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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진주, 카톡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진주, 카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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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10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153*224*30mm
ISBN13 9788959594344
ISBN10 8959594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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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가을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낙엽이 지면 설움이 더해요.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

남루한 박수 몇몇에도 연우 가슴은 서늘해져 온다.
3년 전, 꼭 이맘때 즈음 명함 크기만 한 메모지에 적혀 나직한 무대로 올려왔던 신청곡을 몇 년 만에 다시 불러보았다. 채령이가 내 곁을 떠난 게 어느덧 두 해째가 된다. 내 노래를 들을 때면 마른 가슴이 젖고야 말았다던 채령이는 꼭 3년 전 이맘때쯤 그렇게 내 앞에 나타났었다. 내 노래를 들을 때면 감당키 어려운 격정에 쌓였다가 곧 평온으로 회복되고 마는 것 때문에 나를 사랑했다던 채령이….
그랬던 채령인 이미 두 해 전, 그런 건 한낱 사치스런 유희적 생각이었다며 이맘때 가을 즈음에 나를 박차고 떠나갔다.

당신의 노랠 듣고 있다가… 그만 블라우스에 눈물이 떨어지고 말았어요. 이젠 아득해져 버린 노래 ‘존재의 이유’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연우가 자신의 타임, 마지막 곡 준비를 위해 카포를 옮기려 할 때 웨이트리스가 보면대 위에 접어 올려준 메모지 속살이 설핏 보였다. 얼른 고개를 돌려 눈물을 떨어트렸다는 사람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언제나 안락함을 줘왔던 사각무늬 카펫 문양들이 갑자기 연우 눈을 어지럽혔다. 어쩌면 지금 채령이 어느 구석진 쪽으로 몸을 숨긴 채 자신의 노랠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그런 생각을 머릿속에서 털어냈다.
‘그럴 리가 없어. 채령인 지금 이곳에 없어. 미국으로 떠난 지 벌써 2년이 넘었어. 그리고 채령인 이제 내 노래 따윈 들으려 하지도 않아.’
‘또 어느 날부터인가 채령인 너무 약삭빠른 아주 낯선 여자가 되어버렸어,’
벌써 며칠째 공복에 마셔 대었던 소주잔 속에 넘치게 채워진 비릿한 웃음들이 허기진 속을 뒤흔들어대는 것 같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런 어지럼증을 이겨내지 못하면… 그래서 기타를 껴안을 힘마저 잃고… 그렇게 되면 무대에 주저앉아버릴지 모르는데….’

결국엔 떨어지고 말, 기운 다한 떡갈나무 이파리들이 가을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는 창가에 유난히도 하얀 여자가 앉아 있었다. 하얀 여자는 그렇게 한참 동안 연우를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초점을 놓아버린 연우의 흐릿한 시야 속엔 파리하리만큼 하얀 여자의 퀭한 가을빛 눈물이 보였다. 연우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엄지 검지에 쥔 피크를 날카로운 여섯 강선 위에 올렸다. 모든 게 울렁대는 무의식을 틈탄 C장조 아르페지오가 카페 실내로 흘러내렸다.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너를 바라볼 수 있다면
물안개 피는 강가에 서서 작은 미소로 너를 부르리
하루를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그 길을 택하고 싶다
세상이 우리를 힘들게 하여도 우리 둘~은 변하지 않아

너를 사랑하기에 저 하늘 끝에 마지막 남은 진실 하나로
오래 두어도 진정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남게 해주오

내가 아플 때보다 네가 아파할 때가 내 가슴~을 철들게 했고
너의 사랑 앞에 나는 옷을 벗었다 거짓의 옷을 벗어버렸다.

너를 사랑하기에 저~ 하늘 끝에 마지막 남은 진실 하나로
오래 두~어도 진정 변하지 않은 사랑으~로 남게 해주오
사랑으~로 남게 해~ 주~오.

