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기를 낳을 때, 양수가 한 달 일찍 터져 유도 분만을 했다. 아기는 작고 젖은 나오지 않았다. 나도 모유를 먹이겠다고 맘먹었는데 아이가그 조그만 입으로 얼마나 아프게 빠는지 정말 너무 아파 하늘이 다 노랬다. 도대체 우리 엄마는 어떻게 젖을 먹였는지, 살아계시면 여쭤 보고싶었다. 출산 후라 몸도 편치 않은데다 젖이 나오기는커녕 헐어서 닿기만 해도 쓰리고 아팠다. 게다가 아기까지 조산아라서 젖 빠는 법을 잘 몰랐다. (...)
아기가 집에 오던 날, 한나절 끊임없이 우는 아기를 보다못해 남편은 당장 서점에 가서 여러 책을 사들고 왔다. 아기 백과사전, 모유 먹이는 법 등등의 책이었다.
"모든 물건이 매뉴얼이랑 함께 오는데 아기는 맨몸으로 왔네. 이 책에서느 젖을 조금 짜서 젖꼭지에 발라 놓고 바람으로 말리면 헌 부분이 가장 빨리 낫는대. 초유에 있는 여러 면역 물질 때문에 그런가? 아, 여기 있네, 젖가슴은 신생아가 빤지 200회가 넘어 가면서 그 통증이 사라진대. 그럼 지금 하루에 10번 이상 수유하고 있으니까 일주일에서 열흘이 지나면 더 이상 안 아프겠다. 이제 3일만 참으면 되는데, 여보 정말 힘들지? 조금만 참고 힘내."
딱 관두고 싶은 것을 간신히 열흘을 참았다. 그랫더니 남편 말대로 감쪽같이 통증이 사라졌고 젖도 잘 나왔다. 나는 이렇듯 산부인과 의사인 남편의 코치까지 받아가며 간신히 수유를 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젖먹이는 것이 힘들어서야, 게다가 식구들이 받쳐 주지 않는다면 신세대 엄마들에게 수유가 인기가 있게나 싶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번거로운 모유가 왜 분유보다 탁월하다고 하는가.
모유의 장점을 간단하게 열 가지 쓰면 다음과 같다.
1. 모유에는 분유에 없는 면역 물질이 있다.
2. 모유의 단백질에는 분유가 흉내낼 수 없는 타우린과 락토페린이 있다.
3. 모유는 조기 두뇌발달에 탁월하다.
4. 모유는 소화가 더 잘 된다.
5. 모유의 지방은 아기에게 잘 맞는 효율적인 지방이다.
6. 모유는 아기가 자람에 따라 그 시기에 알맞은 영양소로 변한다.
7. 모유를 먹이면 엄마 몸이 빠른 시일 내에 제대로 돌아온다.
8. 모유를 먹인 엄마는 유방암에 덜 걸린다.
9. 모유는 항상 적당히 따뜻하게 준비되어 있다.
10. 모유는 엄마와 아기를 모두 안정시킨다.
이밖에도 모유에는 분유에 없는 성분이 400가지 이상 된다고 한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모유 먹은 아기는 소아 비만에 걸릴 확률이 매우 낮다고 한다. 젖살은 다 빠진다고 하시던 할머니 말씀에 틀린 것이 없다. 실제로 젖을 먹인 아기는 백일 전후로 뽀얀 달덩이가 되는데 그때부터 키가 크면서 젖살은 다 빠지기 시작한다. 반면초기에 분유를 먹은 아기는 여러 면에서 아기에게 가장 알맞은 단백질이 아니기 때무에 먹성이 좋은 아기인 경우, 어릴 때 세포를 필요 이상으로 많이 늘여 놓는 결과가 된다.
여의사로서 자연히 여자와 아이들을 많이 보다 보니, 이제는 아기들을 만져 보면 모유를 먹고 자랐는지 분유를 먹고 자랐는지 거의 정확하게 맞춘다. 단단하고 차진 살이 잡히면 분유 먹은 아기요, 그것보다 좀 뽀송뽀송한 살이면 젖 먹고 자라 아기다. 또 자꾸 눈치 보는 아이는 탁아소 다니는 아이고 기가 펄펄 산 아이는 엄마가 집에 있는 경우가 많다. (...)
