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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철진의 궁즉통

유철진의 궁즉통

: 멘토이야기시리즈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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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12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456쪽 | 153*225*30mm
ISBN13 9788997714391
ISBN10 8997714392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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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유철진
1942년 출생
* 동성중·고등학교 졸업 (1961)
* 한양대 기계공학과 졸업 (1968)
* 미국 앨라배마 주립대 산업공학과 석사학위 취득 (1990)
* 미국 앨라배마 주립대 경영과학과 박사과정 수료 (1992)

- 현대건설 입사 (1968)
- 현대양행 안양공장 건설 및 운영 (現 만도기계)
- 현대양행 군포공장 건설 및 운영 (現 LS그룹)
- 현대양행 창원공장 건설 및 운영 (現 Volvo Korea 및 두산중공업)
- 현대중공업 중장비 공장 건설 및 운영 (부사장)
- 현대정공 (現 현대모비스) 대표이사 (현대그룹 36년 재직)
- (現) 티아이에스 정보통신 및 Yujin Metro 창업

- 미국 유학 중 앨라배마주 무역협회 고문
- 한국 자동차 공업협회 부회장
- 한국 CNC 공작기계협회 회장
- 국제 제20회 컴퓨터/산업공학 학회 (ICC&IE) 대회장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제1부
소년시절


1
소년, 핵물리학자를 꿈꾸다

중학교 1학년 어느 날, 국사 시간이었다

1950년 6·25 전쟁이 터지고, 당시 국민학교 3학년생으로 가족과 함께 서울에서 대전으로 피난을 가게 된다. 전쟁 중이라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되자 아버지는 한자와 삼강오륜을 직접 가르치며 배움을 이어 가도록 해 주셨다. 휴전이 될 즈음 대전 선화국민학교가 다시 문을 열게 되었고, 5학년으로 월반하여 이듬해 졸업할 수 있게 되었다.
중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시험을 치러야 했다. 아버지는 사업 때문에 서울에 먼저 올라가 계시면서 원래 살던 집 인근에 있는 중학교 몇 곳의 입시원서를 내려보내셨다.
담임선생님은 합격을 확신하고, 그중 전기 지원서만 써 주었는데 아쉽게도 전기 시험에 낙방하게 되어 후기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그리고 1955년,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있는 동성중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처음으로 낙방의 맛을 봐서 그랬는지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도 한동안 새로운 환경에 별 기대도 하지 못한 채 겉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국사 시간이었다. 선생님께서 지난 한국전쟁사에 대해서 얘기해 주셨는데, 어느 위인의 이야기가 그 속에 담겨 있었다. 그 이야기는 잠시 방황하던 내 영혼을 깨우는 듯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인하여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 처음엔 북한군이 우세하여 남한은 대구와 부산을 제외하고 모두 점령당한 상태였다. 그때 맥아더 장군을 사령관으로 둔 UN군의 인천상륙 작전으로 서울을 수복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북진 통일이 가능한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중공군이 전쟁에 개입하게 되면서 1.4 후퇴로 전쟁 상황이 다시 역전되고 있었다. 이때 맥아더 장군은 특유의 결단력으로 만주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릴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렇지만 트루먼 대통령은 그로 인해 제3차 대전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허락하지 않았고, 맥아더 장군은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끝내 옷을 벗게 되었다.

“그때 맥아더 장군의 계획대로만 되었다면 우린 아마 이렇게 분단되지 않았을 거야.”
선생님은 담담한 어투로 수업을 마무리하셨다.
그 당시 우리는 옛날 이야기를 들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불과 몇 해 전 우리 땅을 헤치고 지나간 전쟁의 상흔(당시 나는 많은 민간인과 남북 군인들의 사망자를 목격하였다.)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었다.
오늘날 맥아더 장군에 대한 평가는 더욱 냉정해지고, 다각화된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때 맥아더 장군은 우리에게 온전한 영웅이었다. 남북의 통일을 위해 애썼던 영웅. 그때가 사춘기에 막 접어드는 시기여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선생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동요시킬 만큼 말씀을 잘하신 것인지는 몰라도 나는 ‘맥아더 장군’ 이야기에 큰 감명을 받았고, 그를 깊이 존경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대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곧장 서울시청 옆에 있는 미국대사관 공보원 도서관(USIS)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맥아더 장군에 관련된 책을 찾으려 애썼다. 그러다 장군의 사진이 실린 사진집 같은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에 사진이 실린 곳에 문의하여 맥아더 장군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는 은퇴하여 뉴욕 5번가 어느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은 전쟁으로 황폐해진 빈국(貧國)의 어느 소년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맥아더에게 편지를 쓰다

