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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유주의자이다

나는 자유주의자이다

: 정치망명자 김덕홍의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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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10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99쪽 | 592g | 153*225*20mm
ISBN13 9788957751664
ISBN10 8957751661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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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김덕홍
1939년 1월 22일 평안북도 의주군 의주읍 출생
1958.9~1961.8. 조선인민경비대 복무
1961.9~1965.8.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정치경제학과 졸업
1965.9~1981.9. 김일성종합대학 교무부 지도원 및 책임지도교원
1981.10~1994.3. 노동당중앙위원회 주체사상연구소 소장 서기(당중앙위원회 부과장급)
1994.4~1997.2. 노동당중앙위원회 자료연구실 부실장
1997년 2월 12일, 대한민국 정치망명
1998~2003.8. 대한민국 국가정보원 산하 통일정책연구소 상임고문, 사단법인 탈북자동지회 회장
2014. 9. 국가안보전략연구소 비상근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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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아내는 내가 평양을 떠나던 1997년 1월 25일 아침에도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당시 우리의 정치망명 계획이 그해 4월로 예정되어 있었기에 다음의 만남을 염두에 두고 아내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평양을 떠나왔다.
그리고 그날 북한을 떠난 나는 우리의 정치망명이 불시로 앞당겨지는 바람에 다시는 아내를 만날 수 없게 되었다.
내 아내 박봉실은 우리의 정치망명이 공포되던 날 자결을 택했다. 순박하고 단순하지만 속대가 여간 아니게 굳은 내 아내는 그것으로써 곧 엄습할 어마어마한 고통과 굴욕과 두려움에 항거하고자 했을 것이며,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내가 처절하게 감내해야 할 가장 큰 빚과 살을 저미는 고통을 다소나마 덜어주려 했던 건 아닐까.
나는 꼭 그렇게 믿고 싶고 또 믿고 있다.
그래서 아내는 세월이 갈수록 나를 더더욱 아프게 한다. --- p.40

“인민무력부를 강동에 내보내면 그들이 거기서 무슨 짓을 하는지 알 수 없다. 때문에 ‘당중앙’은 항상 인민무력부를 옆에 꼭 끼고 있어야 한다.” (‘당중앙’이란 말은 김일성이 김정일에게 붙여준 수령후계자 호칭이었다.)
김일성의 훈계를 받은 김정일은 즉시 지방소개 예정 통고로 초상집 분위기에 휩싸여 있던 인민무력부를 달래기 위해 ‘평양시 안에 보다 웅대한 인민무력부 청사를 건설’이라는 방침을 하달하고 전국이 이를 적극 지원하도록 조치했다.
아울러 김일성의 훈계를 깊이 새겨들은 김정일은 1976년 5월에 임명된 인민무력부장 오진우를 그가 죽는 날까지 거의 19년간 절대로 곁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 p.75

홍명희선생에게는 홍귀원이라는 딸이 있었는데 그는 1956년경에 김일성의 처 김성애의 개인비서로 발탁되었다. 그런데 홍귀원은 김성애가 김일성의 막내아들을 임신하고 있는 기간에 김일성과 관계해서 그의 아이를 임신을 하게 되었다. 이 일로 인해 홍귀원은 과거에는 뼈대 있는 충청양반가문의 후손이었고, 당시는 북한사회학계에서 가장 존경받았던 아버지 홍명희의 얼굴에 똥칠을 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임신해 있은 전 기간 심한 괴로움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아버지를 볼 낯이 없다며 출산하는 날까지 한 번도 집에 오지 않았던 홍귀원은 결국 김일성의 자식을 낳던 도중에 아이와 함께 사망했다.
홍기문은 연신 손등으로 눈가의 물기를 닦으면서 그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고는 다음과 같은 한탄의 말을 내뱉었다.
“그 애도 불쌍하고……, 슬픔이 크면 빨리 늙는다고 했던가? 아버지도 그 일을 겪은 뒤부터는 폭삭 늙더라.” --- p.90

