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일본 추밀원 의장 이또우 히로부미(伊藤博文) 공작이 1909년 10월 26일 합이빈(哈爾濱)에서 있었던 안중근 의사의 암살 기도에서 부상만을 입었다는 가정 아래에서 씌어진 이른바 '대체 역사(代替歷史)alternative history'이다. 이또우 히로부미는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의 주역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그의 정치적 식견과 능력은 근대 일본 역사의 전개 과정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그는 쪼우슈우번(長州藩) 출신의 무인이면서도, 야마가따 아리또모(山縣有朋) 공작을 중심으로 하는 쪼우슈우벌(長州閥)의 육군 강경파들과는 달리 매사에 있어서 온건하고 점진적인 접근을 주장한 정치가였다. '정한론(征韓論)'의 반대, '대일본 제국 헌법'의 제정, 입헌 제정당(入憲帝政黨)의 결성 등에서 그의 그러한 면모가 드러난다. 자연히 그는 일본 정계에 있어서 온건파의 구심점이었고, 그의 존재는 일본에 언제나 팽배했던 군국주의적 세력을 억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작품의 전제가 된 대체 역사에서는 그가 합이빈에서 저격당한 뒤에도 열여섯 해를 더 살았다. 그 사실은 자연히 다이쇼우(大正) 시대의 일본 정국과 동북아시아의 형세에 영향을 미쳤고, 이러한 형세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전세계 역사의 전개 과정에 영향을 미쳤다.
대체 역사는 과거에 있었던 어떤 중요한 사건의 결말이 현재의 역사와 다르게 났다는 가정을 하고 그뒤의 역사를 재구성하여 작품의 배경으로 삼는 기법으로, 주로 '과학소설science fiction'에서 쓰이고 있다. 미국의 남북 전쟁에서 남부가 이겼다는 사실이 역사에 미친 영향을 다룬 무어Ward Moore의 『희년을 선포하라Bring the Jubilee』(1953)가 고전으로 꼽힌다. 그 밖에 루즈벨트 F. D. Roosevelt가 암살되고 미국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여 독일과 일본에게 점령되었다는 가정 아래에서 1960년대의 미국 사회를 그린 딕Philip K. Dick의 『높은 성 속의 사람The Man in the High Castle』(1962), 엘리자베드 I세 Elizabeth I가 암살되고 서반아의 무적 함대 Armada가 영국을 정복하였다는 가정 아래에서 1960년대의 영국 사회를 그린 로버츠 Keith Roberts의 『파반춤 Pavane』(1966), 그리고 워싱턴 George Washington이 전사하고 미국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세계를 그린 해리슨 Harry Harrison의 『대서양 횡단 터널, 만세! A Transatlantic Tunnel, Hurrah!』(1972)가 이름이 있다.
--- 머리말 중에서
이 소설의 의미는, 자아와 그것을 정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탐구하려는 정신적 모험의 고귀함과, 오늘의 우리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풍자적 날카로움에서 우선 발견될 수 있다. 완벽한 소설적 형상력에, 원고지 3천장의 긴 작품을 단숨에 읽게 하는 고급하면서도 긴장된 재미가 어울어져 있는 이 장편 소설에는 전반적으로 스위프트적인 기지와 조지 오웰적인 암울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지만, 그러는 가운데 작가의 진지한 내성과 끝까지 역사에 대한 희망과 정직하게 살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 완강함이 커다란 미덕으로 우리를 감동케 한다.
--- p.
'그렇다. 저렇게 건강한 사람들이 언제나 무지와 빈곤에서 허덕일 리는 없다. 차별 받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조선인이 차별을 받는 한 조선인 누구도 안전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잘못한 것은 '나는 조선인이지만, 내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조선인을 태어났다는 것을 해결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다른 조선인들을 외면하고서 살아온 것이다. 조선인의 문제는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에. 모두의 문제는 모두의 힘으로 함께 풀어야 하는 것이다.'
--- p.
그는 마음속으로 그것에게 고갯짓을 한 다음,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동이 트고 있었지만, 별들은 아직 초롱초롱했다. 작은곰자리를 찾았다. 높다란 아파트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의 길을 가리켜줄 북극성이 거기 걸려 있다는 생각은 그의 마음을 든든하게 해주었다. 그는 가슴에 고인 슬픔을 깊은 곳으로 밀어넣었다. ‘길이 보이는 한, 나는 비참한 도망자가 아니다.’ 그는 자신에게 일렀다. ‘길이 보이는 한, 난 망명객이다. 내가 나일 수 있는 땅을 찾아가는 망명객이다.’ 배낭을 추스르고서, 그는 먼 대륙으로 가는 첫걸음을 떼어놓았다.
--- p. 328, 하권
과거의 어느것도 자신이 그 한 부분을 이룰 체계가 형성되어 가는 동안에는 확정되지 않은 것이다. 다만 가능성의 영역에 머무를 따름이다. 바로 그것이 '과거를 규정하는 것은 미래다'라는 명제가 뜻하는 것이다. 역사는 씌어지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고쳐 씌어지는 것이다.
--- p.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