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콜라사는 군인들의 코카콜라 사랑을 애국심과 연결시켜 광고함으로써 코카콜라를 ‘미국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코카콜라사는 1948년부터는 코카를 전혀 넣지 않은 코카콜라를 만들었다. 1950년 코카콜라는 전 미국 청량음료 시장의 50퍼센트를 점유했으며, 1960년엔 분당 4만 병, 1993년엔 전 세계적으로 1초당 4만 병이 소비되었다. 코카콜라는‘미국화’의 전도사가 되었다. 이런 현상을 최초로 포착해 의미를 부여한 것은 『타임』 1950년 5월 15일자 표지 기사였다. 이전에 『타임』이 상품을 표지 기사로 다룬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p.36「코카콜라는 어떻게 ‘미국의 상징’이 되었는가?: 코카콜라의 탄생과 성장」중에서
1890년대 말 미국에선 미국 민주주의 자체가 팽창정책의 결과로 여겨졌기 때문에 미국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어떤 형태로든 팽창정책을 택하지 않을 수 없다는 논리가 널리 유포되어 있었다. 이런 논리가 ‘백인의 의무’라면 어찌 그 의무를 소홀히 할 수 있었으랴. 미국의 영토 확장에 대해 미국 제25대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William McKinley, 1843~1901)는 ‘무시할 수 없는 우리의 의무’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1899년 2월 보스턴의 연회 청중에게 미국이 필리핀과 쿠바, 푸에르토리코를 통치하는 까닭을 설명하면서 “미국은 신의 섭리에 따라 그리고 인류의 진보와 문명의 이름으로 미국에 부여된 위대한 사명을 수행한다”며 “열대의 태양 아래에서도 미국의 소중한 원리는 변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깃발을 앞세우면서 함께 전진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 p.83「약육강식이 ‘백인의 의무’인가?: 제국주의의 ‘벨 에포크’」중에서
미국은 조선에 맏형처럼 느껴졌을망정 결코 믿을 만한 맏형은 아니었다. 아니 막내아우를 인신매매 시장에 팔아넘긴 몹쓸 형님이었다. 그러나 국제 관계에서 그런 형님-아우 관계가 어디에 있겠는가. 오직 힘이 모자란 탓이었다. 그 후로도 한동안 조선 지식인들이 적자생존(適者生存)과 약육강식(弱肉强食)을 이념적 기반으로 삼은 사회진화론에 심취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포츠머스 조약으로 누구는 노벨평화상을 받았다지만, 조선의 입장에선 그 사람에게 ‘악마의 저주상’을 줘도 시원치 않을 일이었으리라. --- pp.135-136「“포츠머스 회담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평화 회담”이었나?: 포츠머스 조약」중에서
1919~1920년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가 미국을 휩쓴 가운데 미국 정부는 두 해 동안 4,000명이 넘는 외국인들을 검거해 추방했다. 그 2년 여간 『뉴욕타임스』는 볼셰비키 혁명이 실패할 것이라는 예측을 91번이나 내놓았으며, 레닌과 레온 트로츠키(Leon Trotsky, 1879~1940)가 도망가거나 죽거나 은퇴하거나 투옥되었다는 기사를 13번이나 내보냈다. 이렇듯 열광의 전복으로 인해 생겨난 공포가 미국 사회를 지배하면서 미국은 지구상에서 공산주의에 대해 가장 적대적인 반공국가로 우뚝 서게 된다. 1950년대 초반 또 한 번의 ‘빨갱이 사냥’을 거친 후 미국의 공산주의자는 CIA와 FBI의 돈으로 연명한다는 말마저 나오게 된다. --- pp.198-199「‘열광’은 어떻게 ‘공포’로 바뀌었나?: 미첼 파머의 ‘빨갱이 사냥’」중에서
기술 발전엔 끝이 없었으니 성 혁명도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1930년대에 나타난 신기술을 하나만 들자면, 그건 바로 지퍼(zipper)다. 지퍼가 발명되어 편하게 구두를 신고 벗을 수 있게 된 것은 1893년이었지만, 현재 우리가 보는 형태의 지퍼로 특허를 받은 건 1917년, 현대적인 의류에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지퍼가 가볍고 유연성이 있게 된 것은 1930년대였다. 앨리슨 루리(Alison Lurie)는 “지퍼보다 더 섹시한 것은 없다. 지퍼는 빠르고 열정적인 섹스를 위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지퍼와 섹스가 무슨 관계란 말인가? 18~19세기의 정장 드레스에는 단추가 30개 달려 있었으며, 이후 단추 수가 줄긴 했지만 옷을 벗기까진 여전히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걸 상기할 필요가 있다. 『뉴욕타임스』가 ‘세계 역사를 바꿔놓은 지난 20세기의 베스트 패션’으로 지퍼를 선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 pp.225-226「섹스는 ‘마지막 프런티어’인가?: 프로이트 유행과 성 혁명」중에서
1940년대 후반에 가면 ‘미국의 세기’라는 게 점점 더 분명해진다. 예컨대, 미국은 1946년 연간 350만 대 자동차를 팔아치우고, 1949년 최초로 500만 대를 넘어서는 자동차 생산량을 기록한다. 이 지구상의 어떤 나라가 감히 미국의 이런 풍요에 대적할 수 있단 말인가.……무기 대여법에서부터 시작된 ‘미국의 세기’라는 표현은 수많은 사람에 의해 상시적으로 인용되면서 덕분에 루스의 명성까지 불멸의 왕관을 쓰게 된다. 그게 부러웠던 건지는 몰라도 훗날 모리스 버먼(Morris Berman)은 “20세기가 ‘미국의 세기’였다고 한다면 21세기는 ‘미국화된 세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는 ‘미국화된 세기’의 한복판에 살고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지속가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 pp.311-312「무엇이 20세기를 ‘미국의 세기’로 만들었나?: 미국의 무기 대여법」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