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대로 떠들어라. 제가 경험한 쓸모 있는 수칙 제1조입니다. … 미술이 예전보다 훨씬 어려워진 건, 오스카 와일드가 비꼬았듯이 밥 먹고 할 일 없는 사람들이 한 짓거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 바깥에 보이는 사물에서 머릿속에 있는 생각으로 옮겨갔기 때문입니다. … 그의 속과 나의 속의 차이를 짚어보는 것, 그림 보기의 요체는 이겁니다. 그의 아이디어가 이러저러할진대, 왜 저런 모습의 작품으로 나타났을까. 작품의 원형질인 아이디어가 작가의 손을 거쳐 나오기까지 어떤 곡절을 거쳤으며, 그 사연은 작품을 보고 있는 나와 과연 공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 서로 빗나간다 해도 저는 괘념치 않습니다. 아니, 빗나가는 것이 자명합니다. … 그림 앞에서 사람들은 왜 떠드는 걸 주저하는 걸까요. 저는 작가의 그림 그리기와 감상자의 그림 읽기가 서로 달라질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상자는 맹목적인 동일시에의 집착이 있습니다. 너와 내가 그림을 본 느낌이 일치했으면 하는 희망, 그리하여 공감이 주는 안도감을 누리고 싶은 욕구, 이런 게 다 동일시에 대한 집착입니다. 그런데 그게 다 허욕인 겁니다. 세상 보는 눈은 장삼이사 우수마발이 다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왜 작품 볼 때는 그 세계에 자신을 틈 없이 밀착하고픈 집착에 사로잡히는 겁니까. 동일시는 절대로 불가능한 욕망입니다. 차라리 차이를 인식하는 게 현명합니다.
--- pp.8-11
어떤 이가 주변 풍광을 구경하다가 감탄사를 내뱉는다. “아, 강산이 그림 같구려.” 뭐든 곱게 넘어가는 법이 없는 연암인지라, 한 마디 쏘아붙인다. “이보시오. 강신이 그림 같다니…… 당신은 강산도 모르고 그림도 모르는 사람이오. 도대체 강산이 그림에서 나왔소, 그림이 강산에서 나왔소?” 그(연암)의 뜻은 ‘강산은 강산이고, 그림은 그림이다.’라는 데 가깝다. 이는 어깃장 놓는 말이 아니다. 산수와 산수화의 관계를 놓고 보자면 이 말은 모더니즘의 폭탄 선언이다. 모더니즘 이전의 회화는 신화요, 문학이요, 환영이었다. ‘그림은 그림이다.’라는 정의는 모더니즘의 권리장전이다. … 연암은 “강산은 그림이 아니요, 그림은 강산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최북은 “강산이 그림이요, 그림이 강산이다.”라고 말한다. 이 점에서 연암은 모더니스트이고, 최북은 아이디얼리스트다.
--- pp.21-22
송인명 초상화의 백미는, 보는 순간 모두가 눈치챘겠지만, 입이다. 입은 ‘구심(口心)’이라 했다. “세상에, 뻐드렁니까지 그린 초상화가 있다니…”하며 놀랄 분도 있을 것이다. 잘 익은 대춧빛 입술 사이로 툭 튀어나온 앞니 두 개는 유난히 새하얗게 그려져, 불경스러운 표현이지만, 코믹한 분위기마저 자아낸다. 게다가 벌어진 틈도 만만찮다. 구강 구조가 이런 사람은 시옷 발음에 애를 먹는다. 바람이 새나가기 때문이다. 한편 엉뚱한 상상도 한번 해볼 수 있겠다. 저 유순하고 어리숙해 보이는 입술 표정이 송인명의 처세에 무척이나 요긴한 장치가 되진 않았을까. 사화(士禍)의 핏자국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살벌한 당쟁의 나날을 돌이켜 볼 때, 사람 좋아 뵈는 이 인상은 저항하기 힘든 포용력으로 비쳤을지도 모른다
--- pp.66-67
한 해 건너 뛰어 1903년 고갱도 죽습니다. 타히티의 섬에서 고갱은 식자층에게 그리 환영받지 못한 사람이었답니다. 가톨릭 계통 학교의 여학생을 꾀어 탈선시켰다는 둥 해서 경찰은 그를 요시찰 인물로 점찍기도 했죠. 그는 그 곳 유지들에게 ‘고갱’ 대신 ‘코켕(Coquin)’으로 불렸다는데 그게 ‘말썽꾸러기’란 뜻이라더군요. 그렇지만 고갱은 논리가 반듯하기도 했거니와 남긴 글 또한 명문으로 인정받습니다. 자존심도 강해서 세잔이 자신의 감각을 훔쳐갔다고 욕했답니다. 물론 3년 뒤에 사망하게 되는 세잔도 고집과 오기 하나로 버틴 작가 아닙니까. 그는 친구들 앞에서 큰소리치기를 “이 세상에 화가는 단 한 명 밖에 없어. 그건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바로 나야.” 했답니다.
살아서 환영 받는 천재가 잘 없다지만 작품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고갱의 작품 중에 <눈 덮인 퐁타벤>이란 게 있습니다. 경매에 출품됐는데 무식한 경매인이 위 아래를 모르고 거꾸로 든 채 값을 불러나갔다는군요. 아무래도 이상하기에 그 작품 제목이 뭐냐고 누가 물었대요. 그랬더니 경매인이 ‘나이아가라 폭포’라고 답했답니다. 거꾸로 보니 폭포처럼 생겼던거죠. 잘도 끌어다 붙였지만, 값은 겨우 7프랑에 낙찰됐답니다. 고갱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주교가 그래도 죽은 사람 박대하기가 민망했던지 천주교 묘역에 그를 안장시킨 건 다행이었습니다. 주교가 교구에 보고한 내용이 남아있습니다. “최근에 특별한 일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원수요, 올바른 것과는 담을 쌓은 고갱이라는 한심한 인간이 급사했습니다.” 이런 걸 보고 미운 정 고운 정이라고 하나요. 어쨌거나 고갱의 아내도 사망한 화가의 작품이 돈 되는 줄은 알았는지 살아서는 눈코배기 안 보였다가 죽고나니 그림 찾으러 온 데 다 쏘다녔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 pp.171-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