“1950년 6월 25일 조국해방전쟁을 개시할 당시 나의 전략적 의도와 구상은, 일격에 서울을 해방한 다음 일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이 개입하기 전에 신속하게 진격해서 남조선전역을 해방하고 이후 해안선방어에 전력(戰力)을 총 집중해서 미군주력의 상륙만 저지시킨다면 남조선해방과 조국통일 위업을 완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서울해방 전투지휘를, 연초부터 그 작전을 직접 준비한 최용건에게 맡겼다.
그런데 최용건은 전쟁개시 4일째 되는 날에 서울을 해방시키고서도 그 뒤 3일 동안이나 거기에 눌러앉아서 매일 저녁에 술을 마시고 아침이면 해장술까지 해가며 잠을 자고 휴식을 했다. 내가 평양에서 하루에도 몇 차례나 무전을 날리고 연락관을 띄우면서 ‘빨리 남진(南進)하라!’고 애타게 독촉했지만 그는 끝내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최용건은 3일이나 지난 뒤에야 남진을 시작했는데, 그때는 이미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 선견대가 오산까지 들어온 뒤였다. --- p.190

“조국해방전쟁이 막바지에 들어서던 1953년 5월경, 이제는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할 능력도 밑천도 없고 해서 시급히 휴전협정을 체결해야 했는데, 미국 놈들이 계속 시간을 끌면서 정전담판장에 나오지 않았다. 이 때문에 우리는 회의를 열고 그 문제를 토론하다가 ‘적들에게 크게 한방을 먹여야 회담장에 나올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내가 모택동과 주덕 앞으로 ‘전쟁을 종결짓기 위해 카츄샤 포 20문이 필요하니 지원해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쓰고 거기에 나(김일성)와 최용건이 공동서명을 한 뒤, 최용건이 그것을 들고 중국을 극비 방문했다.
중국은 7월 초순에야 우리가 요청한 20문 중 10문만 내보내줬다. 우리는 그것들을 야밤에만 은밀하게 이동시켜서 7월 26일 새벽까지 개성부근 ○○○야산(지명은 기억이 안 남)에 가져다놨다. 그리고 7월 27일 새벽에 그 카츄샤 포 10문으로 있는 포탄을 몽땅 남쪽에 쏴버렸다.
그러자 미국 놈들이 그날로 담판장에 나와서 ‘정전협정 조인서’에 도장을 찍었다.
나는 그때 카츄샤 포 10문의 위력을 깊이 실감했다. 그래서 60년대에 군수공업을 일으켜 세울 때, 카츄샤 포 생산기지부터 갖추도록 조치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 p.204

1996년 8월, 중국출장을 마치고 평양으로 들어간 나는 그 독약을 몸에 품고 황장엽비서를 찾아갔다. 그때 그 만남에서 사회주의철학자로서의 두뇌마저도 김일성족속에게 바쳐가며 헌신한 황장엽비서에게 다른 나라도 아닌 대한민국에로의 정치망명을 권고해야 했던 내 마음은 그 중압감으로 인해 참으로 천근만근 무거웠고 한편 너무나 슬펐다.
수개월 이상 지속되고 있는 김정일의 싸늘하고 고압적인 압력에 시달릴 대로 시달리고 고민할 대로 고민한 황장엽비서의 얼굴은 몰라볼 정도로 수척해져 있었다. 그날 나는 황장엽비서를 만나자마자 그의 눈을 엄숙하게 직시하며 “오늘 이 시각부터 비서동지를 형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라고 무겁게 서두를 뗀 뒤, 내 마음도 굳게굳게 다듬질하면서 천천히 말을 이었다. --- p.291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대한민국 정치망명 후에 기록한 일기들을 들추다가 1999년 11월 8일 황장엽형님이 사단법인 탈북자동지회 임원들 앞에서 한 다음의 말씀을 찾아냈다.
“만일 나와 김덕홍이 대한민국에 정치망명하지 않았더라면 훗날 사람들이 ‘북한 노동당중앙위원회에는 악당들만 있었다.’고 말을 할 거야. 그러나 우리가 여기 왔기 때문에, 우리의 망명을 지지해줬던 노동당 내의 동지들이 그런 말은 듣지 않게 되었어. 우리는 이것만으로도 족해.”
형님은 우리의 정치망명 의의를 이 한마디에 여백 없이 진솔하게 담았다. 되새길수록 김일성족속과 북한체제에 관해서만은 언제나 급한 마음으로 야박하게만 살아온 나를 위로하고 다독여주는 말씀이 아닐 수 없다. --- p.306

