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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명 베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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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9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43쪽 | 448g | 153*215*17mm
ISBN13 9791185871271
ISBN10 1185871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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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엘리자베스 웨인 (Elizabeth Wein)
1964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교육 전문가였던 아버지의 잦은 해외 발령으로, 어려서부터 외국 생활을 많이 했다. 청소년 시절에 미국으로 돌아온 후 예일 대학교에서 문학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민속학을 공부했다.
2003년에 《겨울왕자》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그 후 《사자들의 동맹》《태양새》《사자 사냥꾼》《사라진 왕국》《화염속의 장미》 등의 작품을 내 놓으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암호명 베리티》는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그의 작품으로, 마이클 프린츠 상을 비롯해서 에드거 상, 보스턴 글러브 혼북 상, 골든 카이트 상, 영국문학협회 우수상 외 많은 상을 받았다.
역자 : 정록엽
연세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에서 삭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교와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나무에 돈이 열린다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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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랫동안 잠을 자지 않을 수도 있고, 굶을 수도 있고, 똑바로 서 있을 수도 있다. 지금처럼 속옷 차림만 아니라면. 속옷만 입고 있으려니 기분이 정말 더러웠다. 무엇보다 창피했다! 문득 내 실크 스커트와 양모 스웨터가 주는 온기와 품위가 애국심이나 고결함보다 훨씬 더 가치가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린덴 대위는 내 옷을 하나씩 나에게 되팔았다. 물론, 목도리와 스타킹은 팔지 않았다. 내가 목을 매어 자살이라도 시도할까 봐 두려운 모양이었다. (사실 자살 시도를 하긴 했다.) 스웨터를 사기 위해 네 개의 무선 암호를 알려 주었다. 암호와 비밀번호, 그리고 라디오 주파수까지.
끔찍하기 짝이 없는 사흘을 보내고 감방으로 돌아왔을 때, 약속대로 스웨터가 바닥에 놓여 있었다. 나는 스웨터를 숄처럼 머리 위에 감았다. 그것만으로도 한결 편안해졌다. 두 번 다시 이 옷을 벗지 않으리라. 스커트와 블라우스는 훨씬 싼 가격으로 샀다. 신발은 한 짝에 암호 하나씩을 알려 주고 돌려받았다.
총 열한 개의 암호 세트가 있었다. 나는 마지막 암호로 슬립을 살 계획이었다. 그는 일부러 겉옷부터 사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옷을 돌려받을 때마다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시 옷을 벗는 수모를 겪었다. 오로지 린덴 대위만이 내가 옷을 벗는 모습을 보지 않았다. 내 몸은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마음 한켠에선 대위가 자신이 만들어 낸 작품을 똑똑히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중에서도 팔에 난 상처를…….
--- p.9
심하게 매를 맞은 프랑스 소녀와 나는 지하 저장고를 지나 안마당으로 끌려 나갔다. 예전에 빨래터로 사용하던 곳인 것 같았다. 소녀는 지쳐 보였지만 자못 당당했다. 소녀의 아름다운 발에 난 상처는 끔찍하기 짝이 없었고, 하얀 얼굴은 온통 멍이 들어 퉁퉁 부어 있었다.
소녀는 나를 외면했다. 우리는 손목이 함께 묶였다. 안마당에 단두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베를린에 잠입한 소녀 스파이들은 보통 이런 식으로 처형을 당했다. 우리는 그들이 여러 가지 준비를 하는 동안 가만히 기다려야 했다. 그들은 골목길로 나가는 문을 열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충격 혹은 즐거움을 선사하려 했다.
그리고 단두대의 날과 밧줄을 제자리에 고정했다. 바로 얼마 전에 단두대를 사용했는지 날에는 아직도 핏자국이 선명했다. 그들은 이 프랑스 소녀를 먼저 죽이고, 내가 그 모습을 똑바로 쳐다보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나도 죽일 것이다. 소녀도 이것을 아는 듯했다. 우리의 손등이 맞닿았는데도 서로를 쳐다보거나 말을 걸지 않았다. 나는 소녀에게 내 이름을 말해 주었다. 소녀는 대답이 없었다.
그들은 우리를 함께 묶었던 줄을 잘랐다. 그리고 소녀를 데리고 갔다. 나는 소녀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들이 단두대 위에 무릎 꿇리기 직전에 소녀가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내 이름은 메리야.”
--- pp.198~199
세 명의 포로가 한 줄로 섰다. 지휘관이 명령을 했고, 줄리를 붙잡고 있던 군인이 젊은 남자의 다리 사이의 아랫도리에 총알 한 방 싸 불구로 만들었다. 그 남자는 몸을 쪼그린 채 넘어졌고, 그들은 그를 다시 쏘았다. 총알 한 방으로 한쪽 팔꿈치를 부수고, 또 한 방을 쏴 다른 쪽 팔꿈치도 부수어 버렸다. 그리고 아직도 비명을 지르는 남자를 끌고 가 트럭에 태운 후 다른 남자에게로 걸어갔다. 그도 아랫도리를 쏴 순식간에 불구로 만들었다.
미트레일릿과 나는 어두운 덤불 속에 숨은 채 무릎을 꿇고 두려움에 질려 쌕쌕거렸다. 줄리는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줄리의 얼굴이 손전등 불빛 속에서 종잇장처럼 하얗게 빛났다. 줄리는 앞을 초점 없이 응시했다. 다음 차례는 줄리였다. 줄리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우리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독일군은 아직도 두 번째 희생자를 도륙하고 있었다. 군인들은 그의 팔꿈치를 쐈고, 그리고 같은 부분을 다시 쏴서 산산이 부수어 버렸다.
그때 나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나도 어쩔 수 없었다. 큰 소리로 울면서 어린아이처럼 고함을 질렀다. 줄리의 얼굴에서 갑자기 태양처럼 빛이 났다. 기쁨과 안도, 희망이 한꺼번에 얼굴에 어렸다. 줄리는 단번에 다시 사랑스럽게 변했다. 아름다웠다. 줄리가 내 목소리를 들은 것이다. 내가 총소리에 두려워 떨며 우는 것을 알아차렸다. 줄리는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나를 오르메의 가장 유명한 탈주자로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두 번째 희생자에게 다시 한 번 더 총을 쏘아서 다른 쪽 팔도 부수었다. 결국 그는 의식을 잃었다. 군인들은 그를 트럭으로 질질 끌고 갔다. 다음은 줄리 차례였다. 갑자기 줄 리가 신나게 웃으면서 고함을 질렀다. 목소리는 카랑카랑했지만 절망감이 잔뜩 묻어 있었다.
“나에게 작별의 입맞춤을 해 주게, 하디! 키스해 줘, 빨리!”
줄리는 이렇게 말하고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주기 위해서이리라. 나는 줄리의 신호를 알아차렸다. 그리고 총을 쏘았다!
--- p.289~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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