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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

: 김엄지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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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11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262쪽 | 284g | 125*192*20mm
ISBN13 9788932028026
ISBN10 8932028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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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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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엔 셀 수 없이 많은 돼지를 봤어요. 공원 벤치에 앉아서 콧구멍을 마구 후비던 여자 코가 들렁 올라가기도 하고. 접촉 사고가 난 도로 위에서 싸우던 돼지도 봤어요. 핏대를 세우고 목청을 높이다가 갑자기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더라고. 정말 딱 돼지 멱따는 소리였지. 뭐 말로 다 못해요. --- p. 24

라라 양은 영혼이 돼지예요. 속일 수가 없어. 그래서 라라 양은 여기에서 일해야 해요. 그래야 라라 양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가 있거든. 라라 양은 내가 여태껏 만나왔던 돼지 인간들 중에서, 자기가 돼지인 줄 아는 유일한 돼지예요. 나는 라라 양을 보고 알았어요. 누구나 돼지가 될 수 있지만 아무나 돼지가 될 수는 없다는 걸. 나는 누구나와 아무나의 차이를, 그보다 돼지가 될 수 있고 없고의 기준을 말하는 사장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p. 25)

당신은 그냥 무야, 무. 차라리 진짜 무면 썰어 먹기라도 하지. 너란 인간을 도대체 어디에 써먹어. 어디에 써먹느냔 말이야. 달달 떨린다, 떨려. 아내는 양팔로 몸통을 감싸고 떠는 시늉을 했다. 꼭 나를 어디에 써먹어야겠어? 영철은 고개를 숙인 채로 대꾸했다. --- p. 83

영철은 본인이 회사에서 잘린 이유를 알지 못했다. 어떤 실업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기도 해. 아내에게 설명하고 싶었지만. 세상의 모든 실업에 이유가 있는 건 아니야. 아내에게 설명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그녀가 원하는 설명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영철이 잘 알았다. 오류나 복직 가능성에 대해서, 아내는 말했다. 오류와 복직의 가능성에 대해서 영철은, 글쎄, 그러게, 잘 모르겠는데, 대답했고, 아내는 자기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쥐어뜯기 시작했다. 모르겠다고? 모르겠다고? 그녀는 자기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두 발을 동동 굴렀다. --- p. 93

그는 절여진 기분이었다. 그를 절이고 있는 것이 소금인지 세금인지, 밤은 쉽게 오질 않았다. 그의 생활은 세금에 맞춰져 있었다. 세금을 줄이기 위해서 노력했고, 세금을 제때 내기 위해서 노력했다. 점점 노력도 질려가는 중이었다. 그는 노력에 대한 대가를 받아본 기억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무엇도 별 상관이 없었다. --- p. 109

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살면서 한 번도 바다에 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성을 딱 한 번 사귀어봤다는 것과, 그 교제마저 교제라 부를 수 없을 만큼 빈약하고 형식적인 만남이었다는 것, 섹스 역시 늘 빈약하고 형식적이었다는 것, 가장 기억에 남는 섹스가 없다는 것, 가장 친한 친구가 없다는 것, 언젠가 있었을 법한 가장 친한 친구마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 그의 기억 중에 애타고 간절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 종교가 없다는 것, 종교마저 없다는 것, 없는 게 너무 많다는 것, 단지 1년을 쉬었을 뿐인데 체중이 10킬로그램 이상 늘었다는 것, 1년 동안 카드 빚이 더 늘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 지금 이 순간에도 그다지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남의 일 같았다. 남의 일 같았고, 그는 울었다. 그는 스스로 의아해하면서 울었다. 왜 우는지는 그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의 울음은 대부분 모호했다. --- p. 111

미래에 대해 생각하면서 걸었다. 그의 미래에는 눅눅한 이불과 밀린 세금이 있었다. 그는 미래에 대해 생각하던 중 새롭게 도배를 해야겠다는 결심도 하게 되었다. 그는 깨끗한 흰색으로 도배를 하고 싶었다.
--- p.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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