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기를 매우 열심히 쓴다. 그래서 책꽂이에는, 나에게 일어났던 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로만 꽉꽉 채워진 두꺼운 일기장이 꽤 여러 권 꽂혀 있다.
일기장을 고를 때는 늘 최대한 두꺼운 것을 선택하는데, 그 이유는 일기장에 그림도 그리고, 사진도 붙이고, 영화표를 비롯한 각종 공연 티켓들도 붙이고, 기타 잡다한 스티커들도 덕지덕지 붙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기장 한권을 다 쓸 때쯤이면, 그 두께가 처음 샀을 때보다 한 두세 배 정도는 불어 있다. 그렇게 일기장이 뚱뚱하게 살이 찔 때마다 내 마음도 넉넉해지는 것 같아서 흐뭇해진다.
내가 처음으로 전력을 다해 일기를 쓰기 시작했던 때는 대학교에 입학했던 2002년도 5월부터다. 그때 나에게 처음으로 남자친구가 생겼었다. 처음 가져보는 이성친구에 흥분한 나머지, 하루하루의 행복한 기억들을 잊지 않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소중했기 때문에 마치 기록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예컨대 막중한 임무를 가진 사관처럼 일기장을 들고 다니며 모든 것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심지어는 만약 그가 나에게, 꼭 내 마음에 드는 다정한 문자를 보내주었다면 그것까지도 기록해두곤 했었다.
그때 나는,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열심히 일기를 쓰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 행복했던 순간들이 지나가고 한참 지난 지금에 와서 예전 일기들을 읽다 보니까 그 이유를 쉽게 알 것 같았다. 결국 내가 그토록 열심히 일기를 썼던 이유는 바로 소중한 기억이 잊혀지는 것을 무척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중까지도 두고두고 기억할 수 있도록 그렇게 정성을 들여서 따뜻했던 순간들을 기록해두었던 것 같다.
그 소중한 순간들 속에서 두 사람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머나먼 곳으로 떠나가버렸다. 바로 할아버지와 할머니……. 나의 지나간 모든 기억들이 전부다 하나같이 소중하고, 그 모든 기억들을 될 수 있는 한 가장 온전한 상태로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지만, 그중 가장 온전한 상태로 가장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은 기억들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할아버지 할머니에 관한 추억들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쓸 결심을 했고, 이 책이 나오게 된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글을 쓰는 동안 많은 즐거움이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기억 그리고 그밖의 여러 소중한 기억들을 깊고, 편안하게 써내려가면서 다시 한번 내 나름대로 추억들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게 무엇보다 기뻤다. 그리고 책이 나오는 순간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아련한 그 기억들이, 마치 자기에게 꼭 알맞는 편안한 집을 찾기라도 한 듯이 그 집으로 걸어 들어가 언제까지고 온전한 상태로 보관되어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것은 나에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흥분되는 기적과도 같은 행복이고 마법이다.
--- pp.18~20, '김유미, 「머리말」' 중에서
사실 난 여섯 살 때 단편소설 하나를 지은 적이 있다.
소설이라기보다는 동화에 가깝지만 ‘그냥 한번 지어본 것’ 치곤 친척들에게서 상당히 호평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무엇이든 처음 듣는 낱말이 있으면 한번은 꼭 써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나였기에 ‘쌍둥이’라는 단어와 ‘쌍코피’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날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쌍둥이’를 소재로 지어진 그 소설은 언니의 강력 추천 끝에 할아버지께서도 읽게 되었고 할아버지 서재의 책상 서랍 속에 몇 년 동안 간직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언니가 명절에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그 소설을 할아버지 댁으로 들고 가 온 친척들 앞에서 나를 망신시키고 말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제목은 ‘쌍코피 터진 세쌍둥이’였다.
내용은 참으로 단순했다. 옛날 옛적에 어느 평화로운 마을에 세쌍둥이가 사이좋게 살고 있었는데, 가끔 한명씩 원인 모를 쌍코피가 터지는 것이었다. 의사 선생님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는 그런 내용이다. 엄마는 아무리 다시 읽어도 이 소설은 너무나 엽기적이라며, 이런 글을 할아버지께서 읽으신다면 얼마나 놀라시겠냐면서 절대로 할아버지께 보여드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었다. 그러나 “할아버지, 엄마가 이거 할아버지한테 보여드리지 말랬어! 너무 이상하다구!”라고, 그 말까지 언니가 홀라당 할아버지께 일러바치는 바람에 할아버지께서 엄마를 나무라셨다. 어린아이가 쓰는 글은 다 참신하고 독특하며 나름대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왜 어른이 어른의 기준으로 이런 건 좋으니까 써라, 이런 건 좀 이상하니까 쓰지 말라 이렇게 평가하냐면서 말이다. 그냥 아이가 쓰면 뭐든지 쓰는 대로 내버려두라고 말씀하셨고, 시아버지를 하늘처럼 존경하는 엄마는 그 다음부터 내가 무엇을 쓰든지 박수를 치며 열렬히 환영해주셨다.
어린 시절의 내 소설과 시에는 코피 나는 소재가 자주 등장했는데, 그 이유는 따로 있다. 사실 나는 어릴 때 자주 아프고 웬일인지 코피가 자주 나서 죽도록 싫어하는 이비인후과에 자주 끌려가곤 했다. 엄마 말씀에 따르면, 이비인후과에만 가면 갑자기 킹콩으로 돌변하여 모든 병원 도구들을 발로 차고 울고불고 소리 지르고 함으로써 내 주변에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했고, 그 병원의 모든 간호사 언니들과 의사선생님은 상당히 다정하고 친절한 분이었는데도 나의 존재를 굉장히 두려워하시며 나만 가면 안색이 창백해지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소재가 등장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일생 일대 처음 써본 소설을 좀 더 귀중히 간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끔 언니가 그 소설을 개작해볼 것을 권유했지만 그때마다 ‘처음이 아니면 가치가 없다’는 명분으로 거절했었다. 어린 나이에 뭘 안다고……. 그 다음부터 쓴 소설은 그때만큼 사람들의 뇌리에 박히지 못했다. 아무래도 세쌍둥이와 쌍코피라는 두 소재가 너무나 절묘하게 어울려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던 모양이다.
--- pp.250~253, '김유빈, 여섯 살 소녀의 첫 소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