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향기를 풍기는 사람들
(노숙 생활을 했던)형근 씨는 최악의 상태로 병원에 왔고, 이제는 입원을 시켜 마지막을 편안하게 맞을 수 있도록 호스피스 해주는 일만 남은 것 같았다.
다시 입원한 형근 씨는 떠나기 며칠 전 이렇게 말했다.“과장님, 그동안 고마웠십니더.”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지난 10달 동안 미운 정 고운 정이 많이 들었던 모양이다.
다음날 저녁, 퇴근길에 영안실에 들렀다. 영정 속의 형근 씨가 날 보며 물끄러미 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형근 씨, 고함쳤던 나를 용서해주지 않을래요? 용서해주실 거죠?….’
젊었을 때 딴따라 생활을 했다는 형근 씨.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편하게 누워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지 않을까….
가난한 이웃의 문제, 무엇보다 잠잘 곳이 없어 거리에서 자야 하는 사람들의 문제에 더욱 큰 관심이 필요하리라. 마더 테레사의 말처럼 가난한 사람들도 고귀하게 죽어갈 장소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노숙자들의 몸에서 풍기는 고약한 냄새를 구호병원 수녀님들은 가난의 향기라고 말한다. 가난의 향기를 그리스도의 향기라 여기며 하루하루 내게 주어진 일을 하다가 하늘나라에서 형근 씨와 반갑게 다시 만나 얼싸안고 싶다.
--- pp.21-22
가난한 사람들의 겨울나기
항문 검사를 해보니 수술했던 곳이 다시 발그스레해져 있었고 살짝 눌렀더니 조금 아파했다. 통원치료를 해도 괜찮을 듯했지만 추운 날씨에 다리도 불편한 사람이 움막 같은 집에서(몇 번 집으로 찾아간 적이 있는데 그 모습이 겹쳐 떠올랐다) 혼자 겨울을 날 것을 생각하니 차마 통원치료 하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입원하십시다, 요한 씨.”
이런 경우는 얼마간 사회 입원이다. 굳이 병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다른 까닭으로 입원을 결정하는 경우였다. 주방 수녀님에게 밥을 꼭꼭 눌러 담아 달라고 부탁도 했다.
--- p.74
환자 유인행위?
가난한 달동네에 있는 병원이라 그런지 환자들 가운데는 사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참 많다.(중략).. 이럴 때는 일부러라도 생활 형편을 물어본다. 그리고 딱한 사정이라도 듣게 되면 병원에 내는 본인 부담금을 받지 않기도 한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가 되고 말았다. 며칠 전 김 원장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행임, 국민건강보험 공단에 아는 사람 없능교?”
“와”
“일주일 전에 보험공단 지사에서 환자 진료자료를 제출하라케서 컴퓨터에서 복사를 해서 냈는데, 또 3일 전에는 환자 진료대장을 요구해서 줬어요.”
“뭐, 우리가 잘못한 기 없는데 뭐 어떻겠노?”
그러고 보니 요즘 환자 진료를 하면서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다. 환자들의 말에 따르면 보험공단에서 전화가 와서 꼬치꼬치 캐묻는다는 것이었다. 몇 월 몇 일 어디가 아파서 남부민의원에 진료받으러 간 적이 있느냐, 공휴일에도 진료를 하더냐, 저녁 9시 가까이에 병원에 간 적이 있느냐, 돈을 안 받고 진료해준 적은 없느냐 등등. (중략)
국민건강보함상의 본인 부담금 면제를 의료기관에서
직접 하는 것을 의료법으로 금하고 있고, 돈을 받지
않고 진료를 하게 되면 현행 의료법상‘환자 유인행위 금지조항’에 대한 위반의 소지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 병원의 특수성에 대해 여러 차례 이야기해 보았지만 보험공단 직원은 늘 원칙적인 이야기만 했다. 여기에 김 원장과 나의 고민이 있었다. 오죽하면 이중장부를 만들자는 이이기까지 했을까? 이중장부를 만들어 환자들에게 돈을 받았다고 하면 문제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중장부는 정말 싫었다. 양심을 속이는 짓이기 때문이다.
