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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아옌데

: 혁명적 민주주의자

리뷰 총점8.3 리뷰 3건 | 판매지수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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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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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16년 05월 06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452g | 140*210*20mm
ISBN13 9788974837891
ISBN10 8974837897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국내 최초로 번역 출간되는 살바도르 아옌데 평전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정권을 출범시킨 칠레 아옌데 대통령을 단독으로 다룬 평전이 국내 최초로 출간됐다. 《살바도르 아옌데: 혁명적 민주주의자》는 아옌데의 집안 배경에서부터 의대생으로 민중의 처참한 현실을 목격하면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정치활동을 시작한 시기, 본격적인 정치인으로서의 도전과 좌절, 극복의 순간,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정권을 잃고 삶을 마감하기까지의 과정들을 담고 있다. 또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프리메이슨 활동과 연애관계, 취미활동 등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아옌데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했으며, 칠레의 근현대사와 아옌데 활동 당시의 주변 국제정세에 대한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또한 그가 칠레와 라틴아메리카, 세계에 남긴 유산을 점검해보면서 아옌데와 인민연합 정권의 사상 초유의 정치적 시도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지 찬찬히 짚어본다.

저자 소개 (1명)

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역자 : 정인환
1970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났으며, 성균관대 한국철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대 국제지역원에서 미국 정치를 전공했다. 1999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사회부·국제부·정치부를 거쳤고, 《한겨레21》에서 국제뉴스를 다루었다. 지금은 [한겨레TV]에서 일하고 있으며, 국제뉴스와 뉴미디어에 늘 관심을 두고 산다. 《전쟁을 팝니다》 《예스맨 프로젝트》 《기억하라, 우리가 이곳에 있음을》 등을 우리말로 동화 《지구마을 친구들에게 천 원이 있다면?》을 썼다.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미국의 자금 지원을 받은 야권의 반대와 자본가들의 사업장 폐쇄, 노동조합과 대중운동 파괴를 위한 노력과 군부의 쿠데타 시도가 되풀이되고 있다. 언론의 호들갑과 국제무대의 정치적 압박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도전을 극복하려면 아옌데 정부의 붕괴 과정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리라. --- p.18

어둠 속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닥터 아옌데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내려보니 일자리에서 쫓겨난 구리 광산 노동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십시일반 모은 돈을 아옌데의 선거운동 자금으로 내놓았다. 또 다른 유세 길에서는 신분을 감추고 활동하고 있는 노동조합 지도부가 아옌데와 그의 동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미국계 자본이 소유한 광산에서 불법적인 탄압을 당하고 있었다. 외국계 자본이 장악한 광산 지역에서는 칠레의 주권이 전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극명히 보여주었다. 아옌데와 그의 동지들은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을 지켜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 p.107

“동지들, 저는 메시아가 아닙니다. 메시아가 될 생각도 없고요. 그저 인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정치적 대안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사회주의로 가는 다리 노릇만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p.117~118

일련의 사회개혁 프로그램도 제시했다. 남녀 동일임금제, 전 국민 생활임금제, 사회보장제도 확대, 전 국민 대상 예방치료 의료보장 등이었다. 대규모 신규 주택 건설 사업도 계획하여, 민간은 물론 민관 합작회사도 건설에 참여하도록 했다. 차별을 당해온 여성과 혼외 자식에게도 평등한 법적 권리를 보장하기로 했다. --- p.178~179

“정부를 지켜낼 것입니다. 혁명을 지켜낼 것입니다. 칠레 인민이 제게 부여한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제게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 (…) 저들이 저를 죽인다 해도, 인민들이 그 길을 이어갈 것입니다.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힘겨울 수도 있습니다. 폭력이 난무할 수도 있습니다. 저들이 무슨 짓이든 거리낌 없이 저지를 게 분명하고 객관적인 교훈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지도자 1명이 사라진다고, 사회적 변혁 과정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조금 늦춰질 수도, 장기간 지체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중단할 수 없습니다.” --- p.229~230

