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에 좋아하던 사람은 그런 거 아닐까. 아니 사람이 아니라 좋아한 그 감정 속에 한계가 없는 아름다움이 숨어 있었던 것 같아. 그래서 차마 들추어볼 수가 없었던 거지. 나를 완전히 집어삼킬 것 같았거든. 하지만 만약 운명이 그걸 원했다면, 나는 그 속으로 들어가서 집어삼켜졌을 거야.”
*“한 가지만 기억해. 삶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부주의한 친절이야. 그건 주어서도 안 되고, 받아서도 안 돼. 세상의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고,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지만, 단 하나, 부주의한 친절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해. 그건 마치 약음기가 없는 피아노와 같은 거야. 처음에는 어떤 멜로디처럼 들리지만, 결국 모든 것이 엉키고 엉망이 되어버려서 연주를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무의미해져.”
*“시작해도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 생각해볼 사이도 없이, 이미 시작되어버리는 일들이 있어.”
낮은 목소리로, 시에나가 말한다.
“그래서 언제나 노력이 필요해.”
“무슨 노력이요?”
제이가 묻는다.
“사랑받지 않으려는 눈물겨운 노력.”
*‘왜 사람들은 모두 떠나버리는 것일까.’ 니나는 생각했다. ‘나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사람, 의지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어째서 영원히 곁에 머물러주지 않는 걸까? 왜 가장 필요한 순간, 가장 의지하고 싶은 순간에 사라지는 것일까? 그들을 사랑하게 되는 바로 그 순간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마음을 열었다고 생각한 바로 그 순간에, 아무 예고도 없이, 잡을 수 없는 곳으로 훌쩍 가버리는 것일까?’
*이 세상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진 달이 있고, 시에나는 한때 그 달을 만났다. 그녀는 그 달의 뒷면을 한사코 보지 않으려고 했다. 만남 뒤에 있는 이별이, 기쁨 뒤에 있는 슬픔이, 희망 뒤에 있는 절망이, 기억 뒤에 있는 완전한 망각이 그녀는 두려웠다. 달의 반 바퀴를 돌아 뒷면에 이르기 직전, 그녀는 그곳에서 뛰어내렸다. 누구도 그녀가 뛰어내린 것을 몰랐다. 그건 너무 갑자기, 아무런 전조도 없이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바그너별이라는 거, 알아?”
대니가 묻는다.
“그런 별이 있어?”
시에나는 창 너머 반짝이는 별들을 눈으로 헤아려보며 말한다.
“시속 51만 5천 킬로미터의 속도로 지구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 별이래.”
대니의 말에, 시에나는 잠깐 생각하고 묻는다.
“언제 도착하는데? 지구에?”
“2천6백 광년 뒤에.”
“어쩌면 우리의 영혼은 바그너별을 만나게 될지도 몰라. 2천 6백 광년 후에 말이야. 우리 영혼이 또 다른 육체를 얻어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나고, 2천 6백 광년 후에 다른 행성이나 깊은 터널 안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하지만 우리는 별이 아니어서, 바그너별 속으로 빨려 들어가거나, 먼 우주 어디론가 날아가 버릴지도 몰라.”
*사람이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 일, 호감을 느끼는 일,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일, 그런 일들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해서 어느 특별한 한 사람을 그 대상으로 삼게 되는 걸까? -본문 중에서
*“두 사람, 이제 어떻게 될까?”
“아주 클래식한 연인이 될 거야, 두 사람은.”
“아주 클래식한 연인?”
“손을 잡고, 같은 곳을 보고, 서로 의지하고, 슬플 때는 노래를 불러주고, 마음껏 울 수 있도록 가슴을 빌려주고, 가끔 오해를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오해가 풀리면 활짝 웃으면서 꼭 껴안아주고, 같이 나이 들어가고, 누군가 따라오지 못하면 기다려주고, 마음 졸이지 않고, 지나치게 드라마틱하지 않고, 일 초는 일 초의 무게로, 한 시간은 한 시간의 무게로 흘러가고,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책을 보고, 서로의 다른 생각에 귀를 기울이고, 너무 많이 기대하지 않고, 원망하거나 불신하지 않고, 함께 변해가고, 가끔 다른 길을 걸어가지만 다시 만나는…… 모든 것에 대해 솔직한, 모든 것에 대해 진심인…… 그런 연인.”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