바로 편지를 썼다. 지난 피난시절, 한국은행에 다니던 누님이 가르쳐줬던 기초영어를 바탕으로 내용을 만들고, 중요한 단어는 영어사전의 도움을 받아서 써내려갔다.

General, MacArthur
저는 장군의 결단력 있는 행동에 많이 감동했습니다.
… 저는 원자력을 공부하고 싶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교수를 소개해주세요.

전문(全文)이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부탁으로 마무리되는 어리숙한 글이었다. 편지를 보내고서 답장이 올까? 궁금했다. 과연 그런 위대한 사람이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의 고작 13살 아이에게 답장을 해줄 것인가? 의문스러우면서도 기대가 됐다.
그런데 정말 기적이라도 일어난 듯, 그에게서 답장이 왔다. 그때 맥아더 장군은 투병 중이어서 몸이 쇠약해져 있을 때였다. 그런데도 내 편지를 읽어보았는지 비서를 통해 내게 답장을 보내왔던 것이다. 그는 원자력에 권위가 있는 교수를 수소문해서 내가 보낸 편지를 그분께 전달했고, 교수도 그 편지를 읽고 내게 답장을 보내주었다. 그는 당시 미국 퍼듀대학 원자력공학과 학장이었다.
당시 받은 답장은 어마어마한 것으로, 원자력을 공부하는 데 필요한 그림과 자료 수십 개가 동봉되어 있었다. 미국이란 먼 나라에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소년이 보낸 편지 한 통을 받고 고심해주고, 세심한 배려가 담겨있는 답장을 보내주다니 영광이었다. 커다랗게 밀려오는 감동은 주체하기 힘들었다. 그때의 기쁨은 아직도 가슴을 뛰게 한다.
결국, 그 답장들은 소년에게 큰 목표를 세우게 해주었다. 핵물리학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고, 미국으로 유학 가서 꿈을 실현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계획을 실천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특히 영어가 필수조건이었기 때문에 스스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찾아다니면서 회화와 문법을 섭렵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훗날 엔지니어로서 드물게 영어를 잘 구사할 수 있었던 이유가 그 때문이다.
미국의 원자력 공학과 교수님과의 인연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이어졌다. 직접 그를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동안에도 꾸준히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고 3이 되기 전, 서울대학교 공대 원자력공학과를 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교수님에게 편지를 썼다. 얼마 후, 교수님은 여느 때와는 다르게 뜻밖의 장문 답장을 보내왔다. 진짜 원자력공학을 하려면 학부에서 원자력공학을 공부하기보다 기계공학이나 전기공학, 화학공학, 물리학과 같은 타 전공과목을 먼저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기본으로 삼아 대학원 과정에서 원자력을 공부하는 게 순서다. 아니면 기초가 부족해서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분의 조언을 지도 삼아서 목표 과목을 물리학으로 수정하고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다. 그러나 본의 아니게도 입시 준비에 전념해도 모자랄 고3 시절에 3.15 부정선거라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학업보다는 시위에 휘말리게 되었다.


2
어린시절의 교훈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 하늘보다 넓은 인간의 마음)

