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모임에 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한 적이 없다. 당연하지 않은가. 요즘 잘나가는 애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토론을 하지 않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애들이 우리 학교에도 있다. 나는 그 애들을 잘 안다. 성적은 좋지만, 뭔가 없는 애들이다. 패션 감각이 없거나, 유머 감각이 없거나, 감정이 없거나. 아니면 뭔가 모자란 애들도 있다. 얼굴이 모자라거나, 몸매가 모자라거나, 친구가 모자라거나. (p.21)
“예뻐지고 싶은 게 왜 나빠? 못생기고 뚱뚱하면 다들 무시해. 게으르다는 둥, 자기 관리를 안 한다는 둥, 성격도 삐뚤어졌을 거라는 둥, 자기들 멋대로 결론을 내리지. 그런 신세가 되고 싶지 않으니까 노력하는 거야. 예뻐지려고. 예뻐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아름다움에 집착하니까 예뻐지려고 다들 발광하는 거라고!” (p.52)
축구가 내 모든 것이던 시절이 있었다. 초등학생 때 선수로 뽑힌 후 계속 축구만 했다. 고등학교도 잘나가는 축구부가 있는 곳으로 진학했다. 1학년이었지만, 축구의 신은 나의 편인 것 같았다. 나는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체격을 갖추고 있었고, 체력도 좋았다. 이대로 쭉, 국가대표까지 간다. 어쩌면 국가대표 팀 코치가 되고, 감독이 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시합중 상대편 선수의 태클로 생긴 부상은 내 인생을 전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이끌었다.(p.68)
“난 이 말이 좋았어. 모든 독자는 평등하다. 그동안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한 게 맞나? 이렇게 읽으면 되는 걸까? 나 너무 무식한 거 아냐? 혼자 이런 생각 많이 했는데, 여왕도 책 읽으면서 헤매더라고. 나한테 괜찮아, 괜찮아, 하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좋았어.”(p.152)
“너, 솔직히 말하면 책 읽는 거 영 젬병이잖아. 너 힘들다는 거, 우리도 다 알거든. 그런데 넌 책 읽기가 힘들다는 걸 숨기려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게을리 하지도 않아. 그거 진짜 배짱 좋은 사람만 할 수 있는 행동이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충만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거지. 다시 말해, 배짱이란 능력과 직접 상관있는 건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야.”(p.177)
나는 우리가 서로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어서 좋았다. 동질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 제멋대로의 모임에서 나는 처음으로 자유를 경험했다. 어떤 기준을 세워 순서를 매기지 않는 세계, 순서를 매길 수도 없는 세계, 나는 수북에서 그런 세계를 처음 경험한 것 같았다. 그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눈으로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이게 힘이 될 수 있다니!(p.199)
“내가 이 책을 만나서 참 다행이야. 수북이 아니었으면 책 같은 건 읽지 않았을 테고, 그럼 이 책을 만나지도 못했겠지. 이 세상 어딘가에 모모가 있고, 언젠가 나도 모모를 만나게 되면 내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거다, 생각하니까 참 좋더라고.”
그러나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남의 말을 듣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일 것 같지만, 작가가 말한 것처럼 ‘진정으로 귀를 기울여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줄 줄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는 것을. 과연 우리는 모모를 만날 수 있을까? (p.204)
“‘내가 뭘 잘할 수 있을까?’ 이 질문 앞에서 당당한 사람이 누가 있겠어? 다들 난감하지. 나는 열여덟 살짜리가 이 질문에 확실한 대답을 하는 것 자체가 정상이 아니라고 봐. 우리가 해본 게 있어야 뭘 잘하는지 알지. 난 평생 공부밖에 해본 게 없는데.”(p.222)
이 세상에 정말 기여하는 것은 천재일까, 평범한 사람일까?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 답을 찾지 못한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고, 모임은 여느 날보다 늦게 끝났다. 나에게 조금이라도 재능이 있다면, 그건 뭘까? 김의영은 글을 쓰고 싶어하고, 윤정환은 공부를 잘한다. 박민석은 축구를 잘했었다. 불운만 닥치지 않았다면 지금도 계속 축구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게 권투일까?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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