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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갈매나무 청소년 문학-02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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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9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228쪽 | 414g | 152*210*16mm
ISBN13 9788993635621
ISBN10 8993635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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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야나 프라이 (Jana Frey)
1969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태어났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미국, 뉴질랜드에서 문학과 역사, 예술을 공부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작품을 쓰고 출간했으며, 특히 마약, 폭력, 섭식 장애 등 10대 청소년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관심이 많다. 《아래쪽으로 비상Hohenflug abwarts》으로 2004년 독일청소년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현재 가족들과 함께 독일 남부에서 살고 있다.
역자 : 장혜경
연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독일 학술교류처 장학생으로 독일 하노버에서 공부했다. 《세상이 던지는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 《내가 너라면 날 사랑하겠어》, 《로베르트 너 어디 있었니?》, 《숫자로 보는 세상의 비밀》, 《독일인의 사랑》, 《변신》 등 다수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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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미가 들려주는 이야기: 나의 늙은 개
작년 여름 레안더와 나는 둘 다 첫사랑에 빠졌다. 엄마가 콘라트 아저씨와 사귀기 시작한 바로 그 주였다. 그 여름 레안더와 나는 같이 수영장에 다녔다. 내가 동성애자가 아닐까 무척 걱정하던 무렵이었다. 레안더가 너무 좋아서 레안더 없이는 살 수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레안더와 같이 있으면 너무 좋았다. 우리 둘이서 안 해 본 짓이 없었다. 여장을 하고 얼굴에 화장품을 덕지덕지 바른 후 엄마의 하이힐을 신고 온 집 안을 뛰어다닌 적도 있었다. 모험 소설에서 읽은 대로 횃불을 켜 놓고 칼로 아래팔을 살짝 긁은 후 의형제를 맺겠다고 무슨 의식을 치르기도 했다. 어느 어둡고 추운 겨울밤에 오줌으로 눈밭에다 각자의 이름을 쓰기도 했고, 밤에 손전등을 들고 서로의 그 부위를 자로 재서 누가 더 큰지 비교하기도 했다. 우리는 몇 년 동안 한시도 떨어진 적이 없는 친구 사이였다. 물론 앞서 말했듯 내가 레안더를 너무 좋아해서 살짝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작년 여름 어느 날 오후, 수영장에서 그런 걱정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날 내가, 아니 우리가 카를로타를 만났기 때문이다.
“레안더, 세상이 노랗게 보여!”
나는 레안더의 귀에 이렇게 속삭이면서 그의 팔을 꼬집었다. 어찌나 세게 꼬집었는지 그가 짜증을 냈다.
“왜 그래? 미쳤냐?”
레안더가 벌컥 화를 내며 자기 팔을 비볐다. 나는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화해를 청하듯 레안더의 옆구리를 툭 치면서 슬쩍 물 쪽을 가리켰다. 어린이용 수영장 바로 옆에 빨간 머리 소녀가 분홍색 비키니 수영복에 얇은 오렌지색 티셔츠를 걸치고 앉아 고개를 든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등까지 드리워진 부드러운 긴 머리카락이 구겨진 숄처럼 주근깨투성이 어깨를 스치며 이리저리 날렸다. 작은 꼬마 둘이서 그녀의 발치에서 소리를 지르며 철퍼덕거렸고, 빨간 머리 소녀는 물속에서 시끄럽게 비명을 지르며 놀고 있는 그 아이들을 미소를 지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레안더를 쳐다보았고 레안더도 나를 보았다.
“난 빨간 머리 여잔 싫어.”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던 레안더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 앞에서 뭐라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온몸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머리가 어지러웠다.
--- pp.10~12
레안더가 들려주는 이야기: 우정에 대하여
새미가 카를로타에게 첫눈에 반했듯 카를로타는 내게 반했다. 나를 처음 본 순간 마법에 걸린 듯 끌렸다고 했다. 그래서 더욱 이번 만큼은 새미가 원하는 대로 해 줄 수가 없었다. 결국 카를로타와 나는 커플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새미를 귀찮은 파리처럼 쫓아 버리고 싶었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나는 여전히 새미를 좋아했다. 그러나 새미는 더 이상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었던 우정의 끈에 내가 먼저 칼을 댔다는 사실을 그 애는 용서하지 않았다. 칼을 댔지만 끊어 버린 것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정작 끊어 버린 쪽은 새미였다. 나는 어떻게든 새미와 다시 잘해 보려고 굉장히 노력했지만 나를 바라보는 새미의 얼굴은 둘도 없는 원수라도 보는 것 같았다. 시간이 가면서 그 애는 점점 더 섬뜩해졌다.