선거를 통한 투쟁을 고집한 것 자체가 그의 신념을 웅변해준다. 아옌데는 특유의 역사와 사회적 맥락 속에서 칠레가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가장 확실하면서도 효과적인 방식이 바로 선거라고 굳게 믿었다. --- p.255

아옌데는 인민전선 정부의 경험에서 배운 게 있다. 내부로부터 강력한 구조적 변혁을 이끌어내기 위해 무엇보다 가능한 한 포괄적인 인물과 조직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사회정의, 경제와 인간 개발을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한가운데 놓고 말이다. --- p.256

아옌데는 일생 동안 다양성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좌파의 단합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소수 전위조직을 구축하려 하지 않았고, 대중운동을 더 발전시키기를 원했다. 이를 통해 반제국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확고한 원칙을 유지하는 한편, 주류 정치권과의 타협점을 모색하려 했다. 인민연합 정부는 가능한 한 폭넓은 연합체 구성을 원했던 아옌데의 50년 노력의 정점이었다. --- p.258

최근 칠레에서 나타나고 있는 대중적 움직임은, 1973년 9월 이후 오랜 세월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던 칠레 인민들에게도 마침내 변화가 생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쩌면 그리 오래지 않아,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칠레 인민들이 당당하게 걸어나갈 ‘드넓은 길’이 다시 열릴지도 모를 일이다. 아옌데가 그 어두운 9월의 아침에 예견했던 것처럼 말이다. 살바도르 아옌데와 인민연합이 남기고 간 유산에 기대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p.270~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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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로 집권한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

살바도르 아옌데 칠레 대통령의 이름 앞에는 ‘선거로 집권한 최초의 사회주의자 대통령’ 혹은 ‘미국의 지원을 받은 군사쿠데타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대통령’이라는 수식이 붙는다. 이것들은 살바도르 아옌데라는 정치인과 그의 의미, 그리고 그가 살던 시대를 단적으로 설명해준다. 체 게바라가 아옌데에게 선물한 《게릴라전 교범》에 남긴 “똑같은 목적을, 나와 다른 수단을 통해 추구하고 있는 살바도르 아옌데에게”라는 글귀처럼, 아옌데는 소련이나 쿠바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회주의적 이상을 추구하려고 했다. 그것은 각각 현실에서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 소련과 쿠바 정권에 실망한 사람들에게 하나의 희망적 대안이면서, 참고해야 할 중요한 선례가 되었다. 당연히 미국과 칠레 기득권층에게 아옌데 정권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다. 미국은 쿠바혁명과 아옌데의 집권으로 라틴아메리카에 불어닥친 사회주의의 바람을 차단하기 위해 반아옌데 진영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칠레의 자본가와 기업인들은 파업과 시위를 조직했으며, 보수언론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칠레가 소련과 쿠바의 길을 갈 것이라며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어쩌면, 아옌데 정권이 버틴 만 3년이라는 기간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연대와 통합, 분열과 좌절의 칠레 좌파 집권사

‘대통령제 국가에서 아옌데는 어떻게 선거를 통해 집권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선거로 집권한)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이라는 것만큼이나 우리가 세심하게 짚어봐야 할 부분이다. 양당제가 완전히 자리 잡지 않은 나라들, 기득권 세력과 보수정당이 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나라들에서 진보 정권이 집권하는 길에 연대와 통합 논의는 피해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칠레 사회주의 세력이 집권하고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인해 그것이 좌절되기까지의 과정은 쉼 없는 연대와 통합, 분열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아옌데는 1952년 대선에 사회당과 공산당이 함께한 ‘인민전선’의 이름으로 나섰고, 1958년과 1964년에는 사회당, 공산당 등이 모여 결성한 ‘인민행동전선’의 대통령 후보였다. 1970년에는 사회당, 공산당, 기독민주당 탈당파, 독립진보연합의 연합체인 ‘인민연합’의 후보로 대선을 치렀다.

