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예술가의 초상
예술이란 무엇인가? 여자의 인생이란 무엇인가? 이 나이까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찬란한 바바리아의 초여름날 무성한 장미 덩굴의 그림자 아래 나로서는 대단한 답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흔하게 떠도는 사랑이란 단어가 유행가 가사 속에서 또는 영화의 한 장면 속에서, 한 권의 시집 속에서도 녹아드는 달콤한 그 단어를 나는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사랑은 인생의 옹골진 씨앗이었습니다. 그 씨앗은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싹을 틔우고 찬란하게 꽃을 피웠습니다. 사랑은 거짓이 없습니다. 순수한 사랑은 흐려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투명하게 비치는 고운 햇살 아래 흐르는 맑은 시냇물 같습니다. 맑은 시냇물 가에는 많은 꽃새들이 목을 축이려 몰려듭니다. 사랑은 결코 시들지 않고 싱싱하게 늘 다시 태어납니다.
지나온 세월을 뒤돌아보니 고향에 대한, 떠나온 내 나라에 대한 또 다른 형태의 사랑을 발견했습니다. 그 사랑의 꽃은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붉고 진하게 피고 있습니다.
예술가의 가슴속에 피어나는 그 향기 나는 꽃을 여러분에게 자랑하고 싶습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저쪽 끝에는 드물게 보는 푸른 하늘에 나풀나풀 까만 머리칼을 날리며 한국의 어린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토마스는 내 이마를 만져주며 외로우냐고 물었다. 그럴까? 그 외로움이 봄날의 내 생각과 풍경을 뒤범벅 시키고 있는 걸까? 뮌헨에 정착한 뒤로 바늘로 찌르는 듯한 심한 외로움을 느꼈다. 나의 외로움은 심하게 줄다리기를 하여 이국 생활을 힘들게 했다. --- p.17
“이히 리베 디히.”
토마스가 나의 어깨를 꽉 조이며 그 사랑의 단어들을 독일 시처럼 읊조렸다. 그의 긴 머리카락들이 내 얼굴 위로 물결처럼 쏟아져 내렸다. 갑작스런 일들이었다. 참 어이없고 말이 안 되는 것이었지만 여자에게 사랑이란 말같이 향기롭고 반할 말이 또 어디 있을까.(…) 그는 매일 그 꽃들을 작은 다발로 묶어 내게 전해주곤 했다. 꽃다발이라야 손바닥 크기보다 작은 것이었다. 밤이면 등불 밑에서 아이들에게 편지를 썼다. 엄마는 뮌헨에서 별거 별거 다 보고 좋다고, 유럽 여행을 포기하고 유진 윤수 장수 보고 싶어 빨리 한국으로 날아가겠다고, 편지를 쓰다 무심코 고개를 들면 흰 꽃들이 입을 오므리고 졸고 있었다. 달랑달랑 방울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 pp.24~25
봄이 뭉글뭉글 피고 있었다. 복사꽃이 온 천지를 덮고 아지랑이인지 안개인지 모를 봄의 그 아스므레한 습기가 땅 위에서, 늪가에서, 두엄 주변에서 피어오르는 계절이었다. 나는 그때 대학 때 시작한 첫사랑을 심하게 앓고 있어서 그 봄의 습기에 가슴이 저렸다. --- p.83
나는 뮌헨의 여름을 만끽하게 되었다. 한국의 초가을 날씨 같은 바바리아의 여름. 그런 날은 머리를 감고 짜릿한 여름 햇살 속에 머리를 말린다. 눈을 감으면 상념도 감겨져 그저 평화스럽기만 했다. 잔디에 누워 엷은 녹음의 그림자를 즐겼다. 이리 쾌적한 여름인데 게르만 민족은 “덥다, 덥다”하며 웃통을 벗었다. --- p.124
봄누리는 무럭무럭 자라고 나는 오줌 기저귀를 빨고 삶아 햇볕에 널고 “누리 누리 봄누리, 오줌싸개 봄누리” 하고 노래를 불렀다. 아이들은 봄누리를 서로 안아 어르며 “엄마, 봄누리는 공주님같이 생겼어” 하고 유진이가 아기를 유심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출생 때의 멍도 가시고 우윳빛 피부에 그린 듯한 눈이 박혀 있었다. 나는 공주님을 실제로 안은 셈이었다. --- pp.135~136
사랑! 사랑! 내 사랑아! 타령을 하며 사랑으로 자라는 아이들을 많이 만들기 시작하였다. 인형 속에, 작은 우주 속에, 독일 속에서 작은 희망을 보기 시작했다. 이웃들의 사랑이 등불이 되어 겨울 나그네의 손을 녹여주었다. --- p.142
