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시즈코가 몸집이 작았기로, 한 사람의 뼈가 조그만 항아리 하나에 다 들어갈 리가 없다. 화장터의 담당 직원이 뼈를 줍는 친족들 옆에 서서 그건 등뼈, 그건 목뼈라고 설명해주면서 항아리가 대충 가득 차는 것을 확인하고는 남은 잔뼈와 재를 아무렇게나 끌어모아 들고 가버렸다. 잠시 후 어딘가 안쪽에서 좍좍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키라와 함께 있으려는 것인지, 미키와 사에만 가족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모여 뼈 항아리를 살며시 들여다보았다.
“하나도 무섭다는 생각이 안 드네.” 미키가 말했다.
“이렇게 고울 줄은 몰랐어.” 항아리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살짝살짝 만져본다.
“하지만 정말 잔인한 의식이다.” 사에가 말했다.
“죽은 사람의 뼈를 가족이 주워야 하다니.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지.”
“단념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아키라가 그렇게 대꾸하자, 둘은 꼭 닮은 얼굴을 들었다.
“뼈까지 줍고 나면 단념하지 않을 수 없잖아.” ― 76~77쪽
미키는 선 채로 어린애처럼 훌쩍거렸다. 정말 모처럼 드레스까지 차려입었는데, 이 꼴이 뭐람. 마치 피부병 걸린 도둑고양이 같잖아. 사람과 관계하는 것이 무서워서 늘 벌벌 떠는 주제에, 혼자서 살 자신은 없으니까 금방 도망칠 수 있도록 거리를 두고, 뭐 맛있는 것 좀 안 주나 싶어 야옹야옹거린다. 아아, 천박하다. 도둑고양이가 아니라 창부다. 아귀다. 그와 함께 있는 것이 제일 편하다니, 순 거짓말. 나는 이렇게 헐벗고 굶주리고 메말라 있다.
울지 마, 꼴 보기 싫어!
거울 속에서 풀 죽어 있는 여자를 억지로 노려보면서 오열을 꿀꺽 삼켰다.
내 것도 아닌 남자 때문에 그렇게 울면 어떻게 해.
기다리니까, 안 되는 것이다. 말만 혼자서 사는 것이지, 혼자서 지내는 시간 내내 그를 기다린다. 이 집은 모델하우스나 조금도 다름없다. 언제 올지 모르는 손님을 기다리기 위해서 만들어진, 주인 없는 빈집이다.
화가 치밀어 미키는 두 손으로 힘껏 볼을 쳤다.
“정신 차려.”
자기 목소리가 귀에 울리자 비로소 그 말이 엄마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또 울음이 북받칠 것 같아 숨을 들이쉬고 앞니를 꽉 깨물고 참았다.
― 134~135쪽
나는 오히려 미키가 부럽다. 지금 오빠에게 특별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미키다. 식구들 중에서 오직 한 사람, 아키라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오직 동생이기 때문에 아무 거리낌 없이 그 이름을 부를 수 있는. 하지만 나는 겁이 나서 그의 연락처조차 알 수가 없다. 그날 밤, 그렇게 단둘이 얘기할 때조차 물을 수 없었다. 그가 가르쳐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알고 나면 걷잡을 수 없으리란 두려움에 도저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왜 과감하게 물어보지 못했을까? 다시 한 번 그에게 이름을 불리고 싶다. 연인이 아니라, 그냥 여동생으로도 좋으니까 달을 보며 툇마루에서 불러주었던 사에, 설움이 북받치도록 아무 감정 없었던 그 목소리라도 상관없으니까, 다시 한 번 낮은 목소리로 불러주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이룰 수 없는 꿈.
사에는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 207~208쪽
미쓰구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욱신욱신 아픈 눈가를 비빈다. ‘그 시절이 좋았다’며 옛날을 그리워하는 중년 남자는 되고 싶지 않다, 절대. 옛날에는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했는데. 미쓰구는 어쩔 수 없이 굽히고 들어갔다.