“힘을 앞세워 일시적으로 권력을 장악하는 사람은 혁명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반면 합법적으로 권력을 장악한 뒤 사회를 변혁하고, 사회적 화합을 모색하며, 나라 경제의 근간을 바꿔내는 사람은 혁명적이라 부를 만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혁명의 개념입니다. 근본적이고 창조적인 변혁 말입니다.”(96쪽)

1948년 의회 연설에서 밝혔듯이 아옌데는 평화적 방식을 통해 혁명적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고, 집권 기간 내내 보수정당인 기독민주당과의 연대를 집요하게 시도했다. 인민연합에 참여한 정당들은 집권을 위해 힘을 합쳤지만, 집권의 목적은 저마다 달랐다. 인민연합 내부에는 옛 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체제를 세우는 것이 목표인 이들이 있었고, 대선 승리를 점진적인 정책을 통해 변혁을 시작하는 것으로 보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어떤 방식이든 개의치 않고, 두 진영이 상호논의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이들도 있었다. 인민연합의 집권이 과반에 이르는 절대적 지지를 얻은 것도 아니었고, 의회에서도 기독민주당의 힘이 강력했던 상황에서 인민연합 내부의 갈등은 국내외의 압력에 시달리는 아옌데 정권에게 또 다른 시련을 안겨주었다. 폭력혁명을 불가피하다고 보는 이들의 말과 행동이 언론을 타고 칠레 사람들에게 공포를 심어주었고, 기독민주당과의 협력을 가로막았다. 그 어떤 정치세력도 의회를 장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기독민주당과의 연대는 필수적이었으나, 인민연합 지도부는 아옌데의 그러한 제안을 거절했다.

이 거절은 이후 아옌데의 입각 제의에 대한 기독민주당 지도자의 거부로 이어졌고, 인민연합과의 협력을 주장한 기독민주당 좌파 세력은 점점 힘을 잃기 시작했다. 1971년 상원 보궐선거에서 기독민주당과의 협력을 위해 후보를 출마시키지 말고 기독민주당 후보를 지지하자는 아옌데의 제안도 거부되었다. 사회당은 독자후보를 출마시켰고, 우파의 지원을 받은 기독민주당 후보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이는 기독민주당의 우경화를 촉진시켰고, 결국 기독민주당 우파에 밀린 좌파 세력은 탈당을 한 뒤, 기독좌파당을 창당해 인민연합에 합류했다. 이들은 인민연합과 기독민주당의 협력을 가장 앞장서서 반대했다. 아옌데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연대의 실패는 큰 걸림돌이 되었다.

진보 정권을 누가 무너뜨렸나?

한번은 부유한 우파 신문사주가 아옌데가 요트를 소유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절대다수 칠레인들은 요트를 구경조차 하기 힘든 시대였다. 아옌데는 즉시 별장에 보관하고 있던 소형 보트를 산티아고로 싣고 오게 한 뒤, 산티아고 중심가 불네스 광장의 분수대에 띄웠다. 그날 오후 항의 시위를 위해 30만 명가량이 광장에 운집했다. 연단에 올라선 아옌데는 분수 위에 떠 있는 자신의 ‘요트’를 가리켰다.(120쪽)

왠지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 상황은 1958년 칠레 대선 당시에도 벌어졌던 일이다. 이처럼 집권 이전에는 물론이고, 집권 이후에도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리려는 미국과 칠레 기득권층의 공격은 전방위적으로 집요하게 펼쳐졌다. 특히 아옌데의 구리산업 국유화는 미국 정부와 구리 회사를 격분시켰다. 미국의 구리 회사 아나콘다는 전체의 16.6%만 투자하고도 전체 이윤의 79.2%를 칠레에서 거두고 있었다.