(중략)....
김 원장은 마음이 불안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건강보험공단 지역 본부에서 일하고 있는 동창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니도 알다시피 가난한 달동네에서 진료하고 있는데 와 그리 환자들에게 전화를 해대냐? 환자들이 불안해하면서 아픈 곳에 대한 이야기보다 전화 받은 이야기부터 먼저 한다 아이가! 좀 알아서 해봐라.”
중학교 때 배운 영어 문장 중에 ‘예외 없는 규칙은 없다(There is no rule without reception)'라는 말이 있었다. 예외 없는 규칙은 오히려 비합리적일 수 있다. 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행정 처분이라도 받게 되면 그 기간 동안 푹 쉬면서 여행이나 다닐까 싶다. (중략)
환자만 정성껏 돌보고 싶다. 다시 월급쟁이 의사로 돌아갈까? 이중장부를 만들어, 말어? 내일 보험공단 직원들이 병원으로 나온다고 한다. 쉬는 날이지만 병원에 나가야 할 것 같다. 이런 젠장!
--- p,105
엄지손가락이 된 글렌의 발가락
새해 들어 좋은 사람들과 첫 산행을 했다. 이번 산행에는 노동 사목 식구들과 필리핀 이주노동자 글렌이 함께했다.
글렌은 덕포의 한 신발공장에서 일하다가 프레스 기계에 오른손을 다쳐 엄지와 검지, 중지가 잘리고 으깨져버렸다. 1차 수술로 간신히 검지 일부분을 살렸고, 상처가 아문 뒤 가운데 발가락을 잘라 엄지손가락을 만들어 붙였다. 이식 수술을 했지만, 앞으로 물리치료를 계속 한다고 해도 손가락의 기능은 겨우 무엇을 집는 정도밖에 안 될 것이다.
오늘도 산업현장에서는 노동자들의 손가락이 잘려나간다. 글렌의 손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내 마음이 이렇게 아픈데 글렌은 오죽하랴! 1년 하고도 4개월 동안 그가 앓았을 아픔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중략)...
“글렌, 필리핀으로 가면 뭐 할 거니?”
“2년 동안 공부할 생각이에요, 대학원에서 환경학을요.”
글렌은 필리핀 사범대에서 환경과학을 전공했다. 그의 아버지는 변호사로 은퇴했고, 글렌이 아들을 위해 한국으로 건너온 지 4년 4개월이 되었다.
글렌의 손을 만져본다. 참 많이도 만져본 손이다. 엄지손가락은 셋째 발가락을 끊어다 옮겨 심었다. 검지는 손등에서 잘렸기 때문에 아예 없다. 경우 엄지와 중지 사이에 연필을 끼우고 쥘 정도다. 그놈의 신발 공장 프레스에 짓눌리지만 않았어도….그래도 여러 번의 수술로 이나마 회복된 것이다. “손 수술에 만족하니?”
“네, 만족합니다.”
글렌이 씩 웃어보였다.
글렌을 위한 환송회를 열었다. 모두들 그의 앞날에 축복이 있기를 바라며 함께 잔을 나눴다. 무너진 코리안 드림이었지만 그래도 작별 인사말에서 자신은 참 행복했노라고 말하는 글렌.
“저는 참 운이 좋았어요.”
글렌은 지갑을 꺼내더니 옆에 앉은 내게 아들 사진을 보여주었다. 4년 전에 찍은 사진이라고 했다. 아들을 위해 아버지가 낯선 남의 나라에서 손가락 3개를 잃어버렸구나!
자리를 옮겨 2차를 갔다. 글렌이 노래를 한 곡 불렀다. 평소 술을 마시지 않는 나였지만 그날은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초이(choi) 행임, 꼭 필리핀 바기오로 오세요.”
“그래 알았다. 신부님이랑 꼭 갈게.”
더 이상 머뭇거리면 눈물이 날 것 같아 얼른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 p.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