황장엽형님이 1997년 7월에 “김정일이 나를 그냥 놔둘 것 같지 않다. 그러니 독약을 구해 달라. 여차하면 유서를 써놓고 자살하겠다.”고 내게 심중을 밝힌 때로부터 그의 정치망명을 준비하는 전 과정에서의 나와 동지들의 확고한 결심은 “황장엽비서의 정치망명을 반드시 실현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길만이 주체사상으로 설계된 김일성공산왕조체제라는 해적선을 가장 빨리 폐선(廢船)시키는 지름길이라고 확신했었다. --- p.309

그런 마음으로 되돌아보면 황장엽형님에게는, 76세에 노동당중앙위원회 사상 및 외교 담당비서라는 현직을 버리고 대한민국에 정치망명한 것 자체가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김일성족속반대투쟁이었고 사상전향이였다. 그리고 끝까지 김정일을 증오하고 반대한 것만으로도 형님은 북한 최고위층에서 망명한 노정객으로서의 소명을 다 하셨다. 그 외의 것은 다 부차적인 것이었다. 이런 명백한 이치를 형님이 정치망명할 당시의 나이 대에 들어서서야 알게 되었으니…….
2014년 9월 대한민국 정부 관계기관으로부터 명예회복을 통지받던 날 새벽에 나는 꿈속에서 황장엽형님을 만났다. 그리고 나는 분명 “너는 그 급한 성격이 문제야. 성질을 죽여야 병도 나을 수 있어……” 하는 형님 특유의 나직한 목소리를 들었다.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창문을 열고 밝아오는 창천을 향해서 마음속으로 힘껏 소리쳤다.
“형님, 진심으로 미안하고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는 대한민국에 온 이래 처음으로 황장엽형님의 빈자리를 무겁게 느끼며 오열했다. --- p.338

“내가 신청한 여권발급문제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당시 나는 여권을 신청한 지 반년 이상이나 지났지만 그 결과에 대해 아무런 답변도 듣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 그런데 내 물음을 들은 그는 다짜고짜 귀찮다는 표정으로 돌변하면서 호통을 쳤다.
“그건 알아서 뭐해! 보류야 보류!”
나는, 나보다도 한참이나 어린 사람이 권력을 등에 업고 반말을 탕탕 해대는 것을 보고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호되게 꾸짖었다.
“당신은 아무 사람에게나 범죄자 대하듯이 반말을 하는가? 당신의 현 직책이 어머니 배 속에서 타고난 건 줄 아는가?”
그의 작태를 통해서 나는,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고 자처하는 참여정부 권력피조물들의 도덕적 자질을 거듭 실감하면서 암담한 심정을 금할 수가 없었다. --- p.353

나는 2003년 7월부터 거의 5년간이나 미국방문 여권을 발급받기 위해 대한민국 대통령 이하 국회, 국가정보원, 경찰청, 외교통상부, 국가인권위원회, 법조계 인사들에게 수백 통의 서신과 진정서를 보냈었다. 그 서신과 진정서들에서 나는, 수년째 여권발급요구를 묵살하고 있는 정부 관계기관의 불법, 비인도적 행위들을 바로 잡아줄 것을 간곡히 청원했었다. 그러나 국민 개개인의 인권과 권익을 보장하기 위해 일한다는 그들 대다수는 답변조차 하지 않았다.
그나마 나의 진정에 답변을 보내준 대상도 몇 군데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참여정부의 청와대 비서실이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참 가관이었다.
“민원내용을 검토하여 대통령비서실 관련이 아닌 경우, 해당부처에 이첩하여 처리하게 됩니다.”
기가 막혔다. 참여정부의 해당부처가 관련문제를 해결해줬더라면 내가 왜 대통령에게까지 진정서를 보냈겠는가.
--- p.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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