미국은 반아옌데 세력에게 “꿈도 못 꿀 정도의” 자금을 제공했으며, 반아옌데 언론사를 지원하고 육성했다. 소련과 쿠바가 칠레 내정에 간섭하고 있다며 여론을 선동했고, 정치협상을 어렵게 만들었다. 미국 기업들은 부품 공급을 중단해 칠레의 중요한 운송수단인 트럭운송이 마비되었고, CIA와 기업가들의 매수로 트럭운수업자들은 ‘자본가 파업’을 일으켰다. 또한 미국은 비축해두었던 구리를 방출하여, 칠레의 가장 중요한 자원인 구리의 수출량이 22.2% 줄었다. 칠레의 기득권 세력은 시위를 조직하고 폭력사태를 방치했으며, 추가적인 국유화에 대비하여 외국으로 자금을 빼냈다. 아옌데 정부는 국유화된 구리 광산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할 수 없었다. 인민연합 내 공산당과 사회당, 그리고 아옌데 정부의 의견이 각기 달랐고, 정치적 대립의 심화와 외세의 개입, 경제봉쇄가 겹쳐지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지금, 아옌데와 인민연합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3년이라는 짧은 집권 기간 동안 아옌데 정부가 남긴 유산은 적지 않다. 아옌데가 역점을 두고 추진한 구리산업 국유화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칠레 경제의 튼튼한 젖줄이 되고 있다. 또한 기존에 진행되던 토지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칠레 자영농의 힘을 키우고 농업경쟁력을 향상시켰다. 외교관계에서는 미국이 장악한 국제체제에 복종하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모든 어린이에게 무상으로 우유와 아침 식사 급식을 주고, 60세 이상에게 연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복지정책을 추진했으며, 사회보험 적용을 늘리고 전기와 수돗물 공급 확대를 추진했다. 이 밖에도 공직자의 투명성과 인권 증진, 서민 보호, 인프라 확보 등을 위한 광범위한 개혁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비록 쿠데타로 인해 아옌데 정권은 무너졌지만, 세계 곳곳에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아옌데의 유산을 들춰보고 있으며, 2000년 이후 집권한 라틴아메리카 좌파 정부들은 인민연합과 놀랄 만큼 흡사한 정책을 추진했다. 칠레에서는 특히 교육과 공공서비스 개선 예산 확보 방안으로 천연자원에 대한 공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광범위하게 번졌으며, 극심한 불평등을 해결하고 부의 재분배가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세계적으로 커져갔다.

