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밤 잠이 들면서, 내가 깨어나면 세상이 달라져 있기를 나는 빌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세상은 그대로였다. 이불만 걷어 젖히고 그대로 누워 있자니 열린 창문으로 뜨거운 바람이 쏟아져 들어왔다.
손을 뻗어 라디오 다이얼을 돌렸다. 「혼자서」가 흘러 나왔다. 후지긴. ‘하트’라는 밴드의 노래였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밴드도 아니었다. 가사 내용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신은 모르죠.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나는 만 열다섯 살이었다.
나는 지루했다.
나는 비참했다.
내 심정 같아서는, 태양이 하늘에서 파랑을 싹 녹여 버렸으면 싶었다. 하늘도 나만큼 비참해지게.
--- p.15 『여름의 다른 규칙들』중에서
소년들. 나는 그들을 눈여겨보았다. 그들을 자세히 살폈다.
끝내 나는 내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남자애들한테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아니 솔직히, 아주 넌더리가 났다.
어쩌면 내가 조금 우월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나는 그저 그들과 말하는 법을 몰랐고, 그들 틈에서 나 자신이 되는 법을 몰랐다. 남자애들 틈에 끼어 있으면 내가 덜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남자애들 틈에 끼면 내가 멍청이 같고 부적격자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그들은 모두 같은 동아리인데 나만 회원이 아닌 듯했다.
--- pp.36~37 『여름의 다른 규칙들』중에서
나는 말없이 운전만 했다. 이대로 영원히 트럭을 몰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내가 과연 사막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를 찾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러나 찾았다. 마치 내 몸속 어딘가에 컴퍼스라도 숨겨 둔 것처럼. 우주의 비밀들 가운데 하나는 본능이 때로는 지성보다 훨씬 강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트럭을 세우고 내린 다음 문을 꽝 닫으며 내뱉었다. “썅! 맥주를 깜빡했네.”
“맥주 없어도 돼.” 단테가 나직이 말했다.
“맥주가 필요해, 씨발!” 왠지 모르게 나는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고함은 어느새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나는 쓰러지듯 단테의 품에 기대서 울음을 터뜨렸다.
단테는 나를 안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주의 또 한 가지 비밀은, 때때로 고통이 폭풍우처럼 난데없이 밀려드는 것이었다. 더없이 쾌청한 여름 아침이 폭우로 끝날 수도 있다. 번개와 천둥으로 끝날 수도.
--- p.317 『그 비를 기억하렴』중에서
나는 말하고 싶었다. 지금껏 나는, 친구가, 진짜 친구다운 친구가 없었다고. 단테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나는 말하고 싶었다. 별을 관찰하고, 물의 신비를 알고, 새들은 하늘에 속해 있으며 우아하게 비행하다 비열하고 어리석은 소년들에게 총을 맞고 떨어져도 되는 존재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아는 단테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줄도 몰랐다고. 나는 말하고 싶었다. 단테가 내 삶을 바꾸어 놓았다고, 내가 예전과 똑같이 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그리고 어찌 보면 단테가 내 목숨을 구해 준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닌 것 같다고. 나는 말하고 싶었다. 우리 엄마를 제외하면,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을 털어놓을 마음이 들게 해 준 첫 번째 사람이 단테였다고.
단테네 부모님에게 알려 주고 싶은 것은 아주 많았지만 그것을 표현할 말들이 나에게는 아직 없었다. 하여 나는 바보처럼 그저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단테는 내 친구예요.”
--- pp.373~374 『우주의 모든 비밀』중에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해요? 저는 너무 부끄러워요.”
“부끄럽다니, 뭐가? 단테를 사랑하는 게?”
“전 남자예요. 걔도 남자고요.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엄마…….”
“내 마음 알아. 오펠리아가 내게 가르쳐 준 게 뭔지 아니? 그간 받은 편지들을 모두 읽으면서, 내가 배운 게 있어. 아빠가 옳아. 넌 도망칠 수 없어. 단테한테서.”
“저는 내가 미워요.”
“그러지 마, 아모르. 테 아도로(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옮긴이). 나는 이미 아들을 하나 잃었어. 또 잃지는 않을 거야. 넌 혼자가 아니야, 아리. 그런 느낌이 들겠지. 하지만 넌 혼자가 아니야.”
“어떻게 그토록 저를 사랑할 수 있어요?”
“어떻게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니? 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인걸.”
--- pp.423~424 『우주의 모든 비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