어떤 엄마들은 젖이 안나온다고 수유하는 걸 금방 포기하지만, 이와 관련해서 알아야 할 우리 몸의 비밀이 있다. 모유를 내는 젖가슴은 우리 몸의 여느 기관과 특별히 다른 점이 있다. 더 많이 요구할수록 알아서 양이 늘어나는 '수요 기관'이라는 것이다. 즉 젖을 많이 먹일수록 젖이 는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옛날에는 수유부들이 있었고, 동냥젖도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젖이 안 나온다'고 의학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산모는 5% 미만이다. 젖가슴은 길들이기 나름이고, 젖가슴이 크고 작은 것도 모유의 양과 비례하지 않는다.
--- pp 181~184
"얘들아, 일어나자. 빠방 타고 놀러 가자."
토요일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세 아이들 씻기고, 나들이옷을 입히고, 기저귀 가방을 챙기고 이제 준비 완료. 아침은 주최측에서 준비한다고 했기에 서둘러 시간 맞춰 가기만 하면 되었다. 공짜 영화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 오늘 영화는 <아프리카 코끼리>다.(...)
이 극장을 일반인들에게 열기 전인 이른 아침에 빌리고 또 아침을 대령한 주체측의 실제 주제는 "팩실(Paxil, paroxetine : 항우울제)"이다. 스미스크라인 제약회사가 정신과, 내과, 가정의학과 의사를 대상으로 벌인 토요 영화 초대였다. 그러니 식구들과 공짜 영화를 보는 대신 덤으로 주체측의 '춤과 노래'도 봐줘야 한다. 그래도 우리 애들은 신났다.(...)
드디어 영화가 시작한다고 불을 껐다. 약에 대한 아무 설명 업이 고분고분 영화를 틀어 준다 싶더니, 역시 코끼리보다 선전용 만화가 먼저 나왔다. 항우울제 팩실이 '구출대 로봇 V'로 나와 우울해서 회사도 못가는 아저씨를 찾아간다. 그를 구출한 후에는 공황장애를 일으켜 진땀 흘리는 환자를 말끔하게 고친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세고 닦고 또 세고 또 닦고 해 놔야 직성이 풀리는 강박장애 아줌마를 구출하고는 승리를 외치며 우주로 향한다.
유치하기 그지없는 만화였지만, 신약이 이 세 질환에 다 쓰인다는 것을 주체측은 어렵지 않게 말한 것이다. 10분 남짓의 시간으로 소정의 목적을 달성한 제약회사는 상당한 광고 효과를 얻은 것이다. 새롱누 약이 나오면 그 약을 어디에 쓰는지, 용량이 어떤지, 효험이 어떤지 확실히 알기 전에는 어느 의사도 처방을 내리지 않는다. 의사에게 신약을 알리기 위해서 제약 회사는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이런 식으로 간단히 신약 데뷔를 마치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만화라면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어린이들까지 손님이 될 부모 옆에 얌전히 동석해 주니, 판촉은 이만하면 대성공이었다.
--- pp 125~128
"수술 시작했습니다"
모두 다 숨죽이며 수술 광경을 바라봤지만 집도하는 수련의는 무척 힘겨워 보였다. 한 켜의 목 근육을 걷고 계속 진행되는 수술 광경을 보면서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살이 쪄서 죽는 경우도 있구나.'
수술대에 누워 있는 그녀는 무엇 때문에 스물여덟 한창 나이에 저지경이 되도록 먹었을까? 무슨 사연이 있을까? 가엾은 생각이 스쳐갔다. 9개월 된 아기를 가진 미혼모로소 몸이 너무 무거워 장애인 연금으로 생활한다는 그녀. 의사 생활에서 오는 직감이 발동했는지, 환자 상태를 알리는 모니터를 바라보았는데, 갑자기 환자의 산소 수치가 뚝뚝 떨어졌다. 보통 사람의 경우, 손끝이나 귀 끝 모세혈관의 산소 포화 상태는 최소 92%가 넘어야 한다. 그런데 그녀는 91%가 안되는 상태로 이 방에 들어왔다. 수술대에서는 아직도 기도를 찾느라 목을 한창 헤집고 있는데, 산소 포화 상태는 바로 눈앞에서 80%, 70%, 60%로 떨어지더니 급기야 51%에 머무른다. 5분도 안되는 시간이었다. 마취과에서는 긴급히 다른 마취과 의사들을 더 불러 들였다. 환자만으로도 한 가득 메운 수술방에 가정의가 구경 삼아 있기에는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져서 더 머쓱해지기 전에 얼른 방을 나왔다. 마침 그때는 부활절 주간이었는데, 이른 아침 200킬로그램 미혼모는 이 땅에서 그렇게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 pp 86~87
"얘들아, 일어나자. 빠방 타고 놀러 가자."