아옌데가 ‘다른 방식’의 혁명을 꿈꾸었다고 해서 그를 ‘개량주의자’로 폄하하는 시선도 일부에 있었다. 하지만 아옌데는 평생을 사회변혁과 자본주의 체제 탈피를 꿈꾸었다. 그는 적대세력을 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해방’시키고 싶어 했고, 다른 나라의 혁명 과정이 치른 혹독한 사회적 비용을 어떻게든 피하고자 노력했다. 이런 그의 노력은 이후 어디에선가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아옌데 정부의 붕괴를 통해 라틴아메리카는 물론 전 세계 좌파 진영은 교훈을 얻고자 했으며, 그것은 지금도 유효하다. 아옌데의 패배는 제국주의의 좌파 정부에 대한 대응방식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또한 선거를 통한 혁명 세력의 집권이 가능하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 한편으로 혁명적 과정을 효과적으로 방어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도 강조해준다. 이 교훈은 부의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고, 서민과 중산층이 무너지는 현실과 마주한 지금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회원리뷰 (3건) 리뷰 총점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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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정의가 승리할 그날을 위하여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c******e | 2019.02.16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살바도르 아옌데!! 예전에 비디오 테이프로 우연히 칠레전투 4부작을 구해서 본 적이 있다. 4편을 화장실도 한번 밖에 안가면서 연이어 본 다음 먹먹해진 기억이 있다. 그때는 직장 동료들과 함께 보고 얘기하기 위해 중고 비디오를 사서 열편 이상을 불법 복제까지 했었다. 그때 가장 눈물나는 장면은 육성만으로 들려오던 아옌데의 마지막 연설이었다. 아옌데는 가장 책임있는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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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아옌데!! 예전에 비디오 테이프로 우연히 칠레전투 4부작을 구해서 본 적이 있다. 4편을 화장실도 한번 밖에 안가면서 연이어 본 다음 먹먹해진 기억이 있다. 그때는 직장 동료들과 함께 보고 얘기하기 위해 중고 비디오를 사서 열편 이상을 불법 복제까지 했었다. 그때 가장 눈물나는 장면은 육성만으로 들려오던 아옌데의 마지막 연설이었다. 아옌데는 가장 책임있는 자리에 오른 이유로 극좌적인 입장으로도, 또는 너무 타협적인 입장으로도 흐르기 힘든 상황이었다. 보다 단호하고 철저하지 못한 조치들, 군부 및 우익과의 타협이나 연정 시도들은 예전 학창시절에는 그다지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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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와 분열이 반복되지만, 끈질기게 앞으로 나아가는 정치인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J**e | 2017.06.04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살바도르 아옌더, 칠레의 대통령, 피노체트의 쿠테타에 의해서 대통령으로서 목숨을 잃은 사람, 칠레에서 좌파 연합(인민 연합)으로 선거에 의해 집권한 첫 좌파 대통령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처음으로 칠레의 역사를 만난 것은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서 였다. 칠레가 나은 위대한 시인인 네루다와 시인 네루다에게 우편을 배달하면서, 메타포를 통한 시를 배워가는 젊은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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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바도르 아옌더, 칠레의 대통령, 피노체트의 쿠테타에 의해서 대통령으로서 목숨을 잃은 사람, 칠레에서 좌파 연합(인민 연합)으로 선거에 의해 집권한 첫 좌파 대통령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처음으로 칠레의 역사를 만난 것은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서 였다. 칠레가 나은 위대한 시인인 네루다와 시인 네루다에게 우편을 배달하면서, 메타포를 통한 시를 배워가는 젊은 청춘의 사랑이야기이다. 하지만 이것이 1973년 칠레의 쿠테타로 인해서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그때 1970년 공산당의 대선 후보 네루다와 사회당의 대선 후보 아옌더가 민중 연합을 하여 대통령 단일화와 대통령이 되는 과정이 나온다. 물론 73년도의 쿠테타 이후에 대해서도 소개되고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대통령 아옌더에 대해서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 책이 긴 분량이 아니여서, 전반적인 칠레의 정치상황과 역사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읽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나는 이해하기가 좀 어려웠고, 이 책을 통해서 칠레의 근대사를 조금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칠레의 역사를 읽을 기회가 있을 지 모르겠다. 그래서 기억을 위해서 짧게 적어보자고 한다.


칠레가 스페인으로부터 19세기 초반에 독립을 한다. 정치체계는 대통령제를 시행하는데, 선거권자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독립 운동사에 아옌더의 증조부 형제분들이 주요인물로 등장한다. 아옌더 가문이 나름 있는 가문이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상원의원 및 프리메이슨 회장을 맞는다. 정치적으로 유력 인사이다. 반면에 아버지는 좀 노시는, 재산을 탕진하시는 모습으로 보여진다.


칠레의 역사 중에, 볼리비아의 전쟁이 있고, 아마 페루하고도 확정될 것이다. 이 지역이 질산염을 생산하는 주요 지역인데, 이곳에서 약간의 유년 시절을 보낸다. 페루 점령지역으로 알고 있고, 그때 아옌더의 아버지가 정확하게 무엇을 했는지는 모른다. 그리고 파나마 운하가 개설되기 전이여서 발파라이소 항구가 남미를 돌아가는 거점항으로 발전 중이였고, 아옌더는 이 지방이 고향이고 거점이다.