미스터 그림은 나에게 뺨을 부비며 전시회의 성공을 축하해 주었다. 신문 평도 ‘종이의 마술사’라는 제목을 달아 대문짝만 하게 실렸다. 눈이 작은 아이 장수가 또 봄을 맞아 말수가 없어지고 마지못해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크게 쓰던 글씨는 점점 작아지고 그는 싫은 것도 좋은 것도 없는 무개성의 아이가 되었다. 유진이는 고등학교에서 제 세상을 만난 듯 여섯 과목이나 1점을 받아 그 성적이 학교에서 화제가 되었다. --- pp.157~158
한국에 계신 시어머니의 하얀 버선, 하얀 치맛자락, 그녀의 소곤거리는 고운 음성이 대낮에도 환상 속에 나타나서 나를 슬프게 했다. 그녀의 애정이 애절하게 다가왔다. 당신 손수 쓰다듬어 키우던 장수가 고통 속에서 있다는 걸 아실까. 치자 꽃처럼 향기로운 여자였다. 사람이 같이 살다보면 흉이 더 많은 법인데 덜렁이 미술선생 며느리를 맞아 놓고 흉을 보자기로 덮어 자신의 딸로 만드신 분이었다. --- p.175
나는 용감해지기로 결심했다. 나는 집에서만 쓰던 분홍 포대기에 아이를 업어 질끈 묶고 거리로도 나가고, 산책도 하고 물건도 사니 참으로 편했다.(…) 쓸데 있는 말만 하며 연극배우처럼 고상한 주부가 되어 병 걸려 죽는 것보다 나도 살아야 할 것 같았다. 화나면 화나는 대로 삿대질하며 부부싸움을 벌였다. 애들이 말을 안 들으면 상식 있게 조용히 타이르는 독일 엄마들과 달리 소리를 꽥 질러야 시원했다. 그랬더니 속의 멍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 p.195
하얀 아침, 하얀 바다, 나는 늘 바닷가에 앉아 있었다. 바닷가로 따로 갈 필요가 없이 우리 피난살이 집이 부둣가 동네에 있어 그저 나가면 바다를 볼 수가 있었다. 동네 악동들 틈에도 재주 없는 놀이꾼으로 끼워주지 않을 땐 마술을 하는 바다의 풍경에 그저 눈을 주고 하루를 보냈다. --- p.261
내가 외로워할 때 피아노를 전공하는 윤수가 큰 힘이 되어주었다. ‘사심 없는 평과 사랑’, 그 애가 그걸 주었다. 윤수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피아노 치는 걸 쉽게 생각하고 일등을 하곤 했을 때는 우쭐대는 마음으로 피아노에 열중하지 못했다고. ‘피아니스트가 사흘 안 치면 자신이 알고 일주일 안 치면 관중이 안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고. 열일곱 살 윤수의 예술과 자신에 대한 성실한 모습은 늘 내게 자극이 되었다. --- p.357
하얀 공간만 보면 나는 그리고 싶다. 만들고 싶다. 어린 시절 수북이 쌓인 문창호지들을 조몰락거려 인형도 만들고 강아지도 만들고 쥐도 만들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왔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새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그 생활의 일부를 독일로 시집가면서 뗄 수 없어 데리고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계속 만들었다. 물론 만들면서 생각이야 없었겠냐만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김영희의 전체를 반영한 건 사실이다. 슬프면 울며 만들었고, 기쁘면 기쁘게 만들었고, 돈이 없을 때는 어떡하나 하며 한숨을 넣어 만들었다. 예술이 내 몸을 떠나서 고상한 이념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은 나는 천금을 줘도 받아들일 수 없다. 우선 내가 위로받아야 되므로. 그래서 나의 일은 위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 인생의 일부인 것이다. --- p.359
나는 크고 부드럽고 아름다운 고향의 서정을 짜 넣어 재봉한 야회복을 입고 있었다. 이제 나는 전후 가난한 시대의 소녀가 아니었다. 나는 먼 바바리아 땅에서도 고귀하고 풍요한 공주님으로 살 것 같았다. 가슴이 부풀었다. 큰 희망이 샘솟았다.
‘세계적인 작가.’ 그것이 허세라도 꼭 해낼 것 같다. 이제 나는 술술 말할 줄 알고 거침없이 들을 줄 아는 똑똑한 여자임을 고국에서 확인했으므로. 그리고 배꼽 잡을 정도로 웃을 수 있는 힘이 내게 있으므로.
--- p.3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