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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들

어떤 날들

리뷰 총점9.1 리뷰 21건 | 판매지수 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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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9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552쪽 | 668g | 140*210*35mm
ISBN13 9788954637251
ISBN10 8954637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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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한 뒤로 엘슨은 퇴근 후 브런즈윅 호텔에 들러 간단히 한잔하는 습관이 생겼다. (...) 그는 이곳의 익명성이 좋고 삼층 바에서 혼자 마시는 술이 좋다. 창가에 앉아 길 건너편의 초현대식 사무실 건물들과 그 매끈한 유리 외벽을 바라보면서, 그 안에서는 잘 다린 정장을 입은 남녀들이 핸드백이나 서류가방을 챙기며 저녁식사나 술자리 계획을 세우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도 좋다. 그 사람들이 사무실을 떠나는 모습을 상상하고 그들이 문을 나선 후 차에 올라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즐겁다. 매일같이 이곳에서 도시가 점점 비워지는 모습, 점점 조용해지고 어두워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진다.
오늘밤, 거의 텅 비다시피 한 바에는 출장온 비즈니스맨 몇 명이 제각기 홀로 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창밖 도시는 조용하고, 이젠 가랑비도 내리고 있다. 이맘때 휴스턴에서는 좀 이례적인 차가운 겨울비다. 한 시간 내로 그는 로나 에스트라다를 만날 것이다. --- p.9

부엌 창밖으로 엘슨은 지평선을 밝히는 첫 새벽의 빛을 바라본다. 구름 낀 하늘은 어둡고 이웃에는 불 켜진 집들이 여기저기 몇 군데 보인다. 그는 앞에 놓인 긴 하루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 자신이 산 첫 집이자 유일한 집인 그곳의 부엌에 서 있는 그는 이제 더이상 이방인이 아니다. 그는 환영받지 못하는 손님이 아니다. 그가 이 집에 있는 것은 아내가 부탁했기 때문이다. 지금 그녀에게 그가 필요하기 때문이며, 그녀가 다시 한번 그에게 팔을 벌렸기 때문이다. --- p.432

일요일 밤마다 가족식사를 했고, 해마다 갤버스턴으로 여행을 갔으며, 날마다 티브이 앞에서 함께 뉴스를 보았다. 아이들은 그런 판에 박힌 일상 속에서 자라며 심지어 즐기기까지 했고 그 안에서 평온을 얻기도 했다. 그리고 누군가 주문을 깨기로 마음먹지만 않는다면, 누군가 그 모든 것이 가짜라는 단순한 사실을 지적하기로 마음먹지만 않는다면, 그런 삶이 가족 모두를 위해 괜찮을 것 같기도 했다. 그 무렵 리처드와 클로이는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아직 차를 운전하기에는 어린 나이였다. 그래서 한동안은 그런 소중한 시절이 있었다. 아이들이 어른스러운 대화 상대가 되어줄 만큼은 자랐으되 아직 엄마 손을 벗어나진 못할 만큼 어린 시기. 지나고 보니 즐거운 시절이었다. 애정과 후회를 동시에 느끼며 떠올리게 되는 시간이었다.
--- p.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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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들』은 길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자주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과거의 어떤 날들-영원히 서로를 사랑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거나 언제나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으리라 여겼던-을 응시하고 그곳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그러나 앤드루 포터는 과거의 그날들에 이미 파국의 징조가 새겨져 있었다고, 돌아갈 곳은 없다고 매정하게 말한다. 삶은 아주 연약해서 순식간에 망가져버리고, 우리는 그 사실을 아주 나중에 깨닫는다. 그때에는 망가진 부분을 고칠 수조차 없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소설을 다 읽고 났을 때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바로 그 사실이 우리가 그 자리에 멈춰 서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며 그 망가진 삶을 끌어안고 계속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는, 단순하고도 심오한 진실이다.

손보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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