“아무튼 거기 가서 사느냐 마느냐는 둘째 치고, 적당한 땅을 찾아보는 건 괜찮잖아?”
요리코가 한숨을 쉬었다.
“당신, 왜 그렇게 집착하는데?”
“왜라니, 취미 같은 거지.”
“과연 그럴까. 괜한 오기 부리는 거 아니야?”
“오기?”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든지.” 미쓰구가 눈살을 찌푸렸다.
“당신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채소를 싫어하는 버릇은 고쳐졌으니까, 이제 그만해도 되잖아? 그리고 그냥 사다 먹는 게 훨씬 싸다고.”
“돈 얘기 좀 그만할 수 없어”
“왜 그만해? 지금도 친척들한테 보내는 택배 비용이 얼마나 드는 줄 알아?”
“그만하라니까.”
“그런데 땅까지 또 사들이면, 그야말로 홍당무 하나에 몇만 엔 꼴이라고.”
“그만하라잖아!”
요리코는 순간적으로 움찔했지만, 금방 수세미를 싱크대에 내던지고 돌아보았다.
“말 안 하면 당신은 모르잖아!” ― 259~260쪽
엄마 역시 대부분의 어른과 마찬가지로 만화를 어린애들이나 읽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교과서에 실리는 문학은 고상하고 만화는 저속한 것이라고 단정 짓고 있기에, 사토미가 책에도 아동용이 있고 성인용이 있는 것처럼 만화에도 어른이 감상하기에 충분한 뛰어난 작품이 많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비웃기만 할 뿐 귀담아듣지 않는다. 보나 마나 학교에서도 저런 식이겠지, 하고 생각하면, 배우는 학생들이 불쌍해진다.
만화에서 졸업할 수는, 절대 없다. 아니, 할 마음이 없다.
사토미가 산소 부족으로 입을 뻐끔거리는 붕어 같은 답답함에서 벗어나 편히 숨 쉴 수 있는 곳은 자신이 그린 그림 속뿐이다. 아무 잡념 없이 그리는 동안에나 자신은 잘난 것 하나 없는 쓰레기 같은 인간이란 생각을 지울 수 있다. 둔하다느니, 성격이 음침하다느니, 얼굴이 크다느니 하는 솔직하면서도 잔인한 남자애들의 말에 신경을 쓸 일도 없고, 엄마의 입에서 나오는 ‘어서 해라’ ‘어째 너는’ 유의 잔소리에 주눅 들 필요도 없다. 그저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다른 세계에 몰입할 수 있다. 아리따운 공주든, 칼 잘 쓰는 전사든, 또는 가공의 생물이든 요정이든, 마음대로 변신할 수 있다. ― 298쪽
“애걔, 할아버지 아직도 몰랐어요? 얼마 전부터 한국 붐인데.”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사토미의 말을 처음에는 믿기가 어려웠다. 고향 말을 한 죄,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쓴 죄, 자신은 개가 아니라고 외친 죄. 그런 죄로 미주가 죽임을 당한 것이 바로 엊그제 일 같기만 한데.
그녀가 죽은 후 시게유키는 오래도록 자신을 책망하고 후회했다. 그녀가 무심결에 ‘아이고’란 말을 내뱉었을 때 가차 없이 혼을 냈어야 했다. 진짜 이름도 묻지 말았어야 했다.
자신과 있을 때만이란 어중간한 동정을 한 것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아닐까. 그녀가 애써 잠재우려 했던 것을 들쑤셔 그런 결과를 초래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조금씩 다른 식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여기는 자체가 핵심에서 벗어난 오만함이고 근본적인 원인을 착각한 ……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오히려 그녀를 폄훼하는 것이란 기분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애당초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거듭한 사과조차, 그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사과를 해서 다소나마 마음이 편해진 것은 바로 내가 아닐까. 스스로 자신을 책망하면서 실은 용서받고 싶어 한 것이 아닐까. ‘이제 됐어’라고. ― 432~4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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