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소재를 힘 있게 풀어낸 젊은 작가의 작가적 역량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1930년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한 사이비종교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이를 둘러싼 의문들을 차근차근 풀어가며 픽션으로 구성해낸 작가의 치밀함이 놀랍다. 비단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한 시대의 비극을 들추어내서가 아니라, 뚜렷이 보이는 거짓 앞에서 그것을 진실이라 믿고 따를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분위기와 상황을 되짚어보게 한다는 데서 깊은 여운이 남는다. 영화로도 충분히 욕심나는 작품이다.
- 이상훈 (영화감독, 《한복 입은 남자》저자)
세월호의 잔상이 가시기 전 이 소설은 내게 충격과 먹먹함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단순히 픽션이라고 하기엔,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머릿속으로 연상되는 다양한 기억들이 너무 많았다.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하는 생각을 수없이 하며 이야기를 따라갔다. 작가는 그만큼 강렬한 메시지를 가지고 스토리텔링을 했다. 《사건 치미교 1960》은 단순히 흥미로운 소재에서 출발한 소설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되짚어보아야 할 사건을 다룬 사회적 문제작이다.
박경수 (CJ CGV 전략지원 팀장)
“사람 잘못 보셨다니까요? 제 이름은 박정철입니다.”
“새끼. 일본놈 한번 돼볼라꼬 온갖 뺑끼를 써대더만. 와? 광복되고 나니까 금마들이 쪼까내드나?”
뿌리를 박고 던진 말은 아니었겠으나 얼추 맞아 떨어졌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 붙잡아다가 말씀이 너무 지나친 거 아니요?”
“지랄하고 자빠졌네. 우리가 니 면상을 잊을 거 같나? 우리 아버지가 니 놈 애비 때메 냉골에서 헤매다 돌아가신 게 재작년 일이다. 어이?”
가장 몸집이 다부진 사내가 해용의 멱살을 움켜쥐어 언성을 드높인다. 너무도 순식간의 일이었기에 찰나 사내들이 이곳에서 자신을 벼르고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밑도 끝도 없는 의심도 해보는 해용이다.
아무튼 그 바람에 주변 모든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해용에게로 쏠린다. 순간, 숨이 턱하고 막힐 만큼 아찔하고 창피했다. 햇볕에 그을려 있던 얼굴색이 자주빛깔로 변해버린다. 그때서야 기억 언저리에서 매치가 이루어진다. 당장이라도 자신을 죽일 듯한 눈길을 하고서 멱살을 움켜쥐고 있는 사내의 얼굴은 10여 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담아낸 어렸을 적 벗의 얼굴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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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부터 미세하게 틀어지던 해용의 심정이 급기야 내면 어딘가에 꽁꽁 숨어있던 욕망을 구체적으로 일깨우기에 이른다. 무엇이든 가지려 마음을 먹으면 가질 수 있는 힘을 얻고 싶었다. 가지고 싶은 것이 많다기보다 마음을 먹기만 하면 가질 수 있는 능력 그대로의 원초적인 힘을 원했다. 원하는 힘을 손에 넣으면 돈을 원할 때 돈을 가질 것이었고, 여인을 원할 때 여인을 취할 것이었으며, 명예를 원할 때 명예를 쥘 것이었다.
그럼 그러한 힘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심을 해보니 돈만 많아서도, 매력만 있어서도, 명예만 높아서도 안 되었다. 다름 아닌 인간을 부릴 수 있어야 했다. 인간의 의식과 마음을 장악할 수 있어야 했다.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칭하는 인간을 멋대로 부리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힘의 실체일 것이리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
인간을 부린다, 이는 곧 신이 되겠다는 뜻이었다.
‘사람 위에 내가 서는 거다.’
그렇게 제법 구체적인 형태를 갖춘 욕망은 서서히 고개를 들며 자신을 폭발시킬 도화선을 준비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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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거기가 뭐하는 교단이냐고요? 세상에 전 재산을 바치라는 종교가, 그게 어디 정상이에요?”
의식하지 못했지만 상원의 목소리 톤은 철곤의 대답을 듣고 난 후부터 점점 고조되어간다.
“어디서 그딴 상소리를 입에 올리는 게냐? 너 같이 키워준 은덕도 모르고 자식 된 도리를 마다한 놈이 어디서 큰 소리냔 말이다!”
철곤의 눈빛이 처음으로 보통 아버지의 눈빛으로 변한다. 그간 가슴 속 꾸역꾸역 묻어 두었던, 아버지란 직책을 맡고 있던 탓에 내색할 수 없었던 고독과 서운함이 일시에 밀려든 것이 틀림없다. 모를 리 없는 상원은 뇌리에 맴도는 반박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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