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예는 아닙니다만, 백제의 마지막 장수 계백은 신라와 싸우러 나가기 전에 아내와 딸들을 자기 손으로 죽였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느 자기 군사 5000명으로 신라 군사 50000명을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싸우러 나가긴 하지만 이기지 못하고다 죽을 것이며 백제는 망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미리 아내와 딸들을 죽이고 전쟁터에 나간 것입니다. 얼마 전 부여 부근에 갔을 대 부소산성과 3000 궁녀가 떨어져 죽었다는 낙화암에 가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득한 옛날 이야기인데도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저는 입다의 마음이 계뱅의 마음과 아주 비슷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전쟁에 나가면서도 승리를 확신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를 자꾸 괴롭힌 것이 무엇입니까? 자신들은 전부 몰사하고 가족들은 적의 칼에 유린당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입니다. 아마 그는 이것을 기정사실로 여기면서 '우리는 지금 나가면 전부 죽는다. 그러나 만에 하나 살아 돌아올 수만 있다면 성에 남아 있는 식구 중 한 사람을 바치는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하겠는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이 전쟁에서 혹시라도 우리가 이겨서 살아 돌아오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기꺼이 한사람을 하나님게 바치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은 이상하기 짝이 없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자기도 전쟁에서 살아올 가능성이 없고 남은 가족들도 살릴 가능성이 없는 장수의 입장에서 본다면, '전부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이런 상황에서 승리라는 엄청난 기적과 행운을 얻을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인들 못하랴' 하는 비장한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물론 이런 서원은 불신앙에서 나온 것입니다. 입다는 자신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하시는 이상 어떤 저이라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믿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이런 믿음이 없었습니다. 불길한 생각이 자꾸 그를 지배햇습니다. 그래서 결국 시키지도 않은 조건부 서원을 하기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 pp 62~63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여러 나라와 교류하고 새로운것을 배우고 우상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생활이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어려워진 것은, 하나님이 이들의 우상 숭배에 진노하셔서 다른 부족에게 넘기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잘살아 보려고 할 짓 못할 짓 다 해 가면서 애를 썼는데, 어쩌면 이렇게도 철저하게 일이 안 풀리는 걸까?' 라고만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고통과 핍박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눈에서 보면 우상 숭배가 원인이었지만, 정작 본인들은 '이상하게도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라고만 생각했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들의 문제를 보았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하지 못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그들을 '파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아무 가치가 없어서 헐값으로 넘기셨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잘살아 보려고 했더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력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전혀 가치가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왜 나는 하는 일마다 되는 게 없을까? 왜 하나님은 나의 아길을 틀어막고 계시는 걸까? 그렇게 죽자고 회사에 충성했는데 왜 하필 내가 퇴직 대상이 되게 하시는 걸까?' 라고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문제는 하나님이 보시는 눈으로 볼 때 비로소 풀리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왜 나는 10년, 20년씩 믿었으면서도 이 모양 이꼴인가? 왜 내 눈에는 내 안에 있는 죄성을 극복하는 일보다 이 세상에 적응하는 일이 더 크게 보이는가? 왜 나는 그토록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고질적인 문제에 빠지고 말았는가? 나는 왜 변하지 않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 pp 20~21
사람의 가치는 그의 영적인 상태에 있습니다. 일단 영혼이 병들면 망하는 것은시간 문제입니다. 음란한 생활로 삼손의 영혼이 병들었을 때, 그 영혼의 비참함은 곧 실제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그를 잡아 그 눈을 배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줄을 매고 그로 옥중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16:21)
한번 내리막길로 접어드니 바닥까지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습니다. 삼손은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가장 비참한 인생 밑바닥으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철저히 그를 무력하게 만들었습니다. 눈알을 뽑아서 다시는 대항하지 못하게 한 다음 감옥의 노예로 삼아 맷돌을 돌리게 했습니다.
무엇이 삼손을 이렇게 비참한 자리로 떨어뜨렸습니까? 그것은 죄였습니다. 그의 결정적인 실수는 들릴라를 한 사람으로만 본 것입니다. 죄는 절대로 혼자 움직이지 않습니다. 미끼를 던지기 위해 혼자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변장을 하는 것일 뿐입니다. 들릴라의 뒤에는 블레셋 다섯 방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손짓만 하면 달려올 태세를 갖추고 있는 수만 명의 블레셋 군대가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죄를 죄 그 자체로만 보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속아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단독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항상 엄청난 사탄의 나라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번 걸려들면 무슨 수를 써도 빠져 나올 길이 없어요. 과수원 옆을 지나가던 아이들이 울타리 밖으로 한두개 나온 과일을 따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한번 걸리면 어떻게 됩니까?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이 따 간 것까지 다 물어 주어야 합니다. 자기 눈에 보인 것은 울타리 밖으로 나온 과일 한 두개 뿐이지만, 사실은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 안에 수백 개가 달려 있고 그 전에 그것들을 따간 사람들이 수십 명 있습니다. 그 몫까지 다 내 책임이 되는 것입니다.
--- pp 250~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