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왜 백여덟 번을 절하나요?”
“나무부처님이 말씀하시더구나. 우리에게는 눈과 귀, 코, 혀, 몸과 마음 여섯 개가 있지?”
할머니는 선재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선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는 색깔, 소리, 향기, 맛, 느낌, 그리고 법칙이 있단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것을 좋다, 나쁘다, 좋지도 싫지도 않다는 세 가지 생각을 하거든. 선재도 생각하고 있지. 달이가 좋을 때도 있고 싫을 때 도 있지?”
“그럼요, 할머니. 숙제하고 있는데 자꾸 옆에 와서 놀자고 하면 싫기도 해요.”
“그래, 누구나 다 그렇단다. 좋은 것은 즐겁고, 싫은 것은 괴롭고, 좋지도 싫지도 않은 것은 그냥 내버려 두거든.”
“그래요. 달이가 저 혼자 놀고, 나는 숙제하거나 반찬 심부름한다고 바쁠 때에는 달이를 잊어버려요.”
“그렇단다. 눈과 귀, 코, 혀, 몸과 마음 이 여섯 가지와 세상의 색 깔과 소리, 향기, 맛, 감촉, 그리고 법칙, 이 여섯 가지가 부딪쳐서 그때마다 좋고, 나쁘고, 나쁘거나 좋지도 않고, 괴롭고, 즐겁고, 내버려 두는 느낌으로 서른여섯 가지 복잡한 생각이 생기지. 그것은 어제, 오늘, 내일 늘 생기는 것처럼 아주 오래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아주 먼 내일에도 있어서 백여덟 가지 괴로움이 된단다. 그래서 108배를 하면서 그게 다 사라지게 해 달라고 지극하게 정성을 하나로 모으는 거란다.”
“36 곱하기 3 해서 108번 절하는 거네요. 그런데 할머니, 그게 무슨 뜻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어요.”
“그건 말이다. 네가 직접 거듭 해 봐야 알 수 있단다. 너는 아직 어리니까 할머니 따라서 같이 108배를 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단다. 우리가 반찬을 만들 때 말이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면 소금을 더 넣거나 덜 넣겠지?”
“맞아요, 할머니. 저번에 콩잎을 담글 때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숙제를 빨리 해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있어서 그만 소금을 많이 넣었어요.”
“그러게 말이다. 소금을 많이 넣으면 짜고, 우리 콩잎을 사 간 사람이 싫어하는 거와 같단다. 콩잎을 소금과 양념을 섞어서 맛있게 담그면 사람들이 아주 좋아해. 정신을 집중해서 반찬을 만들어야지. 108배를 하는 것은 그와 같단다.”
- 3장 〈흰 고무신을 찾아서〉
그는 명상에 명상을 거듭하여 드디어 온갖 욕망을 떠난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한 단계에 이르렀고, 이어 그런 생각마저 떠난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찾아왔고, 기쁨과 즐거움마저 떠나는 단계가 왔다. 마침내 기쁘지도 즐겁지도 않으면서 한없이 맑고 향기로우면서도 어떤 것에도 장해를 받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그는 깊은 명상 끝에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이 바로 괴로움, 번뇌 때문임을 드디어 알았다.
‘사람들은 왜 서로 미워하고 싸우는가? 자기만 이익을 더 많이 가지고 행복하려 하기 때문이다. 행복하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기 때문이고 어리석음이 없어지면 싸움도 고통도 사라진다.’
그가 마음을 덮고 있었던 모든 때를 걷어 내어 고요하게 하니, 그의 속에서 한없이 깊고 향기로운 울림이 번져 오는 것을 보았다. 오랜 명상 속에서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지난날 모습이 다 보였고, 이들이 죽고 태어나는 모습이 낱낱이 보였으며, 마침내는 모든 괴로움과 고통이 사라지고 더러움이 말끔히 사라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만났던 지혜롭고 자비로운 이 깨달음은 본래 우주에 있는 것이며 누구나 그곳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눈을 떴다. 보리수 아래서 명상에 든 지 이레째 되는 날이었고 진리를 찾아 왕자의 자리를 버리고 나선 지 6년째인 기원전 589년 음력 12월 8일 새벽이었다.
- 6장 〈깨달음으로 가는 길〉
선재는 나무 불상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야기를 따라 긴 여행길을 떠나고 있었다. 한 번도 가 보지 못했던 갠지스 강물이 넘실거리며 흘러갔고, 히말라야 산자락의 눈이 녹아 흐르는 개울물이 지나갔다. 가족을 만나러 다시 찾아갔던 그에게 선재는 묻고 싶었다. 한 번도 그를 낳아 준 왕과, 키워 준 왕비, 그리고 야수다라 공주와 아들 라훌라를 보고 싶지는 않았는지. 그렇게 생각하니 문득 선재는 사진 속에 남아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아기 때의 선재를 안고 있는 두 사람은 사진 속에서만 늘 환하게 웃고 있었다.
선재의 마음을 아는 듯 나무 불상이 먼저 물었다.
“선재야, 너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보고 싶은 모양이구나.”
“그래요, 싯다르타. 세상에서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아요. 그렇지만…….”
“그래, 왜 나도 그렇지 않았겠느냐? 사람은 하늘에서 주어진 목숨이 다하면 다시 하늘로 돌아간단다. 네 부모는 모든 힘을 다 바쳐 너를 구했으니 그 공덕이 더할 나위 없이 크고 아름답단다. 저기 해마다 피는 감꽃 속에도 있고, 하얀 주먹밥 꽃 속에도 있고, 보름달에 도 있고, 그 마음들이 다 있단다.”
“그런 말씀 마세요. 손이라도 잡아 보고 싶고, 가만히 품에 한 번이라도 안겨 보고 싶어요.”
“그래, 그래. 네 반찬 만드는 솜씨가 할머니처럼 이르게 되면 그때 너도 알게 될 거다. 네 어머니와 아버지가 얼마나 기뻐하는지를 말이다. 나의 가족들이 하나 둘, 깨달음의 길에서 다 만나는 것처럼 말이다.”
- 8장 〈가족들과의 만남〉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