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카를라
카를라와 나디아는 옆집에 사는 데다 같은 학년, 같은 반이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절친이 되었다. 게다가 둘 다 운동 신경이 뛰어나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다이빙 교실을 다니게 되었다. 다른 아이들이 어려운 동작을 배우면서 차츰 연습에 나오지 않게 되었을 때도 둘은 끈기 있게 다이빙을 배워서 마침내 함께 체육중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카를라는 특출한 재능 덕분에 ‘다이빙의 여신’으로 불리며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다. 나디아는 그런 카를라를 시샘하기는커녕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하면서 영원히 친한 친구로 지내고 싶다고 생각한다.
벌써 6년 전의 일이다. 그동안 우리는 열심히 다이빙을 배워서 올해부터는 체육중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진로와도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무척 신중하게 내린 결정이었다. 체육중학교에 들어감으로써 열네 살에 직업을 결정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체육중학교로 진학하는 걸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다이빙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다이빙이 없는 삶도, 카를라가 없는 삶도 상상할 수가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나와 카를라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유별나게 사이가 좋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았다.
다이빙 수업은 점점 난이도가 높아졌는데, 기본 동작 외에도 3미터 스프링보드에서 두 바퀴 반 공중돌기와 두 다리 벌려 물구나무서기를 해야만 했다. 수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열다섯 명의 아이들이 있었는데, 1년 뒤에는 여덟 명이 남아 공중돌기 연습을 했다.
아이들은 여러 이유로 다이빙을 중도에 포기했다. 어느 날 갑자기 말도 없이 연습에 빠지는 아이들이 생겼다. 어려운 동작을 배울수록 아이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마지막에는 카를라와 이자벨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명만 남았다. 그 후 로지가 나중에 합류했다. --- p.22~23
벽에 뚫린 구멍
다른 아이들은 나디아가 카를라에게 이용당하는 거라며 수군거리기도 하지만, 나디아는 자신들을 잘 모르는 소리라고 무시하며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둘의 평온한 일상을 뒤흔드는 사건이 일어난다. 카를라 엄마에게 남자 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카를라는 그 남자를 악마라고 부르면서 무척 혼란스러워한다. 나디아는 카를라를 돕고 싶어 하지만, 카를라는 혼자 괴로워하면서 나디아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만든다.
“어떤 아저씨랑 같이 왔어.”
카를라가 속삭였다.
“누가?”
“엄마가.”
“어떤 아저씬데?”
“모르겠어…….”
“그러니까 네가 모르는 아저씨란 말이지?”
“응, 지금 둘이 저기 앉아 있어.”
카를라가 벽에 난 구멍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랬다. 거기엔 구멍이 있었다. 일부러 뚫은 건 절대로 아니었다. 작년에 아빠가 책꽂이를 벽에 고정시키려고 드릴을 쓰다가 그만 벽을 살짝 뚫어 버리고 말았다. 아빠는 구멍을 당장 메워야겠다고 해 놓고선 금세 잊어버렸다. 구멍은 무척 작았지만 카를라네 집 거실을 훔쳐볼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마음만 먹으면 드라이버로 구멍을 더 크게 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차마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다.
잠시 뒤 카를라가 침대 위로 털썩 드러누웠다. 나는 카를라 곁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구멍 너머를 훔쳐보았다. 구멍이 무척 작았기 때문에 소파만 겨우 보였다. 하지만 더 볼 것도 없었다. 카를라가 왜 그토록 흥분하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카를라네 거실 소파에, 그러니까 우리 방에서 3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카를라 엄마와 웬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뭔가 나쁜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카를라 엄마는 와인을 마시고 있었고, 아저씨는 카를라 엄마의 손을 잡고 있었다. --- p.40~41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
카를라가 엄마의 남자 친구 때문에 갈팡질팡하던 차에 다이빙 대회가 열린다. 그런데 누구도 예상치 못한 카를라의 실수는 의외의 결과로 이어진다. 실수 없이 깔끔한 동작을 선보인 나디아가 대회에서 1등을 거머쥐게 된 것이다. 일인자인 카를라의 뒤에 가려져 있던 나디아의 재능과 노력은 이 대회를 기점으로 서서히 빛을 발하게 된다. 나디아는 카를라가 걱정되는 한편, 자신의 노력이 결실을 맺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데서 금지된 듯한 기쁨 또한 느낀다.