중학교 1학년 시절. ‘맥아더 장군’의 이야기만큼 내게 큰 감동을 안겨준 영화 한 편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중학생이 되었을 뿐인데, 우리는 스스로가 성숙하길 바랐다. 이제 어리지 않고, 뭔가 조금은 어른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교복을 입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친구들은 삼국지를 읽었고, 고전을 들여다보았다. 무엇이 그리 재밌을까 싶어서 나도 삼국지를 펼쳐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장편을 소화하기에 나는 조금 덜렁거렸고, 차분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돈암동이었던 집 근처에 있는 동보극장이라는 재개봉관을 지나다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이라는 영화 간판이 걸려있는 걸 보게 되었다. 친구 중 한 놈이 진중한 눈빛으로 읽어 내려가던 그 ‘레 미제라블’인 것이 틀림없었다. 그 또한 책 두께 때문에 엄두도 내지 못했건만 영화로 본다면 얼마든지 봐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더구나 재개봉관에서 조조할인으로 보면 더없이 저렴하게 볼 수 있었다.
‘레 미제라블, 기다려라.’
일요일 이른 아침, 늦을세라 끼니도 거른 채 첫 상영시간을 맞춰 집을 나섰다. 왜 그런지 영화란 것을 처음 보는 것처럼 자꾸만 마음이 설렜다. 친구는 부르지 않았다. 이미 책을 읽은 친구들이 이러쿵저러쿵하는 소리를 별로 듣고 싶지 않았다. 오롯이 혼자서 알고 싶었다.
볼 것이 없던 시절의 영화관은 언제나 인산인해(人山人海)였다. 더구나 전쟁 직후, 누구나 주머니 사정은 얄팍하기만 했다. 그래서인지 개봉관의 반값으로 영화를 볼 수 있는 재개봉관은 학생들에게 그냥 인기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래도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극장 안은 한산했다. 그래도 아는 사람이 없는지 극장 안을 대충 한 번 더 휘둘러보았고, 극장 안이 바로 어두워지자 자리에 털썩 앉아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흑백의 영상 뒤에 들리는 대사는 영어인지 프랑스어인지 귀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화면 한쪽 세로줄로 달린 자막을 읽어나가며 열심히 내용에 집중하려 애썼다.
상영시간은 세 시간이 훌쩍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파란만장한 장발장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사이, 조바심이 났다가도 뭉클해지고, 다행이다 싶을 때 슬퍼지는 전개를 따라가다가 프랑스 대혁명과 마주치는 전율을 느끼느라 그랬는지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드디어 마지막 장면이었다. 장발장은 죽었고, 그의 무덤가에 가랑잎이 날린다. 그리고 그 싸늘한 배경 너머로 내레이터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바다보다 더 넓은 것이 있다. 그것은 하늘이고,
하늘보다 더 넓은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마음이다.”
영화는 끝났지만, 마지막 내레이션에 마음이 먹먹해져 일어날 수가 없었다.
‘바다보다 넓은 것은 분명 하늘이다. 사람의 마음이 하늘보다 더 넓을 수 있을까?’
알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는 그 말이 자꾸만 귓전을 울렸다.
‘이대로 돌아갈 수 없다.’
결국, 마지막 상영시간까지 ‘레 미제라블’을 보고, 또 보았다. 그때는 지정좌석 제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영화관을 나서지 않으면 같은 자리에서 같은 영화를 계속 볼 수 있었다. 몇 편을 더 보았는지는 모르지만, 종일 굶고 있다는 사실도 밤이 늦었다는 사실도 잊은 채 그 자리에 붙박이처럼 앉아서 다시 그 마지막 장면을 보기 위해 기다렸다.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지만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바다보다 더 넓은 것이 있다. 하늘이다. 하늘보다 더 넓은 것이 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이라니…….’
밤이 깊어 마지막 상영이 끝나고 나서야 영화관을 나설 수 있었다. 그리고 계속 마음에 물음을 던지면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어느새 자정이 가까운 시간. 영문도 모르고 밤이 늦은 시각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들 때문에 걱정이 되었던 아버지는 퀭해진 아들 얼굴을 맞닥뜨리자 기가 막혔다. 그리곤 걱정했던 마음이 버럭 화로 돌변했다.
아버지는 매를 가져오라고 하셨다. 어떤 이야기도 통할 것 같지 않은 그 단호함에 내 두려운 손은 회초리를 찾았다. 그제야 심하게 배가 고파오는 건 또 어쩐 일이었을까? 아버지가 조금만 내 사정을 들으려 했다면 말할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어떤 걸 보고 왔는지를…….
그렇지만 끝내 아버지께 그 마음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리고 내 두 종아리는 배가 ‘꾸루룩꾸루룩’ 고픈 신호를 보내오는 것도 외면한 채 벌겋게 달아오르기만 했다. 그렇게 ‘레 미제라블’의 그 마지막 울림을 가슴에 담게 되었고, 앞날의 지표로 삼았다.
그 후, 6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링컨의 게티즈버그(Gettysburg) 연설문과 함께 그 내레이션은 아직도 내 가슴 깊은 곳에 새겨져 있다. 그 세월, 늘 나와 함께 하며, 에너지의 근원이 되기도 했던 그것.
최근에서야 미국인 지인을 통해 영어로 번역된 ‘레 미제라블’을 보게 되었다. 책을 받자마자 마지막 대목을 찾아 짚었다. 내 가슴의 문구가 의심할 것 없이 그 자리에 적혀있었다.
“There is a prospect greater than the sea, and it is the sky;
There is a prospect greater than the sky, and it is the human soul.”


