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史_ 김치의 역사를 맛보다
공자도 김치를 먹었다?
김치에 관한 첫 기록은 2600-3000년 전에 쓰여진 중국 최초의 시집, 『시경 詩經』에 나와있다. “밭 두둑에 외가 열렸다. 외를 깎아서 저(菹)를 담자”는 구절이 있는데 ‘저(菹)’가 김치의 시조 始祖다. 『여씨춘추』에서는 ‘공자가 콧등을 찌푸려가면서 ‘저’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김치의 원형이 된 채소를 소금에 절여 먹는 방식은 역사가 꽤 오래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시경』의 기록 연대와 비슷한 기원전 2000년대 유물 중 볍씨과 함께 박씨, 오이씨 등이 출토돼 야채를 재배해 ’저‘와 같은 발효식품을 먹은 것으로 보아 김치의 역사는 족히 삼천 년은 된다.
한국인이 김치 없이는 못 사는 이유는?
미역 味域이라는 말이 있다. 혀가 맛을 느끼는 영역을 말하는데 서양 사람들은 오원미 五元味인, 짜고 달고 쓰고 시고 매운 맛밖에 모른다. 이에 비해 한국 사람은 감칠맛 하나를 더 체질화한 육원미 六元味민족이다. 감칠맛은 김치가 시기 전 산패 직전에 나는 맛난 맛으로 맛깔스런 김치나 맛이 든 젓갈에서 나는 ‘삭은 맛’이다. 발효에서 생기는 이 독특한 맛은 김치를 주식으로 삼아온 우리 민족의 혀에서만 오랫동안 체질화된 것으로 한국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맛이다. 서양보다 한 단계 위의 섬세한 혀를 가진 우리 민족은 그래서 미식 美食 민족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고깃국을 질려서 몇 끼 못 먹지만 된장국이나 김치는 평생 먹어도 괜찮은 이유는, 고깃국에 기름기가 많아서가 아니라 한국인에게 체질화돼 있는 ‘삭은 맛’이 없이 때문이다. 외국에 가서 서양식을 몇 끼 못 먹고 한식으로 돌아오고 마는 맹렬회귀성도, 곧 6번째 혓바닥 미역의 욕구불만 현상인 것이다. --- 본문 중에서
風俗_김치의 일생을 읽다
아마도 이 책의 백미는 이 파트가 아닌가 한다. 김치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엄마 자궁에서 태어난 신생아가 한 사람의 성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비밀스런 일기처럼 담담하면서도 통찰력 있게 적어 내려간 글은 ‘김치의 일생’으로 읽어도 부족함이 없다. 배추 씨를 심는 일에서 그 배추가 소금에 절여지고 여러 양념과 젓갈과 야채가 몸을 섞고 그것이 발효라는 마술의 과정을 거치는 과정은 마치 구조가 단단하고 완벽한 소설을 읽는 것처럼, 돌덩이가 금이 되는 연금술을 지켜보는 것 같은 신비로움이 든다.
김치, 그 천년 맛의 비밀을 여는 11가지 말
가꾼다_우리 조상들은 제 몸 가꾸듯 푸성귀를 가꾸었다. 우리 밭농사는, 마치 아이 안고 어루만지고 쓰다듬고 긁어주고 어르듯이 손과 정성을 많이 쏟았다. 다듬는다_김치는 재료를 다듬을 때부터 바로 손가락 맛이 들어간다. 우리 조상들은 모든 작물에 가급적 칼을 대지 않았는데 모든 생명을 파손시켜서는 안 된다는 심정적 패러다임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씻는다_모든 푸성귀는 세벌 씻는 게 관례다. 세벌 씻고도 맑은 물에 헹구는 과정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무나 배추 같은 모든 푸성귀는 뿌리 근처의 겹친 잎새 사이사이, 속칭 사타구니 부위의 청결이 가장 중요하다. 썬다_모든 김치는 칼을 대지 않고 통째로 담그는 것이 원칙이었다. 발효는 신명이 좌우하는 신비스런 과정이어서 쇠가 닿는 것을 꺼린 까닭이다. 간다_우리 조상들은 음식 재료를 다졌을 때, 으깼을 때, 절구로 빻았을 때에 나는 미각의 차이에 별나게 민감했다. 김치 담그기에서 ‘간다’는 동작은 마술처럼 정교하고 신비로운 과정이다. 절인다_‘절인다’는, 옷에 땀이 절고 아기들 바지가 오줌에 절며 님 멀리 두고 그리다가 마음에 사랑이 저려오듯이 ‘서서히 조금씩 간을 배게 하는 과정’을 말한다. 