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남자와 여자는 흔히 개와 고양이에 비유되는가? 여자는 고양이처럼 우아하고 깨끗하기 때문이며, 폭신폭신한 발바닥으로 소리 없이 품위 있게 걸을 수도 있고, 스스로 우아하고 품격이 넘친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일까? 반면에 남자는 깡패처럼 세련된 감각도 없으며 여차하면 행패를 부릴 태세가 되어 있으면서도 상관 앞에서는 개처럼 꼬리를 치며 비굴하게 굴기 때문일까?
분명히 그렇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가 개와 고양이에 비유되는 진짜 이유는 더 깊은 곳에 있다. 나는 그 이유를 우연한 계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십 년 만에 처음으로 동창회에 참석했을 때였다. 처음에는 좀 서먹서먹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밤이 깊어가면서 많은 말들이 오고갔다. 그때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남자와 여자들 사이에는 서로 다른 두 종류의 대화그룹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남자들은 순식간에 학창시절의 고교생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으며, 옛날의 치기 섞인 영웅담을 회상하며 시끄럽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동안의 삶에 대해 물어보면, 흰소리나 잔뜩 늘어놓을 뿐이었다. 그동안 자신이 무슨 일을 경험했는지에 대해서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허풍과 우스갯소리, 은사들에 얽힌 에피소드와 과거의 영웅담에 대한 추억은 그들이 사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는 구실이며 핑계였다.
그 반면에 여자들은 얼마나 달랐던가! 그들 모두는 옛날과 오늘을 연결하는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과거의 소녀가 아니었다. 그동안 뭔가를 체험했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이 점을 알았고 또한 이야기할 수 있었다. 나는 그녀들의 생생한 체험을 모두 들었는데, 그녀들 하나 하나는 모두 흥미로운 인생소설의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그녀들의 이야기들 중 가장 많은 것이 깨어진 환상에 관한 것이었다. 믿었던 남편에 대한 실망이 주류를 이루었다. 내가 그녀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깨달은 것은, 그 남편들도 역시 지금 이 모임에 참석하고 있는 남자 동창들과 똑같은 종류의 인간이라는 사실이었다. 그 남편들도 내 동창들과 마찬가지로 뒤늦게 사춘기를 맞은 10대처럼 과장된 몸짓으로 허풍을 떠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여자들에게 그러한 남자들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남자들이란 어떤 경험도 한 적이 없는 듯한 인물들로, 감정이 삭막하고 자신의 이야기조차 제대로 할 능력이 없는 존재들처럼 느껴질 뿐이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아하! 여자들은 남자들이 모두 가면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구나! 남자들이 유치한 농담들을 해대는 것은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을, 남자들은 그런 식으로 자신의 비애를 숨긴다는 것을, 기회를 놓치고 허송세월하며 실수를 저질러 학창시절의 커다란 희망에 비해 형편없이 초라하게 지낸 세월이 한스럽지만 그 모든 것을 숨기고 싶고 고독하다는 것을, 그래서 일부러 철딱서니 없는 바보의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을 여자들은 꿈에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문득 개와 고양이의 관계와 유사한 이런 상황이 서로의 관계를 점점 복잡하게 할 뿐인 어떤 저주에 기인하고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 저자 머리말에서
언젠가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대학 복도에서 동료를 불러 세우고는 이렇게 물었다.
'여보게, 사람들은 왜 그렇게 오랫동안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믿었을까?'
동료가 즉시 대답했다.
'그거야 우리 눈에 그렇게 보이니까 그랬겠지.'
'만약에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또 자전한다고 사람들이 믿었다면, 사람들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
비트겐슈타인이 되묻자 동료는 깊이 생각에 잠겼다. 대답은 당연히 '그야 마찬가지였겠지'였을 것이다.
[...]
보이는 것이야 역시 똑같을 것이다. 다시 말해 남자의 낯선 행동은 여자의 눈에는 여전히 낯설게, 친근한 행동은 여전히 친근하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이치를 알고 보면 그 해석을 달라질 것이다.
--- p.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