부모님의 교육

내가 ‘레 미제라블’에 그렇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유년시절부터 어머니에게서 배운 가르침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이 지나갔다. 모두가 가난한 시절이었다. 그런데도 그 가난한 집에 걸인이 문을 두드렸고, 스님이 시주를 받기 위해 문을 두드렸다. 그래도 어머니는 장남인 내 손에 콩 한 줌, 보리쌀 한 줌이라도 들려서 바가지를 채우게 했고, 시주를 하게 했다. 피난 중일 때도 어머니는 늘 그렇게 하셨다. 그것을 받은 사람들은 고마움과 기특함에 내 머리를 연신 쓰다듬어주곤 하였다. 감동을 잘 받는 소년이었던 나는 그 칭찬이 너무 좋았다. 또한, 베푸는 것이 기쁨으로 보답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나의 어머니는 그 당시 여느 어머니들과 다르지 않게 많이 배우지 못하고 성장하셨다. 그러나 요즘 자녀를 기르는 학식이 높아진 어머니들보다 분명 현명한 분이셨다. 먹고 사는 것에 전념하느라고 자칫 가정교육에 게으를 수도 있던 시기였다. 그래서 사실 어머니가 자녀에게 이론적인 학습을 시켜주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유교적인 사상은 꼭 이론이나 책으로만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대대로 선조 때부터 우리 정신에 깃들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몸소 실천하는 것을 보여주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자녀들에게 교육적인 작용을 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늘 어른과 부모를 공경할 줄 알고 친구와 이웃에게 배려하고 아무리 가난해도 서로 나누는 기쁨을 가르치셨다. 내가 옆집 아이와 싸워도 나를 혼내며 양보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저절로 친구와 화해하고 화합하는 것을 배웠다. 나아가 사회와 회합하는 법을 배웠다고 해도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런 따뜻한 교육을 받고 자란 것을 항상 감사하게 생각했다.
어머니께서 부드럽게 보듬어주는 교육을 하셨다면, 아버지께서는 강직하고, 엄격하게 나를 가르치셨다.
중학교 2학년 무렵의 이야기다. 하루는 다음 날 친구 집에 가기로 약속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튿날 깨어보니 아침부터 장대 같은 비가 퍼붓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친구 집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다시 자던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려 했다. 그러자 친구와의 약속을 알고 계셨던 아버지는 크게 화내며 나를 일으켜 세워 회초리로 꾸중하셨다.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이라고 하였다. 지키지 못할 약속이면 입에서 꺼내지도 말거라.”
뜻밖의 상황에 당황했지만, 아버지의 말씀이 가슴에 박혔다. 그리고 그 후, 누구와의 약속이든 반드시 지키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아버지는 늘 삼강오륜과 언행일치의 가훈을 잊지 않도록 당부하셨다.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와 있어도 나를 혼낼 일이 있으면 그에 개의치 않고 회초리를 들기도 했다. 오늘날 아버지가 되고, 할아버지가 된 나로서는 그보다 큰 가르침도 없었다고 회상하곤 한다. 더구나 당시 장남의 교육은 아끼는 만큼 엄격해야 했을 것이다.
이 세상의 맏이들은 모두 공감하겠지만, 나도 어릴 때에는 두 살 어린 남동생에게 종종 샘을 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잠결에 부모님께서 나에 대해 나누는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다.
“철진이가 종손인데, 두 살 때 어린 동생을 보았기 때문에 너무 일찍 젖을 떼어 그런지 아우에게 양보심이 부족하여 근심입니다.”(당시에는 오늘날처럼 모유를 대체할 만한 분유나 우유가 없었기 때문에 아이가 젖을 뗀다는 것은 크게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직 어려서 그런 것이니, 이해합시다.”
어머니의 나지막한 우려의 목소리에 아버지는 그렇게 답하셨다. 짧지만, 그 대화 속에 나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 후에도 우연히 부모님이 나에 대해서 의논하는 이야기를 듣게 될 때면 나도 모르게 귀가 쫑긋해지고, 내 행동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결국, 부모님의 가장 큰 교육은 사랑과 관심이었고, 나를 훈계하는 것은 그것을 엄하게 표현하는 것일 뿐이었다.


