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눅 14:26)
교회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부모를 미워해야 예수의 제자가 된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뜻이 숨어 있습니다. 이 뜻을 잘 알고 믿고 다른 사람을 지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는 불효 자식을 만드는 사탄'이라고 평할 수 있습니다.
①믿지 않는 부모가 선악을 분간 목하고 미신을 섬기거나 악을 부끄럼 없이 행할 때에, 그 옳지 않은 일을 미워하고 무조건 부모의 악한 것에 복종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②효자는 부모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을 가르쳐 좋은데로 인도해 주는 것이 부모를 미워하는 일입니다.
부모의 마음을 거슬려 불복한다고 해서 불효는 아닙니다. 부모도 자녀들의 인도를 받을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아버지가 맹장으로 누워 신음합니다. 어머니는 무당을 찾아가서 굿을 하려고 무당을 불러 왔습니다. 아버지가 아프다고 큰 소리를 치는 데도 무당은 북 치고 장구 치며 굿을 합니다. 어머니는 그 앞에서 손을 싹싹 빌며 병을 고쳐 달라고 합니다.
이때였습니다. 대학 다니는 아들이 이것을 알고 들어 왔습니다. 곧 환자를 업고 병원에 가서 진찰을 했더니 급성 맹장염이었습니다.
의사의 말을 따라 수술했습니다.
"30분만 더 있어도 생명을 잃을 터인데 마침 잘 왔습니다."
의사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병원까지 쫓아 와서 "이 불효 자식 에미 마음을 거스리는 불효 자식!" 하면서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서 아들에게 욕을 합니다.
하루가 지나 아버지도 정신을 들었습니다. 누워서 눈물을 닦으면서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이 미친 것. 당신이 나를 살리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죽이려고 굿을 했다. 아예 앞으로 그런 멸망의 굿은 하지 말라."
4일이 지나 아버지는 퇴원을 했습니다. 자, 어떤 것이 효도입니까?
미신을 섬기는 어머니의 말을 들어야 효자입니까? 이 세상에는 이렇게 무지한 부모가 얼마나 많은지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 부모들의 옳지 못한 판단을 우리는 잘 지도하고 고쳐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려면 처음에는 부모에게 미움을 받게 될 수 도 있습니다.
"네 부모를 미워하지 않으면.."이라 하신 부모 마음이란 곧 이런 일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서 나온 사람은 다 죄인이고 무지하고 부족합니다. 그래서 성현들은 말했습니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도 다 알 수 없다."
그러나 세상 창조주 하나님은 완전합니다. 완전한 지혜자 하나님의 말씀을 무조건 복종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하신 말씀이 "형제나 전토나 자기 목숨이나 또 재물까지 버리지 않으면.."이라고 교훈하셨습니다. 역시 형제나 재물도 버려야 한다는 것은 그런 이치입니다.
그런데 여기 우리가 깊이 생각할 것이 있는데. "자기와 재물도 버리라"는 문제입니다. '자기'라고 하는 것은 자기의 죄를 말합니다. 즉 내 죄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내 속에 죄는 늘 들어옵니다.
①어떤 때는 교만의 죄.
②어떤 때는 살인의 죄.
③어떤 때는 인색의 죄.
④어떤 때는 악한 욕심의 죄.
⑤어떤 때는 미움, 시기, 질투의 죄.
⑥어쩐 때는 속임의 죄
⑦어떤 때는 부모 불효의 죄.
⑧어떤 때는 싸움의 죄.
등등 기타 많은 죄의 권세가 내 속에 들어와 내 대신 행세를 합니다.
그런데 공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 속에 두 가지의 법이 있다. 하나는 선한 법, 하나는 악한 법, 그런데 나는 악한 법에 포로가 되어서 악은 나를 악한 데로 인도하고 있다."
바울 사도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면 흥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면 망한다."
그러니까 좋은 것이 들어와서 나를 잘 인도하면 좋은 사람이 되고 악한 것이 들어와서 나를 인도하면 악한 사람이 되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몸은 마치 버스로 말하면 '차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은 곧 운전사라 할 수 있습니다.
악한 마음은 악한 운전사요, 좋은 마음은 좋은 운전사입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버리라!"고 하신 것은 나를 악하게 운전하는 악한 마음 곧 악한 마음의 운전사를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또 "재물을 버리라!"는 말씀은 "좋은 일에 선용하고 가두어만 두지 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또 "네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마 6:20)도 하셨습니다. 여하튼 보물은 쓰는데 있지, 모아 두는 데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사람의 가치가 보물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한국의 유명한 독립 운동가 서재필 박사가 계십니다. 그가 독립신문을 처음 발간할 때 어떤 독지자가 무명으로 많은 보조금을 보내왔습니다. 그때에 돈과 함께 편지가 있었는데 그 내용이 이러합니다.
"내게 있는 재물 모두 드립니다. 따라서 내 생명까지 독립을 위해 바칩니다."
"무명의 애국자, 그는 몸과 재물을 모두 바쳤다."
그의 위대한 정신은 재물을 바치는데 나타났고 재물 또한 위대한 정신에서 최고의 가치를 발휘했습니다.
"재물, 정신, 생명은 버리는 것이 사는 것이요. 사는 것이 버리는 것이다."
이 말의 내용은 전혀 "예수님의 버림의 교훈"에서 나온 것이요, 진리입니다.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요 15:13).
네가 살고자 하면 죽으리라.
예수님의 정신은 버리고 승리하는 정신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운명 직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요 19:30).
이 말씀은 '대승리의 노래'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버리는 교훈을 가슴 깊이 간직합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등불이 되고, 생명이 되고, 양식이 되게 합시다. 우리는 많이 모으고, 많이 갖고, 많이 누리는 것을 자랑하지 맙시다. 그것은 "내가 죽었다"는 표입니다. "많이 버리는 생활"이 우리의 대승리입니다.
--- p.133-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