담근다_김치 맛의 오묘함은 소의 배합에 따른 마술에서 온다. 절인 배추에 마술을 부릴 소를 만들어 독 속에 차곡차곡 쟁이는 과정을 ‘담근다’고 한다. 삭힌다_맛깔스런 김치나 맛이 든 젓갈에서 느끼는 가장 한국적인 맛은 발효돼서 나오는 ‘삭은 맛’이다. 갊는다_김치 보존 상한온도를 가장 가깝게 유지해 주는 것이 응달에 놓인 독으로 김치를 갊는 전통의 위대한 창조물이 독이다. 묻는다_흙의 단열효과를 십분 활용한 것이 바로 ‘묻음’의 지혜다. 덮는다_보온 보습 통풍이 뛰어난 짚 속에서 김치가 익어간다. --- 본문 중에서
材料 김치는 무엇으로 단련되는가
김치를 만드는 데에 이렇게 많은 재료가 필요 했었나 새삼 놀라게 되는 이 장은 김치 담그는 데 사용되는 야채, 양념, 젓갈의 향연이 펼쳐지면서 김치 재료 하나하나에 숨어있는 속담, 습속, 효용, 습관, 지혜가 마술처럼 술술 풀린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먹는 김치 한 점에 이렇게 많은 전설과 효용과 이야기가 숨어있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타다보면 저절로 맛있고,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새우젓_옛날 산촌에 새우젓 장수가 들르면 처녀는 중신아비 들르는 것보다 반갑고, 서방님은 장모 들르는 것보다 반가웠다는 속담이 있다. 새우젓장수는 부잣집 사랑에 모셔졌고, 젊은 무당을 곱게 단장시켜 슬며시 그 방에 넣어주곤 했다. 또 신라 신문왕이 김흠운의 딸을 왕비로 삼을 때 예단으로 보낸 품목에 이미 새우젓이 들어 있었을 정도로 새우젓은 귀한 영양의 보고였다.
조기_ 바닷속에 넣은 죽통을 통해 조기 암수가 사랑의 약이 올라 울어대는 것을 감지한 후 그를 잡았는데, ‘약조기’라 해 상품 上品으로 쳤다. 사랑을 맛으로 전환시켜 감식한 미각이 참으로 형이상학적이다. 김치라는 문화적 마술에 조기젓갈의 비중은 막대하다.
어리굴젓_해가 돋는 동쪽으로 머리를 두고 있는 굴을 보면 굴 따는 여인들이 얼굴 붉히며 치마 속에 감추느라 허겁지겁한다는 말이 있는데, 남편에게 먹이면 밤새 보채는 사랑의 묘약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굴 중에서는 서산 간월도의 어리굴젓이 제일이다. 이곳에서 나는 굴은 알이 작은 데다가 고춧가루를 알맞게 흡수하는 솜털이 나 있어, 어리한 맛을 내는 데 당할 굴이 없다.
생강_율곡 이이는 제자들에게 세상에 나가면 생강처럼 매서운 개성을 지니고 생강처럼 맛을 맞추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생강의 맛 자체는 아주 강하나 세상의 모든 음식에 생강을 넣으면 보다 좋은 맛으로 달라질 뿐 제 맛을 손상하는 법이 없다. 그래서 ‘생강 같은 사람’ 이란 화이부동 和而不同한-화합하되 같아지지 않는 사람을 의미한다. 어느 시대건 가장 이상적인 인간형이다.
무_『후한서』 ‘유분자전 劉’盆子傳’에서 장안에 적이 들어와 궁전을 둘러쌌을 때 1천여 궁녀들이 항복하지 않고 일년을 무를 가꿔 먹으면서 버티었다 할 만큼, 무는 당시 재배작물로 보편화돼 있었다. 6천여 전 이집트에서도 무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무는 오래되고 유용한 야채이면서 영원한 김치의 재료다.
씀바귀_중국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어미 젖을 먹이기 전에 오향 五香이라는 다섯 가지 맛을 보인다. 맨 먼저 초 한 방울을 핥게 하면, 아이는 얼굴을 야릇하게 찡그린다. 이어 소금을 핥게 하고, 씀바귀대를 자를 때 스며나오는 하얀 젖 빛깔의 즙을 입에 떨어뜨린다. 아이는 오만상을 찌푸리고 울어댄다. 그렇게 다 울고 난 다음에야 달디 단 사탕을 핥게 한다. 이는 성인이 되기까지 신 맛, 짠 맛, 쓴 만, 아픈 맛을 맞보고 그를 감내하지 않으면 인생의 단 맛을 알 수 없다는 음식철학이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