‘데이비드 스완(David Swan)’-인연과 기회

확실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고등학생 시절 한창 대학입학 시험준비를 하던 무렵으로 기억한다. 당시는 딕슨(Dixon) 북 시리즈가 꽤 유명했는데 그중에 ‘주홍글씨’와 ‘큰 바위 얼굴’로 유명한 ‘나다니엘 호손(Nathaniel-Hawthorne)’이 지은 “데이비드 스완”이라는 단편소설을 감명 깊게 읽었다. 몇 번이나 책이 닳게 읽었는지 오래전에 봤던 책인데도 아직 그 줄거리를 기억하고 있다.
‘데이비드 스완’은 미국 남부의 중농가정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우며 20세의 건실한 청년으로 자라게 되었다. 그런데 하루는 문득, 그가 이대로 삶에 젖어 있다 보면 대대로 농부의 삶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살아온 집안 내력을 물려받아 그 또한 아무런 변화 없는 삶을 이어나가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보다 더 나은 자아를 찾기 위해 부모님 몰래 고향을 떠난다.
새로운 일자리를 얻기 위해 거리를 걷고 걸어야 했다. 때는 여름날이어서 더위에 지치고, 목이 마르던 차에 마침 샘터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그 샘터에서 목을 축이고는 그동안의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샘터 옆의 나무 아래에서 단잠에 빠져들고 만다.
그가 잠에 빠져 있는 사이, 나이 지긋한 부잣집 노부부가 마차 바퀴의 고장으로 잠시 그 샘터에 머무르게 되는데, 세상 모르고 잠이든 데이비드를 지켜보게 된 노부부는 그가 죽은 아들과 닮은 것이 신기해서 그가 깨면 자기들 양자로 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그런데 마차가 다 고쳐졌다고 하인이 갈 길을 재촉하자, 그에 정신이 들었는지 노부부는 그냥 돌아서게 된다. 그런 줄도 모르고 아직 단잠에 빠진 데이비드에게 다음으로 그 지역 최고 상인의 딸인 어여쁜 처녀가 다가와 앉게 된다. 그녀는 그에게 반해 이 사람과 결혼하겠다면서 그가 깨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가 좀처럼 깨지 않자, 그녀 역시 가던 길을 가버리고 말았다. 잠시 후, 지나가던 2인조 강도가 잠든 데이비드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가 베고 자는 배낭에 돈이 들어 있을 거로 생각한 강도들은 데이비드를 돌로 때려죽이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마침 개 한 마리가 짖으면서 데이비드가 있는 쪽으로 달려오자, 그들은 도망을 가버린다.
그리고 곧 잠시나마 깊은 잠에 묻혀있던 데이비드는 깨어나, “아! 한숨 잘 잤다.” 하면서 다시 배낭을 둘러메고 가던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를 데이비드에 비춰보고 지나쳐가는 내가 모르는 수많은 운명과 기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만일 노부부가 양자로 삼겠다고 했을 때 데이비드가 눈을 떴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강도가 그를 죽이려 했을 때 개가 짖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람의 운명이란 잠이 들건 깨어 있건, 행운과 불운이 겹치거나 교차하면서 늘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분명 그런 운명들은 데이비드가 집을 떠나겠다는 결심에서부터 발원한 것이니, 화살같이 지나가는 그 운명들도 결국은 개인의 순간순간 예지능력과 판단능력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는 것도 느꼈다. 이 가르침 역시 내가 성장해서 운명의 갈림길에 서 있을 때마다 지표 역할을 해주었다.