연우는 분명히 보았다. 하얀 여자가 창가에 턱을 괴고 울고 있던 모습을…. 그러나 잠시 후 그 여자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안락의자도, 카펫도, 스탠드 마이크도 더는 볼 수 없었다.

철제 침대 위에 뉘어진 연우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 눈 밑을 타고 내린 눈물만큼이나 맑은 수액이 노란 물과 같이 연우 팔뚝 혈관 속을 타들어가고 있었다. 병실 모퉁이 가습기에서 품어져 나오는 하얀 물안개 무리들이 창백한 연우 얼굴 위로 내리고 있었다.
“이연우 씨, 눈떠 보세요.”
“…….”
“환자 보호자는 어디 가셨나?”
무심하게 생긴 중년 의사가 환자 보호자를 빨리 찾아보라는 말을 마치 지시하듯 했다.
“글쎄요, 어제저녁 무렵 이분을 병원까지 모시고 왔던 분이 있었는데… 아직까지….”
“그럼 어제 오후 근무자가 작성해 놓은 차트 한 번 찾아봐요. 그곳에 보호자 연락처가 있을지 모르니.”
여러 장의 진료기록 카드를 뒤적거리던 간호사가 한 장의 카드를 살펴보았다. 카드 앞뒷면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간호사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 환자 이름만 적혀 있지 연락처는 없는데요.”
“당직자란 사람이 그 흔한 핸드폰 번호도 적어놓지 않고 도대체가. 근무를 이렇게 해도 되는 거예요?”
순간 날카로워진 의사가 갑자가 간호사에게 경어를 쓰기 시작했다. 그 의사는 짜증이 날 때면 자신의 괴팍한 성품을 숨기는 방편으로 높임말을 습관적으로 쓰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의사가 존칭을 쓰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간호사들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기분이 언짢아지면 오히려 말을 한껏 높이는 의사의 고약한 습관에 긴장한 간호사는 연신 의사 눈치 살피는 데 급급했다.
“그럼, 보호자 이름이라도 말해 봐요.”
“신은주라고 적혀 있는데요.”
“이 환자 그냥 이렇게 혼자 두면 안 되는데.”
의사가 낭패스런 표정을 지었다.
“…….”
“이 환자 혈압, 맥박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데… 잘 체크해야 될 것 같은데….”
날카로웠던 의사의 말꼬리가 조금씩 헐렁해지기 시작했다.

신은주.
연우 귓속으로 스며들었던 이름, 신은주.
그래 신은주라고 했다. 신은주가 과연 누구인가?
자신을 이곳 병원에까지 옮겨온 신은주….

짧고 단정한 스커트 차림을 한 웨이트리스 몇이서 자신들의 치마 매무새쯤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대에 쓰러진 연우를 다급하게 부축했다. 이미 숨이 멎어버린 듯 널브러진 연우가 몇몇 웨이트리스의 힘에 들려 겨우겨우 주차장까지 나왔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발을 동동 굴렀다.
“빨리 병원으로 연락해 봐! 아니, 119가 더 빠르겠어. 빨리 전화해 보라구!”
찬 바닥에 연우가 처참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다.
“이봐요, 아가씨! 한 번만 더 도와주세요. 내가 병원으로 모셔갈 거예요.”
주차장 한쪽에 주차되어 있던 승용차를 황급히 몰고 차에서 내린 여자가 연우 곁에 섰다. 사색이 되어 허둥대던 하얀 여자가 자신의 승용차 뒷좌석으로 연우를 밀어 넣었다. 승용차는 그렇게 카페 주차장을 쏜살같이 빠져나갔다.
‘이봐요, 제발 살아주세요. 제발, 절대 죽으면 안 돼요. 제발 부탁이에요. 살아만 주세요.’
카페 길목에 줄지어선 노란 가을 국화 무리 수술들이 휑한 가을바람에 몸을 잔뜩 움츠려 흔들대었다. 얇은 블라우스와 짧은 스커트 차림의 웨이트리스들이 심드렁한 심술바람을 피해 한 사람씩 영업장으로 다시 들어갔다.
[이하 생략]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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