정치구조에서는 1930년대에는 잠깐의 쿠테타에 의한 좌파 군사 정권이 있었고, 독재정권이 주로 있고, 1940년 이후에는 선거에 의해 정권이 바뀌는 것이다. 이때 주요 정파로 우파 정당들이 있고 (국민당) 중도로 급진당, 좌파로 사회당과 공산당이 있다. 한국이서 민주당이 이합 집산을 무수히 많이 하는 것과 같이 사회당과 공산당등이 많이 헤어졌다 합친다. 중도당으로 급진당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민중 전선이 급진당,사회당,공산당으로 급진당 중심으로 정권을 잡는다. 이때 사회당의 몫으로 보건부 장관을 맡는다. 30대에 사회당 하원의원으로 시작하여, 보건부 장관까지 수행하는 것이다. 물론 연정이 불발에 이를때도 있고, 봉합과 결별을 계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구도가 우파정당, 기독민주당(중도), 사회당+공산당의 3파전의 형태를 이루게 된다. 물론 이것도 내부에서는 아주 복잡하게 나누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상원의원 3번과 상원의장까지 하게 되고, 4번의 대통령 후보 끝에 1970년 인민 연합 (사회당+공산당)의 37%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선출된다. 참고로 그전 집권당의 경우에는 기독민주당이였다. 그래서 기독민주당과의 소위 협치가 매우 중요한 상태였다.


한편 국제 정세는 1959년의 쿠바 혁명으로 인해서 미국이 남미 전체에 대해서 좌파 정권이 생기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일부 남미 국가의 좌파 정권이 미국의 방해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아옌더의 경우에도 1960년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유력했지만, CIA의 흑색선적에 의해서 대통령 선거에 실패했고, 1970년에도 대통령 선거에 흑색 선전을 받았지만 박빙으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집권기에는 백색 테러등의 미국에 의한 정권을 빼앗길 것을 두려야 해야 하는 입장이였다. 그리고 1973년 미국이 반드시 조정할 것이라고 추정되는 군부 구테타가 발생한다.


길게도 대충의 이야기를 적었다.


정치인 아엔더에 대해서 느끼는 것을 적어 본다. 이 짧은 책에서 칠레 역사와 정치를 모르는 입장에서 뭘 적는다는 것이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첫째는 솔선수범하고 민중에게 다가가는 정치인이다. 그가 유력 정치인의 집안 출신이였지만 전통적으로 군대에 입대하는 집안 정신에 따라 유력층들은 잘 안가는 군대를 다녀온다. 뿐만 아니라 의학 전공에 따라 의사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의료 정책을 사용할 것이고에 대한 보건복지에 대해서 행동하는 사람이였다.


둘째는 타협하는 중도주의자였다. 대통령이 되려면 메인스트림에 있어야되고, 남들하고 통합해야 한다. 아옌더의 경우에는 공산주의자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사회주의자였다. 그래서 인민 전선과 인민 연합을 통해서 통합하려고 했고, 실제로 성과를 이루어낸 사람이였다.


셋째는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이였다. 대통령 선거에 4번 나갈 정도로 유력 정치인이였고, 특히 2번째부터는 가능성 있는 정치인였다.


하지만 아옌더 정권은 실패하고, 칠레에게는 암흑의 시간이 온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죽고 실종되었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박정희와 전두환은 피노체트에 비해서 100배 이상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옌더 정권과 협치를 하지 않았던 기독민주당은 곧 민정이양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민정이양에는 17년 이상의 세월이 걸리고, 기독민주당의 전직 프레디 대통령은 피노체트에 의해서 독살 당한다. 전직 참모총장도 망명 생활중에 폭탄테러로 죽는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악독한 피노체트 정권이다.


