋은 일들이 나의 힘들었던 기억들을 충분히 덮었지만, 엄마에게는 덮어지지 않는 기억으로 존재한다. 그 마음은 자식을 향한 사랑의 최종적인 형태이지 않을까?
--- p.38

사람들은 결혼과 임신, 육아로 인해 발생되는 상실들로 인해 겁을 집어먹고 결혼에 발을 들이지 못하기도 한다. 그래서 내 생명과 같은, 어쩌면 내 생명보다 소중한 누군가를 위해 삶에 애착을 갖는 경험은 쉬이 겪을 수 없다. 가족의 존재로 인해 나의 생명과 삶에 집착하고 열의를 다해 살아간다는 게 단순히 나를 희생해 가족을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 마음은 나 자신을 더 사랑하고 귀히 여기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이는 가족이 있어 깨닫게 되는 삶의 또 다른 신비다.
--- p.57

임신 중인 엄마는 태아를 돌보고, 아빠는 임신 중인 아내를 돌본다. 아이와 갖게 될 거리감은 아빠가 가지는 숙제다. 지금도 나는 남편으로서 아이와 직접 연결된 사람이지만 동시에 제3자인 타인이다. 아빠가 엄마와 태아의 사이보다 더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는 없다.
--- p.77

다행히 안나는 평소 움직이는 시간을 한참 지나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내의 배를 뻥뻥 차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걸 느끼고 나서야 우리는 마음을 놓았다.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은 아이가 태어난 후에 생기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아내의 임신으로 알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아이의 존재는 늘 걱정과 근심을 하게 하고 동시에 그만큼의 기쁨과 행복을 안겨 준다. 아이를 배에 품고 있는 40주의 모든 순간이 삶의 축약 같다. 농도 짙은 걱정과 농도 짙은 기쁨이 있다.
--- pp.143~144

아빠는 저녁을 드시면서 형이 태어나는 걸 보며 가슴 한쪽이 ‘쿵’ 하고 떨어지는 걸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둘째 아들인 내가 태어나는 걸 보며 나머지 한 쪽 가슴이 ‘쿵’ 하고 떨어졌다고 했다. 아빠에게 나도 그 감정을 깨닫고 있다고 말을 했더니 아빠는 지금 느끼는 건 가짜라며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야 그 심정을 제대로 알 수 있다고 말했다.
--- p.147

나는 때가 되면 다 잘하게 되어 있다는 막연한 마음으로 현재와 미래를 대했지만, 아내는 스스로를 독려하고 아이를 키우는 자기 자신을 키워 나가기 위해 280일을 쌓아 올렸다. 아내는 아이를 배 안에서 키우며 엄마로서의 자기 자신도 키운 것이었다.
--- pp.202-203

나는 너의 첫 번째가 되고 싶었다. 엄마가 너를 품고 있던 순간에 아빠는 문득문득 엄마가 부러웠다. 나도 너를 품고 싶었다. 그렇게 내가 너를 위하고, 네가 세상에 태어나는 데 의미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너의 모든 순간을 보고, 너의 모든 순간을 돕고, 모든 순간을 너와 함께하고 싶었다. 너를 낳고 너와 함께 있고 싶었다. 너를 위해 몸과 마음이 변하고 온전히 너를 위한 경험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빠는 그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나는 그게 너무 속상했다.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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