그러던 차에 찰리가 죽었다.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 착한 개, 늙은 개 찰리. 찰리는 최고의 개였다. 소식을 전해 준 사람은 카를로타였다. 카를로타가 가끔씩 봐 주었던 소피아라는 아이가 알려줬다고 했다. 소피아에겐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아누쉬카라는 언니가 있는데 찰리가 차에 치이는 현장에 그 애도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카를로타는 찰리가 죽었을 때 새미의 반응이 정말 이상했다고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소피아네 언니가 그랬는데 새미가 그냥 어깨만 으쓱하더니 집으로 들어가 버렸대.”
카를로타가 말했다.
“거짓말 아냐?”
나는 믿을 수가 없어 다시 물었다.
“새미가 찰리를 얼마나 좋아했는데.”
그날 카를로타와 그런 대화를 나누고 나서 나는 무척 기분이 언짢았다. 그래서 새 학기가 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새미와 다시 잘 지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여름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갔을 때 새미는 혼자가 아니었다. 얼굴에 맴돌던 침통한 표정도 사라졌다. 친구가 생겼기 때문이다. 바로 라파엘이었다.
--- p.66~67
새미가 들려주는 이야기: 까마귀, 프란츠, 여동생
“벗어, 프란츠. 몸수색이야.”
“안 돼.”
프란츠가 애달픈 목소리로 사정했다.
“돼. 오늘은 널 구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
알료샤가 이렇게 말하며 프란츠의 재킷을 벗겼다.
“이제부터는 네 손으로 벗어.”
그가 명령했다.
“내 손 더럽히기 싫어.”
프란츠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슬로 모션처럼 천천히 옷을 벗었다. 이제 팬티만 남았다.
“그것도 마저 벗어야지.”
크리스티안이 환자를 보는 의사처럼 다정하게 말했다.
“싫어.”
프란츠가 절망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벗어.”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그 말이 버럭 튀어나왔다. 내 목소리에 나도 깜짝 놀랐다. 결국 겁에 질린 프란츠가 팬티를 벗었다. 어찌나 몸을 떨었는지 저러다 균형을 잃고 쓰러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프란츠는 비틀거리면서도 용케 서 있었다.
“그 냄새나는 팬티 입에 넣고 씹어.”
알료샤가 씩 웃으며 말했다. (...)
“내일은 1500유로야. 아침 일찍 주차장에서 주는 거야. 안 그러면 팬티를 모조리 다 씹어 먹어야 할 거야.”
라파엘이 프란츠의 창백한 뺨을 꼬집었다.
“내일까지. 알았지? 러시아 돼지 새끼.”
우리는 기분 좋게 복도를 걸어 계단 앞에서 헤어졌다. 나는 라파엘과 함께 히죽거리면서 교실로 들어갔다. 그날 프란츠는 교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내내 레안더 생각을 했다. 수업이 끝나고 혼자서 집으로 가다가 나란히 시내 방향으로 걸어가는 레안더와 크누트를 보았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두 사람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가을비에 온몸이 홀딱 젖을 때까지. 레안더와 크누트의 뒤를 쫓아가 그들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나도 같이 가면 안 되냐고, 같이 놀면 안 되냐고 묻고 싶었다.
--- pp.120~122
새미의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 새 출발
새미와 나는 사이가 좋았다. 내가 새미에게 많이 의지했다. 새미는 제 아빠를 정말 많이 닮았다. 외모도 그렇고 성격도 그렇다. 새미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다 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콘라트가 나타나면서 갑자기 모든 것이 바뀌었다. 나는 지금의 남편을 정말 많이 사랑한다. 그를 위해 내 인생도 완전히 바꿨다.
