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준(laughter@yes24.com)
"상징폭력을 행사하는 권력은 모두 자신의 힘의 토대인 권력관계를 은폐한 채 의미를 부여하고, 거기에 다시 정당성을 부여하는 권력이다. 이 권력은 이를 통해서 권력관계에 자신의 고유한 힘인 상징권력을 추가한다.
객관적인 측면에서 볼 때, 모든 교육행위는 자의적인 권력을 통해서 문화적 자의성을 주입하는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상징폭력이다."
- 피에르 부르디외 「재생산」 중에서
이미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소수의 지배 엘리트를 양성하기 위한 매우 제한적인 제도로 이어져 내려오던 학교 시스템은, 근대적 국민국가의 등장과 더불어 공교육 제도로서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강력하고 보편적인 국민 교육의 관리·통제 수단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러한 의무 교육 시스템을 통해 대다수 국민은 교육받을 기회를 얻게 되지만, 그와 동시에 국가가 요구하는 가치와 문화를 일방적으로 배워야만 하는 굴레를 짊어진다.
배움의 내용과 형식이 국가에 의해 독점적으로 결정되는 공교육 시스템의 태생적 한계로 인해, 학교 교육은 개개 인간의 창조성과 다양성 계발을 돕지 못하고, 국가와 사회 체제에 순응하는 인간을 '제조'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기존 학교 교육의 이러한 일방주의적 속성에 대한 반발과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 바로 대안학교이다.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들을 가르치고 배우겠다는 것이다.
획일적인 학교 교육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알란 파커 감독의 〈The wall〉의 한 장면
끔찍이도 가혹스런 입시위주 교육의 현장, 한국 사회에서도 1990년대 초반부터 대안학교 운동이 본격적으로 꿈틀거린다. 1997년 3월에는 '간디청소년 학교'가 한국 최초의 전일제 기숙사형 대안학교로 문을 열게 되면서 비로소 그 첫발을 내딛는다. 하지만 새로운 교육, 새로운 학교를 꿈꾸는 대안학교 운동의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다.
이 글에서 소개하는 『대안학교는 학교가 아니다』라는 책의 제목은 현재 대안학교 운동의 지향하는 바와 현실적 제약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먼저, 대안학교 운동을 전개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대안학교는 기존의 공교육 시스템하의 일방주의적 학교 체제를 거부하고 배우는 사람들의 권리에 입각한 새로운 종류의 학교 교육이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학교'가 아니어야 한다.
맞물려 있는 문제이지만, 국가의 교육 시스템을 담당하고 있는 교육행정부처의 입장에서는 대안학교는 '인정된 학교'가 될 수 없다. 대부분의 대안학교가 국가에 의해 학교로 인가될 수 있는 제도적 조건(필수교과목 배정 및 수업시간, 검정교과서의 사용, 교사의 자격증 보유 여부, 학생정원·학급수 등등)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그 이유이다. 대안학교의 의의는 인정할지라도, 제도적 차원에서의 인가는 별개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법적 인가 조건'에 미달되는 교육 기관을 학교로 인정하게 되면 공교육 시스템의 법적 근거를 스스로 부정하는 자기모순에 빠지고 말기 때문이다.
이 책이 특별히 주목하는 바가 바로 위와 같이, 대안 교육이 제도상으로 겪는 갈등과 쟁점에 관련된 것이다. 기존 학교의 모습을 거부하지만, 제도적 차원의 지원(학력 인정 교육기관으로의 인가나 재정적 지원)이 절실한 대안학교측과, 대안학교의 취지는 인정하되 최대한 공교육 제도 안쪽으로 끌어안으려는 교육행정부처간의 긴장 관계 사이에 여러 유형의 대안학교가 위치해 있으며, 앞으로 대안학교의 안정적 정착에 그 둘 사이의 관계가 매우 중요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저마다 지향하는 바가 조금씩 다르고, 다양한 운영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는 국내외 여러 대안학교 사례를 현장 운영자의 목소리를 통해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점이나, "가르칠 권리에 앞서는 배울 권리의 입장"을 중시하는 학습권이라는 개념에 근거하여 대안 교육의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고, 향후 과제와 해결 방안까지 제시하고 있는 것도 다른 대안학교 관련서와 차별되는 이 책의 덕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