토요일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세 아이들 씻기고, 나들이옷을 입히고, 기저귀 가방을 챙기고 이제 준비 완료. 아침은 주최측에서 준비한다고 했기에 서둘러 시간 맞춰 가기만 하면 되었다. 공짜 영화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 오늘 영화는 <아프리카 코끼리>다.(...)
이 극장을 일반인들에게 열기 전인 이른 아침에 빌리고 또 아침을 대령한 주체측의 실제 주제는 "팩실(Paxil, paroxetine : 항우울제)"이다. 스미스크라인 제약회사가 정신과, 내과, 가정의학과 의사를 대상으로 벌인 토요 영화 초대였다. 그러니 식구들과 공짜 영화를 보는 대신 덤으로 주체측의 '춤과 노래'도 봐줘야 한다. 그래도 우리 애들은 신났다.(...)
드디어 영화가 시작한다고 불을 껐다. 약에 대한 아무 설명 업이 고분고분 영화를 틀어 준다 싶더니, 역시 코끼리보다 선전용 만화가 먼저 나왔다. 항우울제 팩실이 '구출대 로봇 V'로 나와 우울해서 회사도 못가는 아저씨를 찾아간다. 그를 구출한 후에는 공황장애를 일으켜 진땀 흘리는 환자를 말끔하게 고친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세고 닦고 또 세고 또 닦고 해 놔야 직성이 풀리는 강박장애 아줌마를 구출하고는 승리를 외치며 우주로 향한다.
유치하기 그지없는 만화였지만, 신약이 이 세 질환에 다 쓰인다는 것을 주체측은 어렵지 않게 말한 것이다. 10분 남짓의 시간으로 소정의 목적을 달성한 제약회사는 상당한 광고 효과를 얻은 것이다. 새롱누 약이 나오면 그 약을 어디에 쓰는지, 용량이 어떤지, 효험이 어떤지 확실히 알기 전에는 어느 의사도 처방을 내리지 않는다. 의사에게 신약을 알리기 위해서 제약 회사는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이런 식으로 간단히 신약 데뷔를 마치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만화라면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어린이들까지 손님이 될 부모 옆에 얌전히 동석해 주니, 판촉은 이만하면 대성공이었다.
--- pp 125~128
"수술 시작했습니다"
모두 다 숨죽이며 수술 광경을 바라봤지만 집도하는 수련의는 무척 힘겨워 보였다. 한 켜의 목 근육을 걷고 계속 진행되는 수술 광경을 보면서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살이 쪄서 죽는 경우도 있구나.'
수술대에 누워 있는 그녀는 무엇 때문에 스물여덟 한창 나이에 저지경이 되도록 먹었을까? 무슨 사연이 있을까? 가엾은 생각이 스쳐갔다. 9개월 된 아기를 가진 미혼모로소 몸이 너무 무거워 장애인 연금으로 생활한다는 그녀. 의사 생활에서 오는 직감이 발동했는지, 환자 상태를 알리는 모니터를 바라보았는데, 갑자기 환자의 산소 수치가 뚝뚝 떨어졌다. 보통 사람의 경우, 손끝이나 귀 끝 모세혈관의 산소 포화 상태는 최소 92%가 넘어야 한다. 그런데 그녀는 91%가 안되는 상태로 이 방에 들어왔다. 수술대에서는 아직도 기도를 찾느라 목을 한창 헤집고 있는데, 산소 포화 상태는 바로 눈앞에서 80%, 70%, 60%로 떨어지더니 급기야 51%에 머무른다. 5분도 안되는 시간이었다. 마취과에서는 긴급히 다른 마취과 의사들을 더 불러 들였다. 환자만으로도 한 가득 메운 수술방에 가정의가 구경 삼아 있기에는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져서 더 머쓱해지기 전에 얼른 방을 나왔다. 마침 그때는 부활절 주간이었는데, 이른 아침 200킬로그램 미혼모는 이 땅에서 그렇게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 pp 86~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