아옌더의 실패의 3가지 내용을 적고 정리하고자 한다. 첫번째 나쁜 것은 미국의 정권과 CIA이다. 어떻게 정당한 선거로 된 아옌더 정권을 부도덕한 쿠테타로 무너트리는가. 그것도 돌이키기에는 너무 큰 시간이 걸리는 암흑의 시간을 주면서. 두번째는 군부 쿠테타 세력이다. 그리고 세번째는 아옌더 정권의 정치권이다. 소위 협치로 기독민주당과 인민 연합이 연정을 했더라면 군부 쿠테타는 미룰 수 있었을 것이다.


칠레의 민주화가 잘 진행되길 바란다. 그리고 실패한 대통령으로 기억되는 아옌더에 대해서 좀더 좋은 평가가 이루어지길 바라고, 소수정파가 집권할 때 찾아봐야 할 교훈 같은 것을 얻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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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아옌데를 읽고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3점 s*****s | 2016.07.12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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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목

어릴때부터 무척 알고 싶은 분이어서, 다큐멘터리나 신문 기사로 종종 접하다가 이번에 책이 나와서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다.


이분의 삶은 4대에 걸치는 우리 집안 사람들의 태어남과 겹치고 있어 내게는 흥미로운 꺼리로 다가온다. 연도가 명확히 겹치는 것은 아니나, 아옌데씨의 태어남-(의사로서) 사회에 적극 참여-쿠데타로 인한 죽음-(최근 칠레정치의) 우파 복귀는 할아버지-아버지--내 아이의 태어나는 시점과 꽤 맞닿아있다.


한 사람에 대해 드문드문 알았던 것들을, ‘전기라는 모습으로 이야기가 꿰어지면서 그의 삶을 좀 더 완결성을 갖고 이해할 수 있었고, 막연히 Marxist로서만 알고 있었던 아옌데 씨가 꽤나 이상주의자로서 그 이상을 현실에 끊임없이 끼워보려는 끈질긴 고집, 그리고 중남미를 쥐고 흔드는 미국의 개입, 그로 인한 사회 혼란은 결국 이분을 최후로 몰고 갔다.


세계 어느 한 나라도, 지금까지 행운만, 반대로 불운만으로 채워지지 않듯이, 아옌데씨의 칠레도 아옌데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행운이 있었고, 그의 꿈을 그리 오래 펼치게 하지 못한 불운이 있었다. 칠레는 그 이후 지금까지 독재와 약한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하는 중이다.


우리 집안에 이어, 우리나라와 아옌데씨의 칠레 사이에 비슷한 점은 군사 독재 이전에 민주주의가 꽃피우려다 군대에 의해 좌절되어 꽤 오랜 독재 시절을 거쳤다는 것이고, 다른 점은 우리나라에는 아옌데에 필적할 만한 분이 4.19시기에 대선 후보급에서는 안보였다는 점이다.


좋은 머리와 뛰어난 운동 신경, 좋은 배경(집안, 직업)을 갖춘 분으로서 그의 정치 철학과 그가 마련한 사회개혁 프로그램(남녀동일임금제, 전국민 생활 임금제…), 토지 개혁, 미국과 불평등 조약 개선/폐지 등은 1970년대 초 중남미뿐 아니라 서유럽에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어젠다로 보인다. 하지만 아쉽게도 서구의 근대화, 그리고 막시즘에 근거한 사회주의 실현이라는, 서유럽에서 추구했던 가치를 뛰어넘지 못하고, 여기에 민족주의와 라틴아메리카 동맹 등을 혼합한 그의 정치 관점에 약간의 아쉬움을 표한다. 또 하나는, (조심스럽게 말하려는 바인데) 영미의 시각으로 본 중남미의 혁명주의자에 대한 글이 과연 얼마나 객관화? 중립성? 이런 가치를 담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초강대국인 미국 앞에서 항상 당당했고, 폭력에 의한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반감 등을 통해 그의 훌륭함은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고, 사후 4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잊지 않고 그의 뜻을 기리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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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승리할 그날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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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c******e | 2019.02.16
평점5점
과거의 이야기지만 읽는내내 가슴이 뜨거워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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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 | 2017.04.12
  • 절판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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