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노병사. 우리의 생을 지칭하는 네 개의 글자이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다소 회의적인 이 단어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생물학적인 삶에 대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 태어나고 늙고 죽는 것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일 것이다.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병드는 것은? 아마 병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요인일 것이다. 실제로 히포크라테스 이후 의학;
리뷰제목
생노병사. 우리의 생을 지칭하는 네 개의 글자이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다소 회의적인 이 단어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생물학적인 삶에 대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 태어나고 늙고 죽는 것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일 것이다.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병드는 것은? 아마 병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요인일 것이다. 실제로 히포크라테스 이후 의학의 역사란 바로 병과의 싸움에 관한 역사가 아닌가?
인간의 몸이 질병과 싸우는 과정, 특히 외부의 침입(세균, 바이러스, 이물질)에 대응하여 반응하는 것을 면역이라고 한다. 그리고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면역반응은 내부의 적인 암의 발생과 발달에도 관계가 있다고 한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면역이라 하면 항원이니 항체니 백신이니 하는 것만 생각하지만 실제 면역은 인체 안에서 일어나는 격동적인 현상이며 수많은 세포와 조직, 그리고 물질들이 얽히는 숨 막히는 현상이다. 신경계는 전기회로로, 순환계는 펌프와 파이프로 단순화 시켜 이해가 가능하다면 면역계는 수많은 수류탄, 미사일, 저격수, 보병대대, 정찰병, 화생방전, 미끼, 보초, 경보발령 등이 있는 전쟁터와 내부에 숨어있는 적과 자신을 구별해야만 하는 숨막히는 첩보전으로 비유해야만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면역학을 소개하는 이 책의 제목은 “세포전쟁(Dying to live)”이다. 이 책은 이 숨막히는 대격전의 면면을 찬찬히 살펴주면서 인식-반응-회복 이라는 세 개의 큰 주제를 따라 면역학 분야가 일구어낸 최신의 내용을 전달한다. 여기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항원 항체, 백신뿐만 아니라 암과 에이즈, 생활습관과 면역, 자가면역질환, 알레르기, 면역계의 조절 등 면역학의 전반에 걸친 내용이 포함된다.
원제인 “Dying to live"는 면역반응을 조절하기 위해 인체가 선택하는 전략을 의미한다. 세포들은 외부의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자극에 의해서 죽기도 하지만 스스로 방아쇠를 당겨 자살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apoptosis라고 하며 세포고사, 세포자연사, 세포자살로 번역한다. 먼저 면역계는 스스로와 반응하는 면역세포들을 제거하는데 이 방법을 사용한다. 두 번째로 적들이 모두 소탕된 후 면역계를 진정시키고 평상시로 돌아가기 위해 소수의 기억세포나 보조세포만을 남기고 나머지 면역세포들은 모두 제거한다. 이때 역시 세포자연사 과정이 개입된다. 그리고 방금전까지 외부의 침입자들과 처절하게 싸웠던 면역세포들은 이제 인체의 지시에 따라서 순순히 소멸의 길을 걷는다. 이렇게 하여 인체는 생성과 소멸이라는 두가지의 조절가능한 경로를 이용하여 전체적인 항상성을 유지한다. 그리고 이 항상성이 깨질 경우, 특히 죽어야할 세포들이 죽지않는 경우 이상면역반응이 생기고 이것이 수많은 자가면역질환과 아토피나 천식 같은 알레르기 반응의 원인이 된다. 저자는 세포의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쓰고 있다. ”.......아주 최근에 참된 면역반응이란 사실상 프로그램된 세포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부자연스런 세포의 죽음에는 대항하여 반응하는 신체의 능력이라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세포의 죽음은 아주 흥미롭다. 세포의 죽음은 무서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손상되고, 질병에 걸리고, 쓸모없는 세포들을 제거하는 과정이야 말로 생명을 구제하는 것이다. 우리의 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세포들이 죽을 필요가 있다. 그것은 위험하지만 어쩔 수 없는 죽음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원제목에 대한 번역은 ‘죽도록 살고싶다’가 아니라 ‘살기위한 죽음’이나 ‘죽어야 산다’정도가 적절하지 않았을까.
교과서 요약판과 같은 어투가 읽기에 쉽지는 않지만 면역학이라는 분야가 궁금한 사람, 각종 알레르기 질환으로 고생하면서 민간요법의 허와 실을 따져보기 위해 기초가 필요한 사람, 그리고 앞으로 면역학을 공부하게 될 생명과학 전공의 대학생들은 한번쯤은 읽어볼만한 책일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아주 최근에 참된 면역반응이란 사실상 프로그램된 세포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부자연스런 세포의 죽음에는 대항하여 반응하는 신체의 능력이라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세포의 죽음은 아주 흥미롭다. 세포의 죽음은 무서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손상되고, 질병에 걸리고, 쓸모없는 세포들을 제거하는 과정이야 말로 생명을 구제하는 것이다. 우리의 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세포들이 죽을 필요가 있다. 그것은 위험하지만 어쩔 수 없는 죽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