--- 본문 중에서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페이지마다 문제 해결형 발상, 역발상, 신발상들이 즐비하다. 한마디로 이 책은 ‘궁즉통’의 경지를 다채롭게 담고 있으니, 절로 권하고 싶어진다.
--- 차 동 엽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미래사목연구소 소장

나는 나의 자식들과 나의 회사 간부들에게 이 책을 반드시 읽게 하려고 합니다.
우리 회사에는 가끔 반디앤루니스 CEO 추천도서를 올리는 일이 있습니다. 이 도서를 기꺼이 선정합니다.
--- 김 천 식 반디앤루니스 회장

평생을 성실과 땀으로 성공을 일궈내신 인생 선배의 저작으로서, 항상 가까이 두고 중요한 결정을 앞둘 때마다 열어보고 싶은 책이다.
--- 최 연 혜 한국철도공사 사장

나는 이 책이 모든 사람들에게 그 어떠한 상황변화에서도 걸맞는 창의적 대응능력을 제공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Dr. Malcolm Portera 前 앨라바마주립대 이사장

우리가 희망을 찾아갔던 시절의 기록이다. 우리 젊은 날처럼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이 재연되는 이 시기에 고민을 해결하고 영감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 이 춘 림 前 현대중공업 회장

이것은 진하 디 진한 ‘남자’들의 얘기다.
쥐뿔도 없는 맨 손으로 허허벌판에서 집을 지어내듯, 6,70년대 한국경제의 시동을 향해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내달리기 시작한 젊은이들의 피 끓는 ‘개척’의 스토리다. 그래서 짜릿하고 감동적이다. --- 정 몽 원 한라그룹 회장

삶의 장벽을 넘어 아직도 꿈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걸어가는 제2의 인생! 그의 순발력 있는 삶과 슬기를 통해 오늘의 삶을 조명하며 당면한 문제들을 극복해 나아가자!
--- 한 규 환 현대 로템 부회장

항상 꿈을 꾸며, 열정적이고, 영원한 세계인이었다. 끊임없는 학구열은 창의력의 원천이었으며, 곁에서 모셨던 나에게도 큰 채찍이 되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는 청년 실업 문제, 베이비 부머의 대책없는 노후로 고민하고 좌절하는 많은 사람들이 "궁즉통"에서 희망의 단초를 찾기 바란다.
--- 강 경 호 DAS사장 / 변 정 수 한라그룹 前 부회장 / 강 병 원 동원그룹 前 부회장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궁즉통"의 창의력을 발휘해 오신 회장님의 깊고 넓은 지혜와 가르침을 마음 속에 담아 두고 자주 접해야겠다.
--- 윤 용 로 스트래티직 마케팅 & 커뮤니케이션스 대표

직장이 소중한 만큼, 가정도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신 분이다.
--- 윤 희 경 현대중공업 前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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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님께 배송되는 모든 상품을 CCTV로 녹화하고 있으며,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작업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목적 : 안전한 포장 관리
촬영범위 : 박스 포장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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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품/교환 안내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과 관련한 안내가 있는경우 아래 내용보다 우선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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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품/교환 방법
  •  고객만족센터(1544-3800), 중고샵(1566-4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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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품/교환 가능기간
  •  출고 완료 후 10일 이내의 주문 상품
  •  디지털 콘텐츠인 eBook의 경우 구매 후 7일 이내의 상품
  •  중고상품의 경우 출고 완료일로부터 6일 이내의 상품 (구매확정 전 상태)
반품/교환 비용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 반송비용은 고객 부담임
  •  직수입양서/직수입일서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20%를 부과할수 있음

    단, 아래의 주문/취소 조건인 경우, 취소 수수료 면제

    •  오늘 00시 ~ 06시 30분 주문을 오늘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오늘 06시 30분 이후 주문을 익일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직수입 음반/영상물/기프트 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 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30%를 부과할 수 있음

    단, 당일 00시~13시 사이의 주문은 취소 수수료 면제

  •  박스 포장은 택배 배송이 가능한 규격과 무게를 준수하며,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의 반송비용은 박스 당 부과됩니다.
반품/교환 불가사유
  •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전자책 단말기 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 예) CD/LP, DVD/Blu-ray,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  eBook 대여 상품은 대여 기간이 종료 되거나, 2회 이상 대여 했을 경우 취소 불가
  •  중고상품이 구매확정(자동 구매확정은 출고완료일로부터 7일)된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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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피해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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