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잠자리에서 머리를 숙여 기도를 하곤 했는데, 그건 내 얘기를 들어주는 누군가의 존재를 믿어서였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늘 믿고 있었으며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는 것만 안다. 낯선 소년들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면서 내 곱슬머리에 대해 인종차별적 욕설을 퍼부은 일, 덩치 큰 사내아이들에게 벗은 몸을 보여주고 야구 카드를 얻어낸 일, 가톨릭 신자인 단짝 친구 아빠가 자기 딸을 두들겨 팬 일 등을, 난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 사랑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정신없는 머리 모양을 하고는 온 뼈와 살과 눈에 터질 듯한 희망과 비밀과 두려움을 담은 채, 말없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 서장 두려움과 떨림 “사랑받고 싶었던 어린 시절” 중에서
밤마다 마지막 잔에는 수면제를 타 마셨다. 그리고 이튿날 느지막이 일어나 두어 시간 글을 쓴 후, 동네 주류 판매점으로 듀워스 1파인트를 사러 간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팻의 위스키 병을 채워놓은 다음, 종이봉투에 1파인트짜리 빈 병을 넣어 내다버리기 위해 자전거를 끌고 나선다. 빈 병을 버릴 때마다 여간 신경이 곤두서는 게 아니었다. 누군가의 눈에 띄면 나한테 알코올 문제가 있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충분했으니까. 혹시라도 봉투를 땅에 떨어뜨렸다간 요란한 소리와 함께 병이 산산조각 날 것이고, 그러면 모든 게 끝장이라는 두려움에 떨었다. 나는 많은 시간을 두려움 속에서 지냈다. 물론, 내 생활에 멋진 측면도 없지 않았다. 나는 글을 썼고 친구들을 사랑했으며 이런저런 아름다움을 느끼며 살았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패미와 함께, 그녀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밀 밸리의 자전거 도로를 따라 산책도 했다. 매일 밤 나는 다시는 팻의 위스키를 입에 대지 않겠노라고 맹세했다. 대신 와인 한두 잔 정도로 만족하겠노라고. 그러나 팻이 잠자러 들어가면, 나도 모르는 사이 위스키를 들이켜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 서장 두려움과 떨림 “중독의 나날” 중에서
당시 패미는 2년째 유방암과 투병 중이었다. 나한테는 또, 하루에 두세 차례 전화 통화를 하는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다. 그해 11월 초, 하늘에서 커다란 지우개가 내려와 내 눈앞에서 패미를 지우고 상호 동의하에 헤어진 남자친구도 지워버렸다. 바위 덩어리 같은 슬픔이 가슴을 짓눌렀다.
그 시절의 나는 슬픔은 가능한 한 빨리, 혼자 극복해야 한다는 허울 좋은 거짓말에 번번이 속아 넘어갔다. 하지만 이후에 내가 터득하게 된 사실은 슬픔을 두려워만 하다간 평생 메마르고 고립된 삶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오직 슬퍼하는 것만이 슬픔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통을 잊기 위해 무슨 일을 하건, 그것은 슬픔이라는 감정이 주는 선물을 앗아가 버린다는 점이다. 집착은 당신의 존재를 분명하게 정의해 주고, 당신의 삶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환상을 가져다줄 수는 있다. 그러나 당신의 삶은 사실상 붕괴되었을지 모른다. 용감한 사람이라면, 기꺼이 그러한 환상에서 깨어나고자 할 것이다. 실컷 몸부림치고 고함지르고 울부짖는 것부터 시작하라. 계속 울음을 쏟아내라. 그러면 결국 슬픔은 당신에게 ‘온유’와 ‘깨달음’이라는 최상의 선물을 남겨주고 끝난다.
--- 1부 삶의 기적들 “슬픔이 주는 선물” 중에서
그때, 살아오면서 내가 나눴던 제일 중요한 대화가 불쑥 떠올랐다. 여러 해 전, 목사와 늪지 주변을 걸을 때였다. 나는 임신 2개월째였는데 빈털터리 독신인 형편이라 낙태를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선뜻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고민하는 중이었다.
“1분간 입을 다물고 낙태에 대해 생각하는 겁니다. 내면 깊숙이 남모르는 안도감이 느껴진다면 그것에 집중하세요. 반대로 묵직한 슬픔이 가슴을 짓누른다면, 거기에 귀를 기울이세요.”
시킨 대로 차분히 묵상에 잠겼다. 이론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낙태를 찬성하지만 그날 나는 폐부를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 고통이 사라지질 않아 결국 낙태 수술을 취소했다. 그리고 일곱 달 후, 산에서 뛰어내리겠다고 저 난리인 귀여운 꼬마를 낳았다.