카를라는 누가 봐도 최고의 선수였다. 우리 모두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내가 1등이었다.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등수였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기쁨이 솟구쳤다. 아주 조그마한, 금지된 기쁨의 불꽃이었다.
솅크 코치님은 나에게 미끄러지지 않고 뛰는 사람이 최고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고는 카를라를 진심으로 위로해 주었다. 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카를라 주변에는 아무도 뚫을 수 없는 두꺼운 벽이 쳐졌다. 코치님이 아무리 말을 걸어도 카를라는 묵묵부답이었다.
그 침묵은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계속되었다. 우리 팀은 이번 대회에서 전반적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어서 버스 안의 분위기는 무척 부드러웠다. 마를론은 놀랍게도 3위를 했고, 알폰스 오빠가 돌본 어린 선수들 중에서도 두 명이나 1위를 했다. 그야말로 최고의 팀이었다.
나는 카를라가 1등을 못 해서 낙담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를라는 순위에 크게 연연해하지 않았다. 그 애에게는 완벽한 다이빙만이 중요했다. 완벽하게 다이빙을 했기 때문에 1등을 하는 거지, 1등을 하기 위해 완벽한 다이빙을 하는 건 아니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날은 자신의 다이빙이 완벽하지 못한 것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코치님도 심판들이 카를라에게 너무 가혹하게 점수를 주었다고 한탄했다. 심판들은 왜 다이빙 꿈나무에게 그토록 적대적이었던 걸까? 카를라의 추락을 은근히 즐기려 했던 건 아닐까? 만약 그랬다면 그건 카를라를 잘 모르기 때문에 가지는 생각이다. 카를라는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 아이가 아니라, 더 높은 경지에 스스로 도달한 다이빙의 여신이었다.
어쨌든 나는 기뻤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기뻤다. --- p.121~122
수면을 가르며
계속되는 방황 끝에 카를라는 폐렴에 걸려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다. 카를라의 상태가 안 좋아서 병문안을 가지 못하는 동안 다른 친구들은 카를라에 대한 험담과 미심쩍은 소문들을 퍼뜨린다. 얼마 후 나디아는 카를라의 병문안을 가게 되고, 그 자리에서 카를라가 숨기고 있던 비밀 이야기와 환각인지 꿈인지 모를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이후 둘의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두 번째는 낙하야.”
“낙하?”
“응, 너도 알 거야. 잠잘 때 이따금 몸이 아래로 뚝 떨어지는 느낌이 들잖아. 전에는 늘 깜짝깜짝 놀라곤 했어. 사람들도 롤러코스터 같은 걸 탈 때 아래로 떨어지면 놀라잖아. 나도 다이빙을 할 때마다 아주 조금이긴 해도 늘 놀라거든.”
“정말? 너도 놀란다고?”
다이빙을 할 때마다 나 역시 놀라곤 하지만, 카를라도 그럴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당연하지. 하지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다이빙을 하는지 아니?”
“글쎄.”
“떨어지는 게 정말 그렇게 나쁜 건지 궁금했어. 떨어지는 것만으로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지. 핵심은 부딪히지 않는 데 있어. 영원히 떨어지는 거지. 네가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떨어진다고 가정해 봐. 떨어지면서 아침도 먹고, 학교도 가고, 하교 후에 숙제를 하고, 수영장에서 운동도 하는 거야. 그러는 동안에도 넌 계속 떨어지고 있는 거지. 태어날 때부터 떨어지다가 마침내 부딪히면, 그건 죽음이야.”
“진짜로 그렇게 생각해?”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카를라는 내 질문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 말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떨어지는 시간을 잘 이용해야만 해. 다이빙할 때마다 삶을 송두리째 붙잡아야 하는 거지.”
“삶을 송두리째 붙잡는다고!”
“다이빙이 좋은 점은 떨어지는 것을 연습할 수 있다는 거야.”
“연습이라…….”
“나는 언젠가 삶을 송두리째 품은, 완전한 다이빙을 할 거야.”
--- p.206~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