아마 새미한테는 좀 성급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필이면 마침 새미가 레안더하고 사이가 좋지 않을 때였다.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솔직히 그때는 아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코앞에 닥친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었던 탓이다. 집도 구해야 했고 엄마까지 편찮으셨다. 게다가 이사하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가 돌아가셨고……. 콘라트의 전 부인도 계속 문제였고 딸들도 걸핏하면 우리 집에 와서 나를 괴롭혔다. 그런 상황에서 덜컥 임신까지 하게 되었다.
결국 새미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혼자 자기 방에 틀어박혀 대체 뭘 하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걸핏하면 화를 냈고 툴툴거렸다. 좀 더 관심을 기울였어야 했는데, 미안하게도 나는 너무 빨리 대화를 포기해 버렸다.
그랬다. 새미가 변했다. 한번은 고민 끝에 레안더한테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다. 아기 때문에 꼼짝도 못하고 가만히 누워 있어야 할 때였다. 레안더는 여자친구 카를로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새미가 그것 때문에 고민하는 것일까? 몇 번이나 새미와 이야기를 해 보려고 했지만 새미가 좀처럼 응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부턴가 새미가 라파엘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특별히 마음에 드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그 아이 아빠가 판사인 데다 예전부터 안면이 있는 사이라 걱정하지는 않았다. 라파엘 조벨이 그런 아이인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그 친구들도, 그 애들이 어울려 다니면서 무슨 짓을 하는지도,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 p.126~128
새미가 들려주는 이야기: 기나긴 길
몽롱한 정신으로 레안더를 쳐다보았다. 레안더는 이제 아일린과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 애가 내 친구였던 적이 언제였나? 수백 년은 흐른 것 같았다. 학교가 끝나고 나는 라파엘과 크리스티안을 억지로 끌고 가서 옛날 체육관 옆 오솔길에 몸을 숨겼다. 그때 내 기분이 어땠는지는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온 세상이 텅 빈 기분이었다. 화가 나고 외롭고 권력에 굶주린 기분, 음탕하고 절망적이며 술에 취한 기분. 잠시 후 5학년 여자아이 하나가 나타났다. 나는 잽싸게 달려가 거칠게 그녀의 팔을 잡았다.
“이리 와. 이리 오라니까!”
나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윽박질렀다. 팽팽히 긴장해 있는 내 몸을 음탕한 욕망이 훑고 지나갔다.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흠칫 놀라 돌아보니 레안더였다. 레안더가 여긴 왜 왔지? 그냥 지나가는 길이었나? 나는 여자아이를 더 세게 내 쪽으로 잡아당겼다. 아니, 레안더는 그냥 지나가는 길이 아니었다. 그의 뒤로 크누트가 나타났다. 레안더와 크누트, 라우라, 아일린, 펠릭스, 그리고 프란츠까지. 나는 여자아이를 놨다. 내가 헛것을 본 걸까? 내가 드디어 미쳤나? 라우라가 펠릭스의 휠체어 옆에 딱 붙어 서 있다니. 그것도 모자라 허리를 굽히더니 자기 이마를 펠릭스의 이마에 살짝 갖다 댔다. 숨이 턱 막혔다.
하지만 더 이상 생각할 수가 없었다. 크누트가 내 멱살을 잡더니 휙 내동댕이쳤기 때문이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나쁜 놈.”
크누트가 씩씩거리며 나를 때리고 또 때렸다. 아주 서서히 눈앞이 까매졌다. 처음에는 밝은 회색이었다가 어두운 회색이 되고, 잉크처럼 까만 어둠이 눈앞을 가렸다. 입에서는 비릿하게 피 맛이 났다. 다시 얼굴로 환히 빛이 비쳤다. 크누트가 내 위에 올라타 주먹으로 나를 계속 팼다. 나는 바닥에 너부러졌고 아무 감각도 느낄 수 없었다. 레안더와 같이 수영장에 가서 카를로타를 만났던 날이 생각났다.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나는 얼마나 카를로타를 좋아했던지, 얼마나 레안더를 좋아했던지……. 갑자기 그때의 혼란스러운 감정이 떠올라 기분이 좋아졌다.
--- pp.219~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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