--- 1부 삶의 기적들 “아주 특별한 생일” 중에서
샘은 태어나기 일곱 달 전부터 세인트 앤드류 교회에서 환영받았고 기도의 주제였다. 예배 중에 내가 임신 사실을 알리자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얼마 안 있어 교인들은 날 돕는 일에 착수했다. 옷가지들을 모아오는가 하면 음식을 만들어왔고, 한 푼 두 푼 내게 돈을 건네기 시작했다. 나이 든 흑인 여신도들은 쥐꼬리만 한 사회보장 연금에 기대 근근이 살아가는 형편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틈만 나면 내게 슬그머니 다가와 10달러나 20달러짜리 지폐를 호주머니에 찔러주었다. 제일 꾸준한 기부자들 가운데 퇇 명은 현재 팔십대 중반이 된 메리로, 매번 10센트짜리 은화가 가득 담긴 주머니를 내밀었다.
나는 “우리는 사랑의 빛을 견디는 법을 배우기 위해 여기 있다”는 블레이크의 멋진 시구를 상기하기 전까지는 수치심 같은 감정밖에는 들지 않았다.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서야 꽉 잠긴 목구멍으로부터 “고맙다”는 한 마디를 힘들게 끌어내곤 했다.
--- 2부 사랑하고, 사랑받고 “교회에 가는 이유” 중에서
나는 지난 세월 동안 나한테 직·간접적으로 해를 입힌 다양한 사람들―전직 공화당 출신 대통령 넷, 친척 셋, 옛 남자친구 둘―을 어떻게든 용서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나는 그러는 체만 할 수 있었을 뿐이다. 처음부터 목표를 너무 높이 잡은 게 잘못이었다. C. S. 루이스가 말한 바, “우리가 정말로 용서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게슈타포보다 쉬운 대상부터 시작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따라서 일단, 상대적으로 잘 모르는 사람을 첫 대상으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나에게는 얼마 동안 적이 한 명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인 샘의 동급생 엄마로, 너무도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라서 우리가 적이란 걸 알면 깜짝 놀라 뒤로 자빠졌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나를 어리벙벙하고 정신 사나운 외계생물체 보듯 했다.
--- 2부 사랑하고, 사랑받고 “적을 용서하는 법” 중에서
아름다운 페미니스트 친구, 노라가 예전에 이런 말을 했다. “자살해 버릴까 생각 중이야. 근데, 먼저 살을 3킬로그램만 빼고 싶어.”
최근에 어떤 남자한테 호감을 느끼게 되면서부터 나는 이 말을 곱씹고 있다. 그도 나를 좋아하긴 하지만, 어떤 젊은 여성과의 관계를 막 정리하려는 참이었다. 그녀는 어리디 어렸다. 열 살쯤 됐으려나? 설마 그렇기야. 그가 일전에 보여준 사진에서 그만큼 젊게 보였다는 얘기다. 키 크고, 날씬하고, 생기 넘치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흑발.
나는 이제 갈데없는 ㅈ, 주, 중, 중년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나는 페미니스트이며 신앙심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머릿속 한 구석에서는 탄력을 잃은 피부와 윤기 없는 머리칼과 허벅지에 불거진 지방덩어리가 곧 나라고 믿고 있다. 다시 말해, 포장 상태를 나와 동일시하고 있다는 거다. 이 남자를 좋아하게 된 후에 웃기는 일이 벌어졌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한숨을 내쉬면서 속으로 중얼거리게 된 것이다. “내 눈을 도려내고 싶어.”
--- 4부 육체와 영혼 “쇠락과 소멸” 중에서
내가 이해하는 하느님의 사랑의 신비는 이런 거다. 하느님은 자기 개를 못살게 구는 남자를, 아기들을 사랑하는 만큼 사랑하신다. 두 아들을 제 손으로 익사시킨 수잔 스미스를, 데스몬드 투투를 사랑하는 만큼 사랑하신다. 아이들을 기르는 그녀를 사랑하셨듯이, 자동차 핸드브레이크를 풀어 아이들을 강물에 밀어넣는 동안에도 딱 그만큼 그녀를 사랑하셨다. 그러므로 당연히 하느님은 예나 지금이나 평범한 나를, 한없이 주눅 들고 불쌍하고 못되고 망상에 사로잡힌 모습까지도, 아니 그런 나를 더 특별히 사랑하신다. 나를 사랑하고, 택하신다.
어렸을 때는 이렇게 생각했다. 노력조차 안 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사랑을 받게 된다면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이제는 잘 모르겠다. 아는 거라곤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뿐.
--- 에필로그 나의 행복한 인생 “조건 없는 사랑” 중에서