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읽기를 권한다. 장소가 허락한다면 바짓단을 조금 걷어 올리고 읽어도 좋겠다. 낮잠처럼 단 물, 고지서 속 숫자들같이 혼탁한 물, 은밀한 격정처럼 소용돌이치는 물, 얼음같이 차가운 물, 수많은 작은 물짐승들이 보드라운 숨을 내뿜으며 헤엄쳐 다니는 물…… 각기 다른 온도와 결을 지닌 그 모든 물이 차례로 발바닥을 간질이고, 발목을 지나 무릎까지 차오를 테니까. 읽는 내내 이 이상하고 매혹적인 인어 왕자의 발바닥을 상상해봤다. 매끄러울까? 아니, 거칠고 잔금이 많을 것 같았다. 구병모는 촘촘하고 꼼꼼한 작가다. 뭍의 현실에 두 발을 단단히 붙이고 서서 물속의 꿈을 세밀화처럼 정교하게 그려내는 그는 천연덕스럽게 속삭인다. 자, 들어와서 물결에 몸을 맡겨봐. 너에게도 있을걸. 모두가 상처라고 하겠지만 사실은 그게 다가 아닌…… 그것이 말이야.
윤이형(소설가)
소소한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내뿜는 분노의 형상을 보라. 놀아달라고, 자기 싫다고 떼쓰는 아이를 세탁기 속에 넣고 돌려버리는 엄마, 복부부터 하반신 전체가 인도 한복판에 깊이 처박혀버린 남편에게 도시락과 여분의 휴대폰 배터리만 주고 가버리는 아내. 이들은 도대체 누구이며 어디까지가 실제이고 어디까지가 환각인가. 그리고 내 옆에서 잠든 당신은 도대체 누구인가. 한여름 밤에 펼쳐지는 잔혹극의 주인공들은 투우사가 들고 있는 선명한 붉은 천 빛깔의 깃발을 들고 다가와 속삭인다. 우리가 왜 매사에 감사하며 쥐 죽은 듯 살아야 하는데?
강영숙 (소설가)
구병모의 소설에서, 사건은 매번 어쩔 수 없이 벌어진다. 그녀는 현장 속으로 집요하게 파고든 뒤, 망원경을 통해 상상하고 현미경을 통해 관찰하기 시작한다. 아득한 풍경을 최대한 가까이서 들여다보는 것이다. 사태는 난감하고 곤혹스럽지만, 이상하게 이를 전하는 그녀의 문장은 비정할 정도로 반짝반짝 빛난다. 우리는 입을 모아 외칠 수밖에 없다. 지금이 이렇게나 무더운 때였다니! 여기가 이렇게나 무서운 곳이었다니! 그리고 비참함 뒤에는 어김없이 더 큰 처참함이 도사리고 있다. 뒤엉킬 대로 뒤엉킨 상황에서 겨우 수비하는 심정으로 책장을 넘긴다. 마지막 남은 한 가닥 씨줄처럼 날줄처럼, 비장하게 팽팽해진다.
오은 (시인)
작가는 대안적 질서 대신 탈위치화된 변형물들로써 기상천외한 사건들과 새로운 의미가 발생할 수 있는 구조를 창조해내고 있다. 이 작품들의 괴기스러운 광경들은 비현실적이라는 점에서 ‘환상’으로 불릴 수도 있지만, 그것은 현실에서 한 발도 빼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직면한 고통에서 발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허황한 상상물이 아니다. 이러한 환상성을 지닌 사건들은 현실의 이면에서 내밀하게 작동하고 있는 어두운 힘을 환기시키면서 그에 대한 강력한 파괴력을 구조적으로 내장하고 있다. 그래서 그것은 오히려 리얼리즘의 심화에 가깝다.
황광수 (문학평론가)
[위저드 베이커리]의 달콤쌉싸름한 유혹과 [아가미]의 신비한 슬픔으로 한국문학에 자기존재를 선명히 각인시킨 작가 구병모. 그런데 이상하다. 이 작가, 늘 신인 같다. 신인이 무서운 건 자기복제가 없어서다. 작가가 매번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을 쓰기 위해서 무엇을 무릅써야 하는지,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나도 조금은 안다. 그런데 구병모는 정말 언제나 그걸 무릅쓴다. ‘파과’처럼 으깨진 영혼으로 살아온 여인의 고독하고 살벌한 삶을 그린 [파과]에서도 역시 그렇다. 아무것도 지킬 것 없는 삶의 사막과 무언가를 지켜내야만 하는 삶의 정글 사이에서, 나는 한동안 혼란스러울 것이다.
권여선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