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질문과 (특히) 이야기가 우리를 감싸는 삶을 직조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우리의 경험에 형태를 부여해주고, 순간순간을 모아 일관성 있는 움직임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사람은 좌절이나 의혹 속에서 질문을 던진다. 그에 따라 이야기가 생겨난다. 그 이야기에는 우리가 찾고 있는 답이 담겨 있고, 내가 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서 있다. 그러는 동시에 같은 경험과 느낌을 공유한 사람들과 나를 연결해 줌으로써 내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을 갖게 해준다.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영혼이 이어지고 삶은 계속된다.
--- p.9, 엮은이가 전하는 이야기
(...) 이것은 내 개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이것은 내가 어떻게 세상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난 12년 동안 나는 밤낮으로, 날씨가 아무리 굳다고 해도 녀석을 산책시키기 위해 ‘밖으로’ 나가야 했다. 내가 자란 곳은 시카고 교외에 자리한 스코키라는 지역이었는데, 시골에 가까웠음에도 불구하고 그때까지 내게 ‘밖으로 나간다’라는 것은 영화를 보거나 쇼핑을 하러 다운타운에 간다는 뜻이었다. 개를 키우기 전까지는 말이다. 녀석을 키우면서 나는 진정한 산책을 알게 되었고,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나는 정말 ‘밖으로’ 나갔던 것이다!
나는 땅이, 자연이, 대지가 몹시 아름답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동안 어떻게 모른 채 살 수 있었을까? 처음 나섰던 늦은 밤의 산책이 기억난다. 뺨에 한기를 느끼며 발걸음을 멈추고 눈을 감은 채 나는 생각했다.
‘밤이란 바로 이런 느낌이구나.’
나는 나무들이 한숨을 쉬고 나뭇잎들이 이마를 찌푸린다는 사실을, 나뭇가지들이 왈츠를 추고 꽃잎이 노래하며 떨어진다는 것을 몰랐다. 늘 대리석처럼 하얗게 빛나는 줄 알았던 달이 매일 미묘하게 모양과 색을 바꾸며 하늘에 걸려 있었다. 그리고 별들. 나는 별들을 제대로 바라본 적이 없었다. 매일 밤 보석처럼 하늘을 수놓는 그 별들을 말이다. (...)
--- pp.57~58, 내 생애 첫 산책
(...) 야라가 삶이 주는 고난에 대처한 방식을 보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야라는 다발성경화증이라는 난치병을 오랫동안 앓았지만 결코 그것에 잠식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그 병에 잠식되고 있었다. 나는 야라를 괴로움으로부터 구해야 한다는 숙제를 푸느라 지쳐가고 있었고 좌절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진짜 숙제는 괴로움을 겪는 딸과 함께 살아가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삶이 내 앞에 가져다 놓은 어려움에 극복하는 데만 온 마음을 쏟는다면, 내 세계가 가지고 있던 아름다움이 퇴색될 수 있다. 내 영혼은 빛의 씨앗을 지니고 있으며, 나는 가끔씩 멈춰 서서 그것을 바라보고 귀를 기울이고 싹틔워야 한다. 야라는 침묵으로 나에게 음표와 음표 사이에는 쉼표가 존재하며, 그 때문에 삶이라는 음악에 생기가 더해진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 p.54, 아름다운 침묵의 소리
(...) 이제 나는 서른여덟 살의 공인회계사다. 항상 노력했고, 이제는 안정적인 삶을 누리고 있지만 그래도 공허한 느낌이 드렁T다. 언제난 나를 완성해 줄 뭔가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 아침 침대에 누워 그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하는데, 네 살짜리 아들이 다가와서 내 옆에 누웠다. 이 아이는 내 안에서 무엇을 볼까? 내가 우리 엄마에게서 봤고 엄마가 내 안에서 보Tejs 특별한 빛을 볼까? 골똘한 생각에 빠진 내 품으로 파고들며 아들이 말했다.
“엄마, 엄마 이마가 반짝반짝해. 예쁘다.”
커튼 사이로 스며든 아침 해가 머리맡에 쏟아지고 있었다. 아름다운 아침이다.
--- p.69, 엄마 이마가 반짝반짝해
할머니의 장롱 위에는 녹나무 상자가 하나 있었는데, 그 속에는 몇 줌의 흙이 들어 있었다. 어디에서 난 흙이냐고 묻자, 할머니는 ‘고향에서’라고만 대답했다. 훗날 듣기로 할머니는 80년이 넘도록 그 상자를 지니고 다녔다. 3등 선실에 몸을 싣고 고향을 떠나온 할머니가 긴 항해 끝에 어느 섬에 닿았을 때, 낯설고 척박한 땅이지만 그곳에 마음을 주려고 상자 속에서 흙 한 줌을 꺼내 살짝 발밑에 뿌렸다고 했다.
내 삶에는 그 흙에서 싹튼 씨앗들이 있다. 온갖 망설임에 억눌려온 삶이지만, 어둠속에서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할머니가 내게 전해 준 이야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안에 인생을 찬란하게 빛낼 빛의 씨앗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소원한다. 그 씨앗들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 열정과 충만함을 알게 되기를. 우리 모두 침묵의 시간을 견디고 지혜를 얻